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발로 걸어들어간 군대
대학교 캠퍼스는 낭만이 있다. 아니 벌써 그런 걸 느낄 나이가 되었나 싶어서 조금 씁쓸하긴 하지만, 아무튼 캠퍼스가 주는 특유의 향기가 있다.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얼음꽃이 하나씩 새순으로 바뀌어 가는 것처럼, 생동감 있고 활기찬 분위기가 있다. 계절로 치자면 봄이랑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내가 다녔던 학교도 그랬다. 봄바람에 벚꽃 잎이 날리는 모습이 보일 때면 향기도 덩달아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넷플릭스 시트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최근 개봉영화 <보스>를 재미있게 보던 도중 우리 교정이 나올 때면 새삼 우리 학교가 이뻤단 걸 느낀다. 이렇게 다른 매체를 통해서 다시 학교를 마주하게 되면, 표현하기 어려운 향수가 느껴진다. 당시 우리들의 순수한 푸르름을, 때 묻지 않은 청춘을 간직한 곳이랄까. 종래에 아름답고 따스한 색으로 기억의 도화지를 그릴 수 있어서 다행이고, 그래서 행복하다.
수능 시험장에서 삼수를 고민했던 섬뜩한 위기(언어(국어) 시험 때 두장을 겹쳐서 넘겨 많은 문제를 풀지 못했다)가 있었지만, 허리통증 때문에 깔고 앉은 방석을 보는 순간 고민은 부리나케 달아났다. 고통의 늪을 제 발로 딛고 올라서보겠다며 꾸었던 한의사가 되는 꿈은 무너졌고, 딱히 마련한 대안은 없었다. 누구나 그랬듯 주변 어른들의 권유로, 단국대 경제학과로 진학했다(4차 추가합격으로 입학해 진짜로 삼수할 뻔했다).
스물한 살, 어른들의 단골 질문 두 가지, "여자친구는?", "군대는?" 중에 한 가지였던 '군대'를 가야 했지만 끈적하고 지독한 통증 때문에 이대로는 두려웠다. 명백한 병명이 없었기에 당연지사 입영신체검사도 무난히 통과해 버렸다. 때문에 현역 입대 외엔 다른 길이 없었다. 차일피일 초조한 시간을 보낼수록 또 한 번 스멀스멀 정체불명의 오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어떠한 진단명도 받지 못했지만, 내 아픔을 인정받을 수 없다면 돌파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를 내가 구해야 했다.
그렇게 접하게 된 장교복무였다. 4년제 대학을 마치고 시험을 통과하면 장교로 의무복무를 할 수 있었다. 몸을 가다듬을 시간을 벌어서, 시련을 넘는 것에 더해 한층 강인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학사장교 시험은 꽤 인기가 많았기에 준비할 것도 많았다. 그렇게 학교 도서관에 앉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지만, 열심히 준비했으니 잘 될 거라 기대했던 육군 시험에서 낙방했다. 스물둘,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가는 11월이 오니 점점 초연해지는 것 같았다. 몸이야 어떻게 되든 일단 입대해야 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했던가. 어느 날 무심코 우리 학교 '곰상' 광장을 지나던 중에 해군 장교 모집 현수막을 보았다. 그때가 마침 시험 접수기간이었던 것이다! 해군은 육군에 비해 두 과목을 더 봐야 해서 난도가 높았고, 처음 접하는 다대일 면접의 압박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해군에 덜컥 합격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떨어질 거라 생각해서 병무청에서 병 면접까지 봤건만, 정말이지 "이게 되네"였다.
벗어나지 못할 것 같던 가시덤불 속에서 한줄기 빛을 따라 맺힌 열매를 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