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과 참는 것
포기와 억누름의 차이일지도...
20대엔 그랬다.
모든 것을 참지 못했다.
모 해외브랜드 매장 직원의 불친절과 차별대우에 미국본사에 클레임 이메일을 여러번 보내 매장 매니저가 변경되고 그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담배피는 남자 고등학생들에게 금연구역이라며 당장 담배를 끄라고 말하다 큰일을 치를 뻔했다.
이렇듯 20대의 나는 호전적으로 보이는 인간이였다.
30대가 되자 그 모든게 귀찮고 부질 없어 보였다.
매장 직원이 불친절하면 그 매장을 안 가면 되었고 아파트 단지에 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면 관리소에 신고하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동생은 나보고 예전의 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왜이리 관대해졌냐고 물었다.
그냥 포기였다.
화내고 클레임 거는 것으로 내 귀한 시간을 빼앗기기 싫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고 회사에서 가정에서도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웬만하면 원만하게 누가 봐도 이성적으로 격해지지않는다.
그러자 거참, 사람좋네.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남편과도 싸우는 일이 없었다. 서로 감정이 격해질것 같으면 말을 섞지 않고 각자 시간을 벌며 자신이 가장 이성적인 사람인 것마냥 대화를 진행했다.
그런데 내가 직장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살림하고 독박육아를 하다보니 포기가 되지 않는 것들이 생겼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 내려놓아지지 않고 꾹꾹 화를 억누르는 것들이 많아졌다.
남편은 집안일과 육아를 같이 하지 않는다. 전혀 돕지 않는다.
그건 괜찮다. 나는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라는 이상한 변명으로 나 자신에게 합리화 시키며 그 부분은 마음을 내려놓은지 오래다.
내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원더윅스로 잠투정 하는 아기를 두시간이나 달래고 있는데 서재에서 게임만 하는 남편의 모습과 안고 달래느라 다리와 팔이 퉁퉁 부어올라 너무 저려서 잠시 우는 아기를 내려놓고 바닥에 앉아 있으면 계속되는 아기 울음소리에 갑자기 내게 와서 저렇게 내버려둘거냐며 말하는 남편의 모습이다.
더더욱 화나는 것은 내가 무엇때문에 화에 억눌렸는지 전혀 모르는 남편의 모습이다.
이 억누름은 잠을 자고 나면 효과가 배가 되어 언제 그랬냐는듯 남편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농담을 주고 받는다.
언제쯤이면 이 억누름도 내려놓음이 될 수 있을까.
내 자신에게 스스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