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명호 Sep 19. 2016

나 할 거 다 했어. 겁내지 않았어.

목욕탕 옆 인간극장 178 - 전진수(서울)

목욕탕 옆 인간극장 178 - 전진수(서울)
2016년 7월 3일(일), 해방촌 ‘익스퍼루트’


그리고 9월이 됐다. 여름나기가 힘겹지 않은 여름이 있었겠냐만 나는 이 여름이 유독 더 길고 힘겨웠다. 어쩌면 기억이 맞다면 그 저녁 나는, 거의 반년만에 마음이 편했다. 몇몇이 둥글게 모여 부산으로 뛰어들었다가 흠뻑 웃고 돌아왔던 그런 저녁이었다.

그 저녁이 있는 방 곳곳에는 저마다 사연 하나씩 꼭 틀어쥔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가방 하나, 우산 하나, 쓰레기 한 줌으로 흩어져 여행이 남긴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 귀퉁이에 앉아 일상을 들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소하게 웃는 소소한 순간을 아끼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익숙했던 그런 일상이었다. 그는 수줍게 웃으면서 “별 얘기가 없어요.” 말했다. 녹음을 돌려 듣는 내내 그는 웃다가 수줍었다.
 
  
“취재 당하는 기분인데요? (웃음)”
“그냥 편하게 이야기 하면 돼요. (웃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요즘 여행 만들고 여행 가고 사진 찍고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웃음)”
  
 
“어떤 여행을 만드는 거예요?”
“저희 여행은 20-30대가 좋아할만한 소규모 여행이에요.”
 
 
“구체적으로 어떤 여행이에요?”
“'익스퍼루트'라고, 국내 전국일주 하는 여행인데요. 1박 2일에서 길게는 4박 5일까지 소규모 인원이 같이 여행하는 거예요.”
 
 
“사진 같은 것도 여행 중에 찍는 거예요?”
“사진도 제가 잘 찍어 드려요. 예쁘게. (웃음)”
 


“요즘 다른 하는 거 있으세요?”
“아니요. 요즘은 이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것은 어떤 게 있으세요?”
“하늘 보는 것 좋아하고요. 책 보는 것 좋아하고요.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렇게 자주는 못 보는 것 같아요. 사진 찍는 거 되게 좋아해요.”
 
 
“어떤 사진 좋아해요?”
“사진에 대한 모든 걸 다 좋아해요.”
   
 
“찍히는 것도 좋아해요?”
“찍히는 것보단 찍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더 기억나는 좋아하는 거 있으세요?”
“구름, 노을, 시, 사람, 술, 음. (웃음)”
  
  
“그 정도면 좋아요. 초등학생 진수는 어땠어요?”
“반에서 제일 쾌활한 아이. 두루두루 친했어요. 제일 반에서 말 많고요. 학교 가는 게 즐거웠던.”
  
  
“중학생 전진수는 어땠어요?”
“말 없는 모범생.”
  
  
“초등학생 때는 쾌활했었는데?”
“네. (웃음)”
  
  
“중학생 때 특별하게 기억나는 일 있으세요?”
“그냥 다 일상적인 일밖에 없어서요. 친구들이랑 축구 하고 농구 하고 컴퓨터 게임 하고. 그런 거. (웃음)”  
“좋아요. 대단한 거 물어보지 않아요. (웃음) 
  
  
“고등학생 전진수는?”
“질풍노도의 시기.”
   
  
“왜요?”
“그때 뭔가 연애도 했었고 그때 뭔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내가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그리고 또 왜 공부를 하는지에 대한.”
  
  
“그때 그 질풍노도의 시기는 잘 지나간 것 같아요?”
“그런 혼란이나 힘듦을 좀 자기파괴적으로 해소하려고 했어요. 되게 우울에 빠지고 사람도 안 만나고. 자기 혼자서 되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제 스물 여섯이죠? 20대는 1년 단위로 물어볼게요. 스무살의 전진수는?”
“가장 인생의 힘들었던 시기. 가장 외로웠던 시기.”
  
  
“왜요?”
“그때 재수를 해서요. 학원도 안 다니고 혼자 해서요. 거의 집밖도 안 나가고 사람도 안 만나고 그래서 되게 마음이 힘들었었어요.”
 
 
“스물 한 살이 됐어요.”
“재밌었던 시기. 대학교를 가서요.”
 
 
“왜요?”
“우선 디자인 과에 가서 과에 여자들이 되게 많아서 매일 그 생각하는, 그런 대학교 때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술 마시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그런 것들을 해봐서요. 어른이 돼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해봤던 것 같아요. 답답했던 것들을 풀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전에는 계속 집안에만 있다가.”
  
 
“그럼 이제 스물 두 살이 됐어요.”
“그때 군대를 갔죠. (웃음)”
  
  
“군대는 어땠나요?”
“절 되게 강하게 만들어준 곳이에요.”
 
 
“군대를 그럼 스물 셋 12월에 전역을 해서 바로 스물 넷이 된 거네요. 군대의 기억은 특별하게 떠오르는 게 있나요?”
“되게 욕을 많이 먹었고요. 맞기도 했어요. 운전병이었는데 군기가 세고 이상한 선임들도 많아서요. 1년은 엄청 정신적으로 되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스물 넷이 됐어요. 스물 넷은 어땠나요.”
“그때도 많이 뭔가 전역을 하고 이후 내 인생에 대한 고민을 했던 시간이었어요. 군대를 전역하면 뭔가 꿈이 생길 줄 알았거든요. 전역했는데 꿈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이대로 복학하면 또 1학년 때처럼 똑같이 술 먹고 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1년을 휴학하고 그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갔어요. 10월에.”
 
 
“아르바이트는 어떤 걸 했어요?”
“파리바게트에서 빵 팔았어요. (웃음)”
  
 
“여행은 어땠어요?”
“유럽 여행 하나가 제 인생을 바꿨어요.”
 
 
“얼마나 여행 간 거예요?”
“한 달 갔어요.”
 
 
“왜 그 여행이 인생을 바꾼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제 머릿속에 없었어요.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고요. 단지 누나들도 외국을 다녀보라고 해서요. 저도 꿈이 없고 그래서 외국을 다녀오면 뭔가 느끼는 게 있지 않을까 해서 떠난 거거든요. 여행을 좋아해서 떠난 게 아니라요. 그런데 거기 가서 본 넓은 세계와 사람들이랑 거기서 처음으로 사진기도 사고 사진을 찍었는데 거기서 사진에 대한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지금도 찍고 있어요.”
 
 
“사진기는 여행 가서 산 거예요?”
“사진기는 여행 준비할 때 처음으로 미러리스 하나 사서 한 번도 안 찍고 있다가 그때 유럽 가서 처음으로 찍었어요."
 
 
“그럼 이제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이 인생을 바꿨다고 표현했잖아요.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생겼어요?”
“다녀와서 사고가 많이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요. 제 삶이 바뀐 건 아니고요.”
 
 
“그렇게 스물 다섯이 됐어요. 스물 다섯은 어땠나요.”
“휴학을 했었으니까 우선 대학을 복학했고요. 그런데 딱 한 학기 다녀보니까 도저히 이 과는 맞지 않고 뭔가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아서요. 바로 그만뒀어요. 6월까지 딱 다니고요.”
 
 
“그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어요?”
“학교를 그만두고 바로 순천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두세 달 동안 일을 했어요.”
 
 
“일을 하니까 뭐가 조금 바뀌던가요?”
“그때도 많이 배웠어요. 사람을 엄청 많이 만나서요. 하루에 20-30명씩 손님이 엄청 많이 와서요. 전국에 있는 손님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니까 되게 사람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하니까 벌써 스물 다섯이 끝났어요. 이제 올해예요. 올해는 어땠어요?”
“올해 원래 계획은 그냥 돈 벌어서 아르바이트 해서 파리를 가려고 했었어요. 사진 찍으러. 그런데 동우 형을 만나게 됐고 익스퍼루트 여행 일을 같이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이것도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같이 일하게 됐어요.”
 
 
“익스퍼루트는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예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곳. (웃음) “
 
 
“익스퍼루트 하면서 다른 기억나는 일은 없어요?”
“계속 익스퍼루트 여행 하느라 다른 것은 별로 신경 못 썼어요. 회사에 붙어있고 주말에 여행하고 다녀오면 정리하고 다시 여행 만들고. 뭔가 빠져있었던 시간.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 (웃음)”
 
 
“앞으로 전진수는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저는 저를 되게 믿거든요. 그래서 늘 행복하게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을 것 같아요. 뭔가 먼 미래 일은 잘 안 그리고요. 지금 최선을 다하고요.”
 
 
“혹시 추상적으로라도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요?
“서른 전에 세계일주 가는 게 버킷리스트예요.”
 
 
“또 있어요?”
“그거 하나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건 안 그려봤어요.”
 
 
“지금 문득 떠오르는 고마운 사람이 있나요.”
“사랑하는 사람.”
 
 
“왜요?”
“그냥 험난한 세상을 조금 의지하면서 살 수 있게 해줘서. 기댈 수 있는.”
  
  
“스스로에게 이상형이 있다면 어떤 느낌인지 이야기 해줄래요?”
“저랑 비슷한 사람. (웃음)”
 
 
“나중에 결혼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무조건 하고 싶어요.”
 
 
"어떤 결혼을 하고 싶어요?”
“되게 돈 없어도 뭔가 알콩달콩 하는 사랑. (웃음) 뭔가 현실적인 것보다는 음 서로의 사랑에 더 집중하는 (웃음) 불가능하긴 하겠지만.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꾸는 것 같아요. 일 다녀오면 언제나 화목한 느낌이 있는. (웃음)”
  
 
“결혼식을 생각해본 적은 있어요?”
“도심 속에서 하는 현실적인 결혼은 별로고요. 제주도 같은 자연적인 곳에서 하고 싶어요. 뭔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러운 결혼식.”


“이건 조금 다른 질문인데요. 스스로에게 죽는 건 어떤 의미예요?”
“죽는 건 축복인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요?”
“죽는다는 게 영원하지 않다는 거잖아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 같은 거니까요.”
 
 
“어떻게 죽으면 좋겠어요?”
“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구나. 나 할 거 다 했어. 겁내지 않았어. (웃음)”
  
 
“오늘 점심은 뭐 먹었어요?”
“복국이요.”
“어땠어요?"
“지금까지 먹어본 국 중에 가장 청명한 국이었어요. 자극적이지 않은 깨끗한 맛이요.”
 
  
“어제 점심은 뭐 먹었어요?”
“어제 점심은 뭐 먹었더라. (웃음) 부산에서 저녁엔 고기를 먹었고 점심엔 돼지국밥 먹었어요. 아 아침엔 맥도날드 먹었어요.”
 
 
“부산엔 왜 갔어요?”
“갑자기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몇몇 같이 간다고 해서요.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고 뭔가 갔다 오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웃음) 힐링도 하고 싶었고요.”
 
  
“어땠어요?”
“되게 부산에 갈 때마다 기억할만한 여행인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고민하지 말고 지금에 충실해.”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어요?”
“하기나 해. (웃음)”
“좋아요.”
 
 
"우리는 어떤 일상을 살아야 할까요?”
“책에서 본 글 그대로 살고 싶은데요.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도 감사하고 행복한 삶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뭔가 버스를 타고 보이는 풍경에도 되게 아 멋있다. 만날 보는 것들인데도. 하늘을 보고 구름을 봐도 나무 흔들리는 걸 봐도 새롭게 보는 눈. 일상적인 걸 일상적이지 않게 보는 눈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야 할 것 같아요.”


“누군가 ‘잘 지내요?’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것 같아요?”
“나야 항상 잘 지내지. (웃음) 그렇게 제일 많이 말했던 것 같아요.”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있어요?”
“음, 딱히 떠오르지 않아요. (웃음)”
“좋아요.”




작가의 이전글 그녀는 “자극적인 단어가 없는 대화라 좋았어요.”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