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보 May 31. 2022

#13.양말 한 켤레가 하는 말


 

오늘도 화장실 앞에는 벗어놓고 치우지 않은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다. 치우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 한 채 옷가지들을 빨래 바구니에 가져다 놓는 아들. 그러나 많은 옷가지들 틈 사이로 한 켤레의 양말은 뒤집어진 채 떨어져 버렸다. 그렇게 뒤집어 벗어 놓은 한 켤레의 양말은 해가 지도록 화장실 앞 바닥에서 고이 잠을 자고 있었다. 오늘은 아들에게 화를 내는 대신 양말의 마음을 아들에게 들려 줘 본다. 


“나 좀 데려가!”

양말 한 켤레가 등을 보이며 쓸쓸하게 소리친다


보송보송한 나를 신고 나간 아침

기분이 참 좋았지?


나무 계단을 몇 차례 올라 학교 가는 길은

참 힘이 들어


아침부터 등산하는 기분이라 싫어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특별한 일이 있을 거라고

급식이 맛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며

너와 함께 학교로 향했지


꼼지락거리는 네 발을 

상쾌하게 감싸주었는데

괜찮았니?


오후가 되면서 신발 안에 갇힌 나는

점점 축축해 오는 너의 향기에

숨이 막혔지만 그래도 참았단다.

네가 열심히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잖니


그래도 말이야, 조금만 더 나를 아껴줄래?


나는 내 등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싫단다

너는 항상 나를 뒤집어 내 등을 보여주더라

꼬깃꼬깃 구겨진 나를 바닥에 ‘탁’ 벗어 던지더라


보송보송하게 너를 감싸주고 싶어

내일도


따가운 여름 햇살 아래에서

보드랍게 잠들 수 있게

제발 나 좀 씻겨줄래?



매거진의 이전글 #12. 이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