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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식 Sep 11. 2024

나의 여행의 시작 -그랜드캐년

그랜드 캐년

1: 나의 여행의 - 그랜드 캐년


내가 여행에 대한  기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교과서를 통해서이다.

중학교 1학년 때인 것 다. “그랜드 케년다녀 란 기행문을 보았다.


 "피천득 선생님"이란 분이 그랜드케년을 다녀오고 나서 기록한 글이다.


원래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교과서에 나오는 글들을  공부를 위한 글이라 생각해서 그런

지 별로 교과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기행문 을 읽으면서는 딴 세계의 이야기 같고 신기하기도 하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당시 교과서 사진은 보통은 흑백이었는데 그때 그랜드케년 사진은 칼라였던것으로 기억한다.

 

그 사진을 보고 웅장함에 놀라고 깍아지른 깊은 절벽에 놀라고 그 가장 밑에 강물이 흐르는 것에 매료되었다.


원래는 평지였는데 7천만년 전 땅에 융기현상이 생기고  오랜동안 침식 작용으로  산이 생기고 저 밑에서는 콜로라도 강이 흐르게 되어 그랜드 케년이 되었다고한다.


나중에 나는 위쪽, 아래쪽, 강 이흐르는 아래까지 다녀오게 된 것도 그때 그 기행문 때문이었다.

그 글을 읽으며  가보고 싶다. “라는 생각었다. 


그러나 거기에 가려면 하늘을 날아가거나 아니면 바다 를 건너 배를 타야  건너갈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있었

다.

두 가지다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도 한번 못가보고 겨우 읍내에 만 살다가 죽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외국에 나가본다는 것은 그당시에는  아무나 할수있는일은 아니었다.


시골에 사는 나는 비행기도  보지 못했다.


가끔 높은 곳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고 가는 보이지도 않는 전투기는 본 적이 있으나

큰 비행기는 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미국이란 곳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그냥 신기한 그런 곳이 있구나 정도로밖에는 생각지 못했다. 내가 미국이란 곳에 갈 수 있을지는

차치하고라도 그랜드케년이라는 곳을 볼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생각정확14년 에 난 미국가볼 수 있었다. 내 나이 28살이었다.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 시골에서 미국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미국 까지 유학을 올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한 일이었다.  


그랜드케년의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한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난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   가장 먼저 돌아본 곳이 이 그랜드케년이었다.

첫 번째 그랜드캐년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속아서 구입한  buick 똥차를 타고 겨우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 숙소도 정해놓지 않았다.


산 위 이 lodge 에는 남은 방이 하나도 없었다. 저 산아래 까지 내려가야 숙소가 있을 거라 한다.

차로 1시간 이상이나 내려가야 한다.  3천미터 이상을 올라왔는데 다시 내려가는것은 고물차도그렇고 나도 할수없을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나는 그 LODGE  소파에 앉았다.

혹시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알았다고 말하지만  그런데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인다.  


40분쯤 있었더니 매니저가 와서 방금 하나가 취소가 되었단다. 보통 그런 일은 없는데

그랜드케년오랫동안 마음찾아온 님에 한 보답인 것 았다. 


밤에 방을 찿아들어 갔다.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온다.

커튼을 열어보았다.  앞에 그려진 것이 그림 인지 아니면 뭔지 엄청난 view 가 보인다.


이게 뭐지? 하며 문을 열고 나가보았다.  유 레 카  내가 선 곳은 그랜드케년의 언덕 바로 위였다.

가장 view 가 좋은 방갈로였다.


그렇그랜케년자신을 찾아온 이방인실망시키지 았다. 

나에게 가장 좋은 위치, 가장 좋은 방, 을 선사한 것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랜드케년에서도 하나뿐인 가장 위치 좋은 엄청 비싼 방이라 한다.

그런데 취소가 되어 나에게 그냥 거저 준방이라한다.


여행복이 있나 보다. 그 후로 가보고 싶은 가보말이다. 




방문한 나라를 열거하면 “그래 너 잘났군 잘났어 “ 할 거고 아무튼 여권이 항상 마지막 페이지까지

도장 찍고 다시 발행한 적도 있었다. (지금 세어보니 나라만 거의 39 나라이다 )


도장 찍어 주지 않는 나라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장 찍어 지 않 나라는 “이스라엘과  “ 둘이었다. 


이스라엘 도장을 받으면 그 주위 이슬람 국가들을 갈 수 없어 그런 것이고 북한은 종이 비자 한 장을

주었다.


한국말이 통하는 유일한 나라 북한은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사람도 마찬가지 같은 생각을 가졌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너무 먼 당신이었다.


이렇여행할 수 있었던 두고 보면 “랜드 년”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그랜드케년이 되어보고자 한다.

실지로  한국. 미국. 몽골. 태국.라오스

  5나라를  제외하고는 오래 살아본 적은 없다.


모두 다 2주 이내로 다녀왔다.


생각하는 여행은 한나라에서 최소 3 달이다. 3개월 정도는  있어야 조금 그 나라에 대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도 조금 배울 수 있고 문화와 전통도 조금은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내가 여행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건축역사 때문이다.  건축사 등  역사가운 데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건축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의 걸작이라는 만리장성 , 타지마할, 콜로세움, 마추픽추, 파르테논 , 피라밋  은 기대감을 가지고

볼 수 있었고 그 시대의 사람과 건물에  영적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한 나라의 역사, 한 도시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그래여행갈 때면  나라역사떠나편이다. 

알고 여행해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과거의  시간의 여행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여행기를 쓰는 것은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여행기를 쓸 목적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혀가는 내 기억을 다시 회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며 적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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