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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기 Dec 12. 2022

걸어도 걸어도

주말,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보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몇 편을 보고 좋아했지만, 그 감독의 다른 영화를 보는 데는 적당한 마음 먹기와 적당한 때가 갖춰져야 한다. 아껴서 본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 되려나.


잔잔한 풍경이나 일상 속에서 즐거워 보이는 요리하는 장면이나 잡담, 아이들이 노는 장면들, 클로즈업된 모습들이 행복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알게 되는 각각의 인물들과 가족들의 사연, 그리고 생각들, 아픔들은 '아, 그랬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그랬듯, 다들 비밀과 아픔과 사연들이 있고 그 안에서 어떻든 화를 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해하고, 이야기하며 같이 밥을 먹고, 걷고, 잠자는 사람들.


인물들은 아마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과 감상을 좀 쓰려고 했다가 여러 블로그에서 대단히 상세한 분석의 글들을 보고, 그냥 적당히 감상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대사가 특히 기억나는데, '누구나 숨어서 듣는 노래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라는 말. 그 말을 듣고 떠올랐던 노래가 하나 있었다. 어릴 적 혼자서 그렇게 생각하며 아껴 들었던 노래.

영화 '완벽한 타인'도 누구에게나 비밀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이야기했고, 이상의 단편 '실화'에서는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라고 했다.


전에 읽었던 '욕망의 탄생'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자아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변한다고 했다. 이 관점으로 보면(극단적으로 보자면) 타인과 나는 숨겨지지 않은 생각과 대화 속에서 관계가 만들어지고 서로의 자아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비밀과 과거들, 생각들이 어느 정도 숨겨져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상대방을 아주 공감하기보다는 자신의 틀 안에서 상대방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타협적으로 일부만 공감하고, 공감하지 못하고, 어떤 때는 가슴 깊이 공감하고, 그런데도 원래의 생각과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서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식으로 서로 조금씩 엇갈리면서도 함께 걸어가는 것들이 살아가는 게 아닐까, 이게 '누구에게나 비밀은 필요하다'는 말처럼 '가난하고 허전하지 않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특히 함께 있는 사람들, 가족들에게서는 말이다.


그나저나 이런 잡스러운 생각들을 들게 하면서도 잔잔한 풍경, 혹은 따스한 풍경을 마음속에 가득 품게 하는, 감독의 영화가 좋았다. 메말라가던 마음이 조금은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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