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열불이 나는 그런 이야기
아들에 대해 글을 쓴 지 거의 1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큰다더니.. 게임과 스마트폰으로 속을 썪이던 아이는 이제 조금 정돈된 모습니다. 언제 게임에 허우적댔냐는듯.
그 사이 아들은 #철덕 이 되었다.
6학년 들어서면서 기차에 관심을 보이더니, 지금 2학기 말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은 완전 기차덕후다.
덕분에 아들은 최신폰을 갖게 되었다.
미디어 노출은 최대한 늦게! 를 외치며 게임 유툽과 스마트폰 게임, TV시청을 단속하던 내가 최근 아들에게 플립4를 사주고야 만 것이다.
아들은 기차덕후다.
나도 철덕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들 덕분에 처음 알았다. 처음에는 조금 흥미 보이고 말겠지, 했는데 왠걸.
시간이 갈수록 철도나 교통에 대한 지식을 전문적으로 쌓아가는데, 최근 1년간 기차 관련한 지적탐구 깊이가 초6년간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워가는 그것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그덕에 남편과 나는 주말마다 신림선이며 KTX며 무궁화호 야간열차며 아들이 원하는 노선을 따라다니며 아이가 즐거워하는 (어른은 녹초기되는) 경험을 하며 신기함을 느끼곤 했다. 9월 초에는 ITX춘천 ~ 청량리역 ~ KTX 강릉 ~ 청량리역 ~ 집까지, 1박2일 숨가쁘게 다녀왔고, 남편은 7월 말 여수행 무궁화호 야간열차 마지막차를 타기 위해 무박 2일로 여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5월 28일 신림선 개장하던 날에만 신림선 왕복을 몇 번을 탔는지 모른다. 그런 날에는 나나 남편은 무조건 몸살을 앓거나 뻗어있기 일수 였지만, 아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촬영과 탐색을 멈추지 않았다.
철덕이 된 아들은 초3부터 푹 빠졌던 게임에서 신기하리만큼 쑥~ 빠져나왔다. 게임때문에 걱정된다는 어떤 담임선생님 말씀이 무색하리만큼 언제 게임으로 실랑이를 했냐 싶을 정도로 이제 게임은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게임을 하는 순간은 동생과 놀아주거나 기차 관련된 게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탐색하기 위해 열어보는 것 외에는.
게임신작을 줄줄 외던 아이는 이제 매일 기차 역사, 뉴스, 정책들을 쏟아내는 초등 전문가가 되었다.
덕분에 역사, 경제, 지리 같은 분야에 대한 공부는 자연스레 되었다. 현장 그 자체가 공부니 말이다.
신규 지하철역 속보가 뜨면 그 지역(혹은 동네) 정보를 같이 축적하거나 집값 상승세까지 따지는 아이가 일 년 전까지만 해도 공부와 게임때문에 실랑이를 벌이던 그 아이 맞나 싶다.
이쯤되니 덕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고민하게 됐다.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실시간 정보, 그것도 채널에 빠르게 접속해 속보를 가장 먼저 봐야 하는 인프라였다. 누구보다 더 빠르게 속보를 보고 앞뒤 정황을 파악하여 자신의 정보로 해석하는 것이 덕질에 있어 제일 중요한 역량. 그렇다 보니 액정이 바스라진채 점점 느려져만 가는 갤9을 볼 때마다 실망감 가득한 표정을 보이는 아들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아들의 덕질이 언젠가 곧 끝날 호기심일 거라는 생각도 접어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상태로 수 개월이 흐르고 아들의 호기심이 진짜 관심이자 키워줘야 할 중요한 역량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나는 급기야 '내 얕은 판단으로 아이의 미래를 방해하게 되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이 10년 넘도록 지켜온 '미디어 노출, 최신 스마트폰은 최대한 늦게!'라는 내 신념을 한 순간에 바꾸게 된 계기다.
아이들은 믿는만큼 자란다고 했나.
절대 스맛폰에 빠지지 않기, 집에서는 늘 거실에 두기, 자세 바로하기, 유툽 절제하기 등등 갤9 쓰면서 나누었던 잔소리들이 전쟁처럼 더 크게 번지면 어떻하나 걱정이 컸는데, 막상 새 스맛폰을 들인 후에는 스맛폰으로 벌어지는 잔소리들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게임은 더 줄었고 선생님들의 칭찬은 늘었다.
우리가 맞벌이이긴 하더라도 최신 스맛폰이나 기기들을 식구수대로 사기에는 꽤나 부담이다. 아이들에게는 분실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 이 마음을 알아주는 건지, 초6 아이는 최근 한 달 사이만 해도 부쩍 컸다. 그리고 매일 아침 눈뜨면 철도나 교통 속보와 세계기차 정보를 들려준다. ㅎㅎ
이제 아들은 카페를 가면 자연스럽게 본인 몫의 아이스라떼를 주문한다. 거뭇거뭇해지는 코밑을 보이며 제법 굵은 목소리를 내고, 초3때부터 함께한 독서논술 선생님과 영어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백 번 노력하는 자세도 보여준다. 지금은 내 옷, 내 발보다 훌쩍 큰 사이즈를 입는다.
학교시절에는 학교수업을 잘 따라가야 정답이라 생각하고, 그 때문에 담임선생님의 평가로 마음이 어지럽곤 했는데 우리 아들이 나의 편견과 편협한 시각을 또 한 번 깨주었다. 살아가는 것은 이다지도 입체적인 곡선인 것을 나는 왜 또 잠시 직선의 길만 생각했나.
우상향 직선의 길이 시시해 보이는 것은 순전히 우리 아들 덕분이다.
그런데 고등학생 졸업할 때까지 플립4 써야한다고 했는데,
6년간 핸폰이 버텨줄련지 ㅎㅎ 왜 벌써 걱정이 되나 ㅎㅎ
#철덕 #기차덕후 #엄마일기 #아들키우기
#플립4 #나에겐큰결정 #워킹맘주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