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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가루인형 Aug 13. 2020

자아소멸방지책

의미없는 일이라도 나 자신을 바쁘게 책찍질한다.

백수로 2년 육아로 1년을 지내오면서 하루하루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데 되돌아보면 도대체 무엇이 바빴고 왜 이것은 못했고 왜 저것은 계획만 세워두고 하지 않았는지 내 자신을 힐난하고 자책하기에 이른다. 

워킹맘의 내적갈등과는 또 다르다. 

한 없이 자존감이 바닥을 치다가 조금이라도 취미 생활이나 자기계발을 한답시고 1시간 이상의 시간을 소비하면 그야말로 난 아직 대견하다고 생각하며 자존감을 위로 끌어올린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만약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전업주부의 길을 걸었다면 지금과 똑같이 하루가 허망하고 마음 한 켠이 헛헛한지를...


나는 '산후우울증 따위 오지 않게 할거야' 라며 재봉질, 독서, 피아노, 첼로, 산책, 음악에 몸 흔들기, 홈트 등으로 틈만 나면 내 몸을 계속 가동시킨다. 

물론 꾸준히 하지는 못한다. 정말 육퇴하고 나면 에너지 고갈로 뭐든 하기 귀찮아지고 침대에 시루떡마냥 씻지도 못한채 누워있는 날들이 더 많으니까. 


엄마라는 역할이 너무 커지면서 내 자아가 계속 희미하게 사라지다가 사부작사부작 위와 같은 일들을 하면 다시 자아가 꿈틀대며 '그래 난 아직 사회에 필요한 인간이야. 그리 되어야만 해.'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여기서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경제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내 자신의 존재감이 타인이 느끼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아기가 돌이 되니 더 심각한 것은 '퇴사가 아닌 휴직이였으면 이제 복귀했을 텐데. 난 아제 갈 곳이 없구나.' 라고 생각하며 캄캄한 주방 식탁에서 노트북 화면에 띄어 있는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수정한다. 

그러다가 혼자 알코올을 들이키며 웃는다. 

'하하. 맞다. 40살인 아기 엄마를 어느 회사에서 채용하겠어. 가뜩이나 이런 시국에. 나 지금 뭐하는 짓이니?'라며 화면을 전환시키며 재봉질할 원단 쇼핑몰과 식자재 쇼핑몰로 접속한다. 


허탈함에 1초라도 빨리 아이옷 만들 원단과 우리집 삼식이들의식단을 쇼핑하고 내 마음을 치유해줄 도서 대여를 해서라도 소멸되어가는 내 자신을 다시 소생시켜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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