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보 May 30. 2022

#12. 이사



살면서 얼마나 이사는 다녔더라. 내 기억 속에 있지 않은 이사까지 세어보면 열 손가락을 넘어간다. 부끄러운 일인지 좋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한 곳에 오래 정착 해서 살지 않아서 일까. 나에게 집이라는 공간이 애착이 가고 따뜻한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내 가정을 꾸리면서 현재 사는 곳에서 10년 이상을 살아 보니 이제는 ‘이사’라는 두 단어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금 집으로 이사올 때 너무 힘들었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돌 지난 막내를 아기 띠로 동여매고 두 아들들을 데리고 이곳 저곳 발품을 팔며 셀프 인테리어를 한다고 온 몸을 불살랐던 그 시간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 물론 지금은 아이들도 많이 컸고 훨씬 수월할 것이다. 그래도 그 힘든 기억이 발목을 잡는다. 사실 아이들에게 각 자의 방을 줘야 해서 이사를 가야 하지만 수리를 직접하고 들어와서 가꿔온 이 집을 떠나기 실은 마음이 저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어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에 남는 이사는 중학교 때이다. 처음으로 전학을 갔던 그 시간 속에서 겪었던 복잡했던 심경들이 선명하다. 괴롭힘을 당한 일은 없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내가 살던 곳에서 당당했던 마음이 전학을 오면서 쪼그라들었던 것 같다. 낯선 친구들에게 적응을 해야 했고 낯선 동네에서 헤매고 다녀야 했다. 내 마음도 낯선 그 곳에서 갈 곳을 잊어버린 채 떠돌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단짝 친구가 있어서 마음을 의지 했지만 나의 삶은 내가 원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준비했던 특목고를 떨어지면서 의욕도 바닥을 쳤고 성적도 하향선을 달렸었다. 그러면서 이사온 그 시점을 원망하고 그리워하며 나를 떠돌아다니게 내버려두었다. 지금도 이사를 오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우리 가족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 본다.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면서 우리가 이사온 지역들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씁쓸하지만 엄마와 가끔 지나온 집들을 추억한다. 그 때 그 집에서는 어땠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돈 부자는 아니어도 추억 부자임에는 틀림없다.




언젠가 아니면 조만간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커가고 각 자의 방이 필요한 나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두 아들이 같은 방을 쓰고 막내 딸이 혼자 방을 쓰고 있다. 고맙게도 방문을 걸어 잠그는 일은 없어 문짝들은 고이 자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아마 문을 걸어 잠갔으면 벌써 문짝들과 이별을 했을지도 모른다. 각 자의 방을 주면 서로 멀어지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걱정도 우리 부부는 살짝 해 본다. 동생과 같이 쓰고 있는 사춘기 그 무서운 중2 아들은 그래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아 이 집에서 버티고 있기는 하다.

이사하는 일이 우리가 사는 삶에서 이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니. 결혼 전에는 그냥 몸만 따라가고 밤에 들어가서 뒷정리만 도왔었는데 엄마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해 내셨다. 새삼 지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사를 그렇게 많이 하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도록 항상 원래 있던 집처럼 정리가 되어있었다. 좋은 일로 이사한 것도 아니라 엄마의 속상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들킬세라 깔끔하게 이사간 집을 치워놓으셨던 게 아닐까.


자신에게 익숙한 무언가를 바꾸고 새로운 길로 가는 길은 용기가 필요하고 적응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하물며 몇 년 동안 먹고 자고 생활하던 공간을 정리하고 가는 마음은 헛헛하고 아쉽고 쉽게 정리하기 힘이 든 것 같다. 자신의 향기가 베어있는 그곳을 벗어나 다시 낯선 곳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마음이 가볍기를 바란다.






https://brunch.co.kr/@ame44/161


https://brunch.co.kr/@ame44/164#comment


매거진의 이전글 #11.오늘은 뭘 먹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