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마음이 통하는 벗들에게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문제 많은 이 세상에선 슬픔만이 진실이다”
코미디라는 장르를 싫어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슬픈 장면을 볼 때 유난히 감정이입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왜 그럴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문제 많은’이라는 표현에 이미 대답이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문제 있는’ 상태는 쉽게 생겨나고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그 반대인 ‘문제 없는’ 상태는 잘 만들어지지 않고 오래 유지되지 않습니다. 평온함은 이내 문제들로 채워져 버립니다.
전세계에서 1년 동안 제조되어 판매되는 휴대폰 수량은 10억 대를 훌쩍 넘어섭니다. 꽤 복잡한 전자 회로와 프로그램을 탑재하여 저토록 많은 물량을 제조해 내는 걸 보면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뇌와 신체는 휴대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 아마 수천억 배 이상 - 복잡한 시스템입니다. 소우주라 불릴 만큼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장애가 없는 상태로 태어난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인데, 우리 두뇌 아주 작은 부분에만 문제가 있어도 치명적인 병이나 심각한 건강 문제가 생긴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물학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들 개개인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 내는 삶의 모습들은 그다지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 불안정함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슬픔이라는 감정은 당연히 그 빈도나 범위에서 기쁨보다 훨씬 더 보편적이며 자연스럽기까지 합니다. 문학 작품이나 영화는 슬픔을 다룰 때 작품성을 인정받기가 훨씬 쉽습니다. 부조리나 불공정을 고발하면 쉽게 같은 편을 얻습니다. 심지어 ‘즐거움(樂)’을 위해 연주되는 음악까지도 슬픈 멜로디 부분에서 더 폭넓은 찬사를 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확실히 ‘슬픔만이 진실’입니다. 적어도 오십 년을 넘어 제가 보아 온 이 세상에선 말입니다. ***
*표지 이미지: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