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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선 Jun 02. 2020

글쓰기는 어떻게 직장인의 무기가 되는가

사수 없이 성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 글쓰기



'사수 없이 일하며 성장하는 법'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


나는 소위 말하는 스펙이 하나도 없다.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해외 유학을 갔다 온 것도 아니고, 누구나 들으면 알 만한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대단한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내세울 만한 것이라고는 그저 내 일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뿐이다.


주니어 시절을 돌이켜보면 실력은 없는데 잘하고 싶은 욕심만 많았다. 그래서 성장하는 방법을 찾아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수업을 듣고, 멘토를 찾아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늘지 않아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누군가 제발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리저리 방황하며 답을 찾아다니는 과정 속에서 순간순간 찾아드는 하나의 의문이 있었다.


'방송이나 책, SNS에서 화려하게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째서 지나치게 대단한 사람들뿐인 걸까?'


학교든, 유학이든, 회사든 뭐든 간에 적어도 하나쯤 눈에 띄는 스펙을 가진 사람들. 대단한 프로젝트, 대단한 실적, 대단한 커리어를 가진 성공한 사람들. 그들은 좋은 말로, 좋은 영향을 미치는,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나에게는 오르지 못할 나무였고 넘지 못할 산이었다. 당장 오늘을 살아야 하는 내가 그들의 말에서 실질적인 배움을 얻기에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문득 주변에서 매일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둘러봤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소외된 99%의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알려지지 않은 작은 조직에서 저마다 다른 상황에 처해 혼자 고민하고, 좌절하고, 방황하는 후배들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상위 1%에 속하는 엘리트가 아니라 내세울 것은 없지만 조금 먼저 길을 걸으며 고민하고 성장해 온 평범한 선배가 그들에게 더 적합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그토록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면, 혹시 내가 그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졌다.


이것이 바로 <사수 없이 일하며 성장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이 테마는 어느 한순간에 번뜩 떠오른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답을 찾고 찾고 찾아온 과정 속에서 '아, 이제는 밖으로 꺼낼 때가 되었구나' 싶어 진 것이다.


나는 무작정, 뜬구름, 애매모호를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이런 특성은 스스로 지향하는 정체성의 일부이며, 오랜 시간 나 자신을 그런 방향으로 훈련시켜왔다. 일을 할 때 모호함이 없는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노력하고, 부사수에게 가능한 한 명확한 피드백을 주려고 노력한다. 이런 성향은 마치 옆에서 필요한 시점에 구체적으로 조언을 해주는 듯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 누구나 예외 없이 말 못 할 어려움을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실제로 말을 하지 못한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 20대 중반의 어느 날, 나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연축성 발성장애라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치병에 걸린 것이다. 이후의 삶은 불행했지만 핸디캡을 끌어안고 성장을 포기하지 않으며 고군분투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이란 단지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일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내 이야기 속에 거창함은 없다. 대신 진솔함과 절박함은 있다. 나의 일을 스스로 정의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닌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경유해 온 성장 과정을 이 매거진에 담아 가고 있다. 마주하기 어려운 과거의 나와 손을 잡고 밝게 빛나는 미래의 나에게로 걸어가는 여정을 이 글을 읽는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 나는 말하고 싶다. 성공이 아닌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사수 없이 성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 글쓰기


돌아보면 내 일을 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만큼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을 잘하는 것과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그저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는 알아줄 거라 여기면서 묵묵히 일하는 후배들과 함께하다 보면 어린 날의 내 모습을 투영하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기술은 발전했어도 주니어들의 고민은 내 주니어 시절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불확실성의 시대다. 차별성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자기 실력을 온전히 인정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일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시도는 무엇일까?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사람들이 내 얘기를 들어주면 좋겠다는 열망이 있다. 후배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경험한 것, 배운 것, 깨달은 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벙어리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디자이너의 말을 과연 누가 들어줄까? 나는 사람들이 내 목소리(글)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브랜딩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내 말에 힘이 실리게 하려면 내 이름에 그만한 힘이 실려있어야 한다. 퍼스널 브랜딩이란 '영향력을 갖는다'는 말과 같다.


누군가와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 타인과 경쟁하지 않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디자이너로서의 전문성을 결합해 누구와도 결코 중복되지 않을 스토리텔링을 시도했다. 다시 말해, 드러내길 꺼려왔던 내 약점에 대해 사람들 앞에 나서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말하기가 불편해지면서 오히려 내 일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아래는 작년 이맘때 쓴 <목소리를 잃어버린 디자이너의 말하기>의 일부다.


“디자인이란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이자 행위입니다. 협업은 음성/문자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루어지고, 결과물은 사용자와 생산자를 연결해주는 시각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루어집니다. 디자인은 결국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해 커뮤니케이션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 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은 협업을 위한 음성 커뮤니케이션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커뮤니케이션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커뮤니케이션이란 단지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잘 듣는 것, 맥락을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내용을 정리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전달하는 것, 메시지의 핵심을 먼저 말하는 것, 표정과 태도에 진정성을 드러내는 것 등 많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기술이자 태도입니다. 저는 부족한 부분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다른 요소에 더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공유한 이후 삶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평범한 디자이너에게 얽힌 사연을 알았고, 공감했고, 결국 사랑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진정성 있는 온라인 글쓰기를 통해 4,500여 명의 브런치 구독자가 생겼다. 그 과정에서 <실력은 연차와 비례하지 않는다>라는 글은 2천 번 넘게 공유되며 100개의 댓글이 달렸다. 덕분에 출판사로부터 디자인을 주제로 한 출간 제안을 받았고, 스카우트 제안을 받기도 했다. 또한 좋은 동료를 만나 <한달어스>라는 이름의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글을 쓰고 싶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지난 세월 축적해 온 디자인, 글쓰기, 독서라는 무형 자산에 내 이야기를 더해 <한달 자기발견>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리딩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내게 벌어졌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글을 쓴다는 것은 평범한 디자이너인 내게 차별성을 부여하는 강력한 무기가 돼있었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디자인한다는 것


지금까지 디자이너로 일해 온 세월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자면 '다른 사람의 것을 대신 만들어 줬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나처럼 상업적인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어느 시점부터는 '내 것을 디자인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한 번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담은 무언가를 의지대로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은 디자이너에게는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가?'


오랜 시간 생각해왔다. 유통기한 없이 하고 싶을 일을 지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널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2019년에 결심한 건 '나를 디자인해보자'였다. 그래서 브런치에 채널을 만들고 대외적으로 드러낼 내 모습을 골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 혼자 쓰는 것이 어려워 함께 쓸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글을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설정하고, 나를 강제하며 결심을 실행한 일은 전에 없던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이는 혼자 잘하기를 넘어 함께 잘하기로 사고를 확장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커뮤니티의 힘이란 무엇인지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어느 독서 모임을 통해 읽은 책  <친구의 친구>는 한층 더 강하게 나를 추동했다. 디자이너가 만든 세계적인 커뮤니티 '크리에이티브모닝스' 사례를 보는 순간에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잠시 책을 덮기도 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게 이것이었나?'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는 못했지만 내가 반드시 해내야 할 과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멀지 않은 시점에 좋은 동료들을 만나 실제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성장을 책임지는 사람들, 함께할 때 더 큰 성과를 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장점을 알아봐 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게 된 순간 나는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나는 진정 운이 좋은 사람이다.


커뮤니티 <한달어스>는 믿을 만한 동료와 가볍게 시작한 조그만 모임이었다. 그런데 매 기수가 진행될 때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게 성장해왔다. 커뮤니티의 멤버들과 공유하고 있는 가치는 쉽고, 재미있게, 지속적으로, 함께, 실질적인 성장을 하는 것에 있다.


커뮤니티의 원칙은 쉽고 단순하다. 30일 동안 매일 온라인에 글을 쓰고 인증하는 것. 글의 주제나 분량에 제한은 없다. 그저 쓰는 행위, 글로 매일 나를 드러내는 행위만이 중요하다.


커뮤니티는 결국 사람이다. 내향적인 성향의 사람이나 조금 뒤처지는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심리적인 부분, 즉 마음까지 살필 수 있는 리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앞으로 함께하게 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고 싶다. 나를 만난 그들이 운이 좋다고 느낄 수 있도록 나를 디자인하고,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고, 커뮤니티를 디자인해 나가고 싶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함께라면 할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웹, 앱, 온라인 프로모션 디자인을 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 의지대로 만들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디자인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의 가능성, 콘텐츠, 커뮤니티도 디자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디자인의 대상에는 한계가 없다.


단지 예쁘고 편한 것을 만드는 디자이너, 특정 조직에 의존해 불확실한 앞날을 두려워하는 디자이너에서 벗어나고 싶다.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으로서 은퇴 없이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의 삶을 살고 싶다.




디자이너들은 섬세하고 민감하며 똑똑하다. 자기 것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니고 있는 가치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디자이너가 그토록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이 가진 재료를, 생각을,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기 때문은 아닐까. 내 작업물의 의도와 과정과 결과를 설득력 있게 풀어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감성과 이성, 직감과 데이터, 이 모두를 동시에 요구하는 시대에 디자이너로 살며 인정받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글쓰기가 어떻게 디자이너의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배웠다. 내향적인 성향에 내세울 스펙 하나 없는 평범한 디자이너가 사수 없이도 스스로를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 많은 디자이너들이 글을 쓰기를 바란다. 자기 생각과 가치를 스스로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서비스 분석이나 해외 아티클 번역도 좋지만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글을 썼으면 좋겠다. 감성과 이성을 겸비한 디자이너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세상의 콘텐츠들이 얼마나 풍부해질지 상상하기도 어려우니까. 그런 마음을 담아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운영하고 있으며, 글을 쓰고 있다.


부디 나처럼, 그리고 우리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수 없이도 스스로를 키울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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