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사나이

꿈을 찾아서(1)

by 김민제

가을이 진다. 벌써 겨울이라니, 올해는 단풍구경도 못했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12살 때부터 리코더합주단 생활을 꾸준히 해왔다. 크고 작은 연주회와 경연대회 등을 나갔던 경험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해외 음악봉사를 여러 번 다녀왔던 것이 기억이 많이 남는다. 이 경험을 살려 대학시절 해외봉사단에 선발되었는데, 이때 나는 앞으로 남을 돕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단 막연한 꿈을 꾸게 되었다.



2012년 단국대학교 해외봉사단 단체사진인데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참 무섭다. 이때와 여러 봉사활동에서 느낀 감정과 소회, 남을 돕는 삶을 살아야겠단 꿈을 꾸게 된 계기는 다른 지면을 빌려 다루겠다.





직접적으로 어린이들에게 교육을 하거나 기부를 하면서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지만, 더 두텁고 광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삶을 살려면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리코더와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음악이나 글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을 걸만큼 좋아하지는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것도 없다는 생각에 닿았을 때 조금 좌절했다. 지금껏 걸어온 길을 암막커튼이 빈틈없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대학생이 될 때까지 무엇을 주로 하며 살았는가. 자 책상에 앉아있었던 기억 외에 특별한 것이 없다. 그렇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거의 없이 살아온 소위 아싸(아웃사이더)였다. 내향인의 전형이랄까. 정말 외롭다고 느껴도 막상 여럿이 어울리는 건 달갑지 않았다. 남는 시간에는 주로 페이스북에 글을 썼고, '감성충'이라는 놀림에 아파했다. 아니 내가 '벌레'라니. 정돈된 깔끔한 거리를 거닐다 갑자기 오물을 덮어쓴 느낌이었다. 나가면 희미해질 소중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독자들이 비난하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SNS의 대세가 인스타그램으로 기울고, 런치라는 플랫폼이 생겨 온라인에서 많은 글작가들이 활동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그 시절엔 놀림을 참 많이 받았다.


글쓰기가 소원해지고 자연스레 생긴 시간에 리코더 연주회를 다녔다. 학교가 수도권에 있었으므로 꽤 많은 연주회에 참석했다. 경춘선을 타고 춘천에서 열리는 연주회와 페스티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초동에서 옛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선뜻 본인께서 지휘하시는 리코더앙상블의 객원멤버로 초대해 주셨다. 그 덕에 매주 앙상블 레슨을 받고 서울 모처에서 열리는 연주회를 준비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누군가를 돕는 삶을 살고 싶단 신념이 강했기 때문에, 내가 내는 소리로 '화음'을 쌓는 건 정말 벅차고 설레는 일이었다. 특히 나는 저음파트를 연주했기에 더욱 그랬다.



2014년 가을, 서울에서 00 리코더앙상블 연주회에 객원멤버로 참여했다. 가운데 정장을 입은(왼쪽), 나비넥타이를 한(오른쪽) 뿔테안경 남자 연주자가 나다. 이 연주회 외에 부산에서 어릴 적부터 함께했던 선후배 30명을 이끌며 연주회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연주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2014년은 그야말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이어온 리코더 음악활동의 결실을 맺는 해였다.





푸르른 산등성이가 색색이 물드는 가을 어느 밤, 찬바람에 코트를 여미고 객석에 앉은 사람들 앞에 올라서던 순간은 나에게 잊지 못할 기쁨이다. 고개를 천천히 숙이는 벼가 산들바람에 흔들리면서 내는 소리처럼 자연스럽게, 음표들이 신발을 신고 객석을 뛰어다니 것 같았다. 그렇게 연주는 행복하게 성료되었다. 나를 보러 오신 분은 거의 없었지만 마음엔 향기로운 공명이 차올랐다.


나에게 리코더는 어린시절 친구였고 나아갈 길을 그려준 물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