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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호영 Dec 04. 2016

소주 반 병의 추억

나의 아버지 이야기 #3

얼마 전 아침 일찍 서울역 근처에서 미팅이 있어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해서 미팅하는 서울역 근처의 허름한 순대 국밥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순대국밥을 시켜 먹으며 맞은편에 앉아 계신 노동일을 하시는 듯한 분위기의 어르신들이 아침부터 술국과 소주를 시켜서 드시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듬성듬성 나있는 수염에 허름한 잠바를 입고 뜨거운 국물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시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 고된 일을 마치시고 들어와서 늦은 저녁 소주 반 병을 마시고 주무시곤 하셨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렸을 적 늦은 시간에 꼭 소주 반 병을 드시고 주무시는 아버지에게 언제나 잔소리를 하곤 했다. 물론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이 되었고, 술 담배를 평소에 즐겨하시는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나 또한 동참해서 걱정 어린 잔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에는 술 담배를 하는 아버지를 이해를 하지 못했다. 건강에 좋지도 않거니와 술을 드시고 종종 인사 불성이 되시는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술을 먹고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다른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주위에서 들어보면 우리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하시는 술주정은 정말 애교스러운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난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는다는 것이 잘 용납이 되지는 않았다. 난 지금도 담배는 하지 않고, 술은 정말 필요한 상황에서 적당한 수준으로 마시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나 또한 아버지가 되어 삶의 무게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느끼면서 아버지가 느꼈던 삶의 무게를 이해하게 되고,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눈비를 맞아가며 고된 배달일을 하시며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우리 아버지에게 늦은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소박한 안주에 소주 반 병을 즐기는 것은 우리 아버지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1년에 설날/추석 당일날을 제외한 363일 일을 하면서, 추석과 설날에는 형제들을 만나서 인사 불성이 되어 술을 마시는 것이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형제애가 두터웠던 아버지에게 멀리 떨어져 사는 형제들을 볼 수 있는 단 두 번의 기회에서 흥겹게 술을 마시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었을까 이제 내 나이 40이 되어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되어 잊힐 만도 한데, 오히려 내가 나이가 들어 어린 시절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면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함께 소주 한잔 같이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된다. 어쩌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술 한잔 같이 하면서 아버지의 살아온 삶에 대해서 더 많이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먼 훗날 내 아이들이 술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가벼운 술 한잔을 하면서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 또한 언젠가 내 아이들의 추억이 될 텐데 그때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나의 아이들이 좀 더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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