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과 열망의 디미누엔도
나이 들어 미래를 장밋빛으로 보지 않게 된 것은 큰 다행이다. 그건 아이들 말로 ‘근자감’에서 비롯된, 자기 상상 속에서만 서 있을 수 있는, 모든 물리 법칙을 무시한 기와집을 지으려 하지 않게 된 풀죽음이거니와, 따박따박 제공되는 월급에 안주하느라 ‘멋진’ 그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만에서 비롯된 기약 없는 독립에의 욕구를 웬만해선 실천으로 옮기지 않게 된, 아내들의 안도와 감사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업을 하던 시절 벌어 들이던 얼마 안 되는 수입에 대해 이 또한 월급과 비슷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입금 날짜가 불규칙하다는 점 정도였을까? 어느 쪽이든 그토록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절반의 의무 이행이라는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뛰쳐나가거나’ ‘때려치우지’ 못하고 유지하는 일상은 자유로움이나 성취감 같은 감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런 ‘어른스러운’ 고찰을 하다 보면, 그것이 직장이든 혹은 사업이든 그 속에서 하는 일의 내용보다는 그 노동 행위 자체, 또 거기서 얻는 급부를 가족에게 헌납하는 행위 그 자체가 가장 의미 있는 것이라는 야릇한 결론에 다다른다.
가끔 접하게 되는, 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그 어떤 과거의 그 어떤 남자에 대한 묘사가 나의 일상이나 심정과 겹쳐지기라도 한다 치면, 그 남자의 기쁨과 슬픔, 버거움과 희망에 대하여, 그리고 나이듦과 함께 점점 익숙해져 갔을 감정과 열망의 디미누엔도(diminuendo)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돌이켜 그 어떤 젊음도 미덥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이듦이란 불완전한 삶들이 만나고 부딪혀 불완전하게 깎여져 나간, 불완전한 아니 보잘것없는 원숙함이다. 아이 크림이나 임플란트로 세월이 남긴 흠집을 얼마간 덮어버릴 수 있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움켜 쥔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버린 활력, 낙관이 선사했던 열정을 놓쳐 버린 겸허란,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허전함을 달래주기엔 뭔가 역부족이다.
그래서 내리게 되는 결론은 이것이다: 현재 같은 삶이 결코 인생의 전부일 수 없다는 것! 아니 전부여서는 안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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