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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Apr 06. 2017

함께 일을 할 당신에게

지킬 것과 지키지 않을 것을 겨루면서 지내면 좋겠어요.

함께 일을 할 당신에게


지난 밤이었어요. ‘동업 계약서’라는 낯선 문서에 도장을 찍었어요.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반대 편에는 홍동우 씨가 앉았어요.


지난 2011년 서로 처음 만났어요. 스쿠터를 대여하는 사이였죠. 반납과 함께 멀어졌어요. 2014년 어느 기업 홍보팀을 사직하고 길 위에서 책을 파는 전국일주 여행을 했는데요. 그 여행이 끝나고 서촌에서 전시를 하나 열었어요. 그때 다시 만났어요. ‘목욕탕 옆 인간극장’이란 이름으로 인터뷰를 했어요. 그는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을 넘어선 것에 욕심 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이상한 느낌이 좋아서, 재밌는 일을 해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함께 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는 동의했어요.  


전시를 끝내고 보광동 낡은 사무실에 앉았어요. 재밌었어요. 화이트보드에 생각을 적고 벽지를 긁고 공사를 했어요. 카페 공장공장을 만들었어요. 전국일주 여행사 익스퍼루트를 기획하고 열었어요. 여의도에서 맥주를 팔고 종로, 광화문, 청계천에서 마카다미아를 팔았어요. 아쉽지만 2015년 1월을 끝으로 일은 함께 하지 않았어요. 대신 긴 시간 인연을 이어왔죠.


그는 그대로 나는 나름대로 일을 찾아 헤맸어요. 그는 '익스퍼루트'를 배경으로 여행을 만들고 사람을 모았어요. 나는 나름대로 제주에서 쓰레기를 담는 통 '메아리'를 팔고, 여행 모임 플랫폼 '여행대학'을 만들고, IT 기업에서 '아임웹'이란 브랜드를 기획했어요.


2016년 11월 30일 밤, 숙대입구역 앞 스타벅스였어요. 다시 함께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처음엔 '한량'이란 소재로 의견을 모으고 곧 '한량유치원'이란 이름을 붙였어요. 49일짜리 실험을 하기로 했어요.


제주에서 ‘널브러져도 괜찮다’, '장래희망은 한량입니다' 카피를 걸고 한 달 살이, 게스트하우스, 제주 한 바퀴 여행을 만드는 실험이었어요. 돈을 벌면서 오래 갈 수 있는 방향을 찾고 싶었어요. 방향을 잃고 계속 바닥만 팔 순 없으니까요. 그렇게 2월 28일, 실험은 끝났어요. 결과는 좋았어요. 사람들이 계속 모였고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쏟아졌어요. 방향을 찾았죠.


실험이 끝난 후 '이제 다음은'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한참 했어요. 계속 함께 할지, 한다면 무엇을 할지 고민했어요. 결국 함께 해도 좋겠다는 의견을 모았어요. '브랜드'를 함께 만들고 서로 믿기로 했어요. 에그모토, 공장공장, 익스퍼루트메아리 울려 제주, 여행대학, 목욕탕한량유치원에 걸친 이야기는 이제 다음을 향할 예정이에요.


서로 어려운 상황인데요. 그래서 오히려 함께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돈을 벌 이유도 있고 함께 일을 하지 않던 2년이란 시간 동안 서로 더 배웠고 단단해졌거든요. 그는 이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는 생각하는 일을 생각처럼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서울과 제주에 일을 벌일 생각이에요. 제주를 배경으로 ‘히치하이킹 페스티벌’이라는 기획을 준비하고 있어요. 어느 공간과 마음에 꼭 맞는 기획도 준비하고 있어요. '익스퍼루트' 역시 비슷하지만 다른 기획으로 준비할 예정이에요. 판을 짜고 있어요. ‘여행’에만 주목했던 게 과거라면 이제 공간과 콘텐츠, 사람, 디자인으로 구분해서 주목할 예정이에요. 사실 전 여행을 좋아하지만 조용히 머무는 여행이 좋은 기획자라서요.


함께 일을 한다고 가족은 아니예요. 가족이라고 부를 수도 없죠. 어떤 목적에 동의하고 더 나은 가치와 방향을 서로 찾고 있는 동료겠죠. 경계도 있을 테고 지나치게 편할 필요도 없어요.


동료는 이런 생각으로 만나려고 해요. 계속 동료를 만날 테니 이 방향은 처음부터 동의해야 해요. 누군가 순수한 가치를 보고 노동, 마음을 주면 그 일에는 그 누군가에 대한 이해도 있고 마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잘못이 있으면 긴 시간이 걸려도 회복되는 가치와 노력이 있어야 해요. 사람이라면 계속 실수를 하겠지만 그렇다고 당연한 건 없어요.


동료들이 서로 더 배울 일이 없다고 말한다면 독립하도록 지원하는 것 역시 함께 하게 될 동료에게 지키고 싶은 약속이에요. 더 나은 일, 더 나은 공간을 찾는다면 계속 믿고 지원해야 해요.


실패는 존재해요. 대신 사람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사람을 얻고 지키면 그 다음, 다시 다음에는 딛고 일어설 것을 믿어요.


일, 공간은 이런 의미예요. 지친 사람이 오면 기운을 얻고 아픈 사람이 오면 함께 아픔을 나누고 사람들이 모이면 술 아닌 이야기만으로 밤을 새우고 고민을 덜어내고 또 함께 꿈을 그리는 공간. 조금 더 알거나 조금 모른다고 누구도 서로를 구분하지 않고 단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존중하고 의지하고 마음을 터놓고 사회에서 만날 수 없는 그런 인연으로 얽힌 조직을 바랐어요. 사회에서 귀 기울이지 않는 이야기, 꿈 그 무엇이라도 서로 믿고 응원하는 일, 공간을 생각했어요.


그런 일, 공간은 없겠죠. 함께 일을 한다는 게 그런 가치를 포함할 순 없겠죠. 어쩌면 사회에 계속 머물면서 사람 개개인이 가진 가치를 이해하기보다 돈으로 사람 가치 매기길 습관처럼 반복하다보니 그럴 수 없다는 현실을 이해해야 할 어떤 의무가 모르는 사이에 생겼을 수 있겠어요.


아직 말이에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긴 시간 돈을 벌고 사람을 모으고 공간을 가꿨지만 아직 그러고 싶진 않아요. 그 구조와 논리 대신 사람, 꿈, 가치를 믿겠어요. 어느 최소 수익을 내고 지속 가능한 방향을 제안할 수 있다면 말이에요. 결국 먹고 살 수 있어요. 어느 최소 수익을 낼 수 있어요. 계속 수익을 냈어요. 그 구조와 논리에 편승하지 않아도 수익을 얻을 수 있었어요.


결론이에요. 일을 함께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과연 서로를 믿을 수 있을까요? ‘동업 계약서’라는 동의처럼 서로 계약을 이해하고 지킬 것과 지키지 않을 것을 겨루면서 지내면 좋겠어요.


요약

1. 홍동우 씨와 함께 일을 하기로 했어요.
2. ‘히치하이킹 페스티벌’을 열 생각이에요.
3. 어느 공간과 판을 준비하고 있어요.



1. 
그때 나는 판교에서 일을 하는 신입사원이었어요. 휴가를 스쿠터 타고 여행하면서 보내고 싶었어요. 그때 나는 '에그모토'가 만난 창업 초기 손님이 되었어요.


2.
‘에그모토’에서 빌린 스쿠터로 곳곳을 여행했어요. 참 재밌었어요.


3.
2014년, 서촌에서 '우리 모두 멋진 사람들이야 너무 멀리서 대단한 걸 찾지 마, 없어’란 긴 이름으로 전시를 했어요. 길에서 책을 팔고 일상을 듣던 모습을 기록하는 전시였어요. 그때 다시 만났어요.


4.
어쩌면 우리는 내가 어느 날 백수가 되었을 때 다시 만났어요. 서촌에서 전시하면서 몇 년만에 다시 만났고 며칠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만나길 시작했어요. "재밌겠다."면서 달려들어 우리는 함께 벽지를 긁거나 화이트보드에 꿈을 그리곤 했어요.


5.
이곳이 그때 그 사무실이에요. 아늑했어요.
  


6.
처음 만나서 이런 생각들을 적었어요. 계속 적고 다시 계속 적었어요. ‘전국일주에 대한 모든 것’을 주제로 판을 짜기로 했죠.


7.
‘공장공장’이란 이름으로 틀을 짜고 그곳에 하고 싶은 것들을 넣었어요. 공장공장은 빈 공간을 함께 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에요.


8.
뭐 이렇게 방향을 그렸어요. 전국일주 여행, 월간 익스퍼루트, 한강 간편배달, 커피 판매, 전국일주 매칭 등을 짰어요. 2014년을 그렇게 보냈죠.

9.
지금 익스퍼루트 CI 형태는 그때 만들었어요. 지금과 조금 다르죠? 이렇게 고민하다가 이태원 스타벅스에서 지금 형태를 만들었거든요.


10. 
익스퍼루트 카피도 그때 만들었어요.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전국일주 한다’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어요.


11.
공간을 만들 고민을 했어요. 사무실 공간이 아깝더라고요.
  


12.
일단 철거를 했어요.


13.
벽에 있는 벽지를 다 긁었어요. 긴 시간 누적된 벽지가 열 겹 가까이 덮인 곳도 있었어요. 계속, 계속 긁었어요.


14.
벽지를 떼면서 벽에는 노출 콘크리트를 바르고 한편으로 그 밑에서 함께 할 일을 계획했어요. 그때 함께 했던 동료 지민, 설아 씨도 보이네요.


15.
사무실 겸 카페로 쓸 계획으로 공사를 했는데요. 카페는 전국 곳곳 맛있는 음식을 가져와 팔까, 믹스 커피를 팔까 고민하다가 ‘에스프레소 꼼빠냐’를 메뉴로 정했어요. 우유로 생크림을 만들기 위한 ‘쇼’를 했어요. 사진은 레시피를 실험하려고 냉장고에 각 비율별로 재료를 담아 넣어둔 모습이에요. 고생을 했죠. 아주 아주 아주 많이.


16.
어쩌다 첫 유료 손님이 왔어요. ‘아주 맛있다’고 했어요.


17.
입간판도 들여왔죠. 카페 '공장공장'이 거의 만들어졌어요.


18.
어느 박람회에 나가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보통 별 관심이 없었지만 몇몇은 관심이 있었어요.


19-20.
대한항공 땅콩 사태 후에는 마카다미아를 사들고 거리로 나갔어요. 
‘이미 출발한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을 때 필요한’ 마카다미아를 팔았어요. 


21.
동료가 며칠 제주도 다녀오면 갑자기 공항에 나가서 놀려주기도 했어요.


22.
200가지 놀이를 만들겠다고 강원도로 합숙(!)을 떠나기도 했어요.


23.
밤새 결국 다 만들었어요.
  


24.
그래서 이런 문장들이 나오게 됐어요.
  


25.
웹사이트도 설계했어요.


26.
어쩌다 더 함께 할 수 없게 됐어요. 제주에 쓰레기 담는 통 ‘메아리’를 팔러 갔거든요. 그때 제주에서 만나서 여행을 하기도 했어요.


27. 
계속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첫 번째 여행을 함께 준비했어요. 이름을 부르는 마케팅을 시도했어요. ‘민서야, 전국일주 할래?’ 같은 방식이에요.


28.
자료를 내보내야 한다고 제안을 해서 찍은 보도사진이에요.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지만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어요.


29.
틈틈이 사무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족한 걸 이야기 했어요.


30.
‘익스퍼루트 버스’ 아니 줄여서 ‘익버’라고 부르는 차량에 고사를 지냈어요.


31.
그때 스쿠터도 새로 들여와서 보광동 밑 빠진 홍동우로 등극했어요.


32.
익스퍼루트 어드벤처 설명회를 해보자고 했고 불쑥 열었죠.


33.
갑자기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34.
그렇게 익스퍼루트 만든 지 2년이 됐어요. 이 사진을 찍고 ‘한량유치원’을 준비하기 위해 제주로 향했어요.


35.
'한량유치원'은 뭐 이런 생각이었어요.


36.
이런 문장들을 고민했어요.


37.
결국 돈을 쓰기 시작했어요.


38.
사람들이 모였고 그 시간들이 좋았어요.


39.
결국 ‘동업 계약서’를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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