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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기억 Jul 27. 2023

고양이의 꼬리가 부풀었다

본가에는 고양이가 한마리 산다. 

길냥이 출신으로 우리 집에 새끼때 와 이제 4살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인연인데, 마트에 주차되어 있던 언니 차에 녀석이 훌쩍 올라타면서 연이 되었다고 한다. 마트에서 집까지 운전을 하고 가는 내내 어디선가 낑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아파트에 도착해 주차 후, 차에 내려 살펴보니 자동차 하부 어딘가에 고양이가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겁을 잔뜩 먹은 새끼 고양이를 온가족이 출동해 겨우 구조를 하였다. 집으로 데려와 임보를 하다가 얼결에 녀석이 우리 집에 아예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고양이를 키우는 (혹은 모시는) 집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걸 '묘연'이라고 부른단다.


나는 겁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다.

나보다 작은 강아지가 왕왕 짖기만 해도 무서워 지나가지 못하는 사람. 그러니까 내가 본가에 있었다면, 요 작은 녀석은 아마 나의 반대로 우리집에 자리를 잡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집에 없었고, 함께 살던 조카가 고양이 키우고 싶어! 를 시전하여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다른 생물을 집에 들이게 되었다.  


사실 엄마는 고양이라면 질색인 사람이었다. 고양이의 눈이 무섭다고 했다. 아버지의 경우도 어릴 때 마당 있는 집에서 강아지를 키운 경험이 전부였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강아지를 개장수에게 팔아버렸고, 어린 아버지는 키우던 강아지가 혹여나 보이지 않을까, 동네 뒷산에 올라가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처음엔 고양이를 들이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는 아버지와 엄마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버지는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시면서 항상 '00아~' 하고 고양이의 이름을 불렀고 엄마는 고양이와 한 이불을 덮고 자기 시작했다. 마치 아기를 안 듯, 고양이를 안고서는 둥가둥가 하며, 고양이의 오묘한 노란 눈동자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사진의 고양이는 우리집 고양이와 상관이 없는 고양이다

문제는 나였다. 겁이 많은 나는 녀석과 친해지는 데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아니 정확히는 아직도 친해지지는 않았다. 그저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초반에는 본가에 내려가면 그 작은 녀석이 무섭다고, 문을 꼭 닫고 안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우리 아이는 착해요, 를 시전하는 엄마와 아빠가 꽤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고양이와 함께 살아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녀석은 꽤 똑똑한 편이다.

초인종 소리에는 우다다 방으로 달려가 숨고, 도어락 소리에는 우다다 달려와 현관문 앞으로 식구들 마중을 나온다. 새끼 고양이었던 녀석은 이제 4살이 되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집에 내려오면 나는 먼저 현관문을 열고 녀석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손과 발을 내민다. 녀석은 킁킁, 내 냄새를 맡고 이내 흥미없다는 듯 몸을 돌린다. 가끔은 곁에 와 괜히 머리를 부비고 간다거나 톡, 손으로 내 발뒤꿈치를 치고 사라지기도 한다. 기분 좋은 날에는 내가 있든 말든, 거실 바닥에 발랑 드러누워 배를 내보이기도 한다.


결혼준비를 하며 한동안 본가에 내려가지 않았었다.

그러다 암진단을 받게 되었고, 급히 자취집을 정리하고 본가로 내려오게 되었다. 내가 쓰던 방은 고양이의 화장실 방으로 쓰이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나는 부모님의 옷방에 작은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 지내야 했다. 수술 날짜가 잡히고 약 한 달간, 그 기간이 통들어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당시 나는 1기로 추정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암의 경우 수술을 통해 장기를 떼어낸 후에 정확한 기수를 알 수 있다. 1기는 어디까지나 추정이지, 확실한 것이 아니었다. 막상 수술을 해보았더니 다른 곳까지 전이가 되어 3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몇 안되는, 좋지 않은 경우에 속하였지만 당시에는 그런 사례들만 자꾸 눈에 들어왔다. 기수가 높아지면 그만큼 생존율도 낮아지고, 항암, 방사선 등도 받아야 했다. 모든 것들이 무서웠다.


수술 전까지 최대한 잡생각을 떨쳐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수술 후 빠른 회복을 위해선 체력을 키우는 것이 좋다는 암 카페 회원들의 조언에 따라 매일 만보씩 걷기 운동을 했다. 하지만 그 외 대부분의 시간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때 가장 부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렇게 방 안에 누워 있으면 작게 난 창으로 하늘과 건너편 동의 옥상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누워 하늘을 보고 있는데, 문득 옥상 위에 올라온 한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 걸렸다. 옥상에 사람이 올라갈 수가 있나? 문이 잠겨 있지 않는건가? 라는 생각에 제일 먼저 떠올랐고, 그 다음으로 저 남자는 왜 옥상에 올라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글로 옮기기 어려운, 아주 나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저기에서 떨어지면... 어떨까? 정말 아주 찰나의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고양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양이의 꼬리가 너구리 꼬리마냥 크게 부풀어 있었다. 마치 나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악질을 하듯 나에게 이를 드러냈다.


"야! 너 무슨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고양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 나 진짜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한 거지? 고양이의 부푼 꼬리를 보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다시 올려다 본 건너편 옥상에는 사람이 사라지고 없었다.


고양이는 꼬리를 통해 기분을 표현한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은 꼬리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을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알기론 이렇게 꼬리를 부푸는 것은 화가 났을 때나 분노, 무서움 등의 감정을 느꼈을 때였다.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엄마가 고양이의 부푼 꼬리를 보고는 고양이를 야단치기 시작했다. 너 왜 언니한테 그러니! 하면서. 나는 그게 아니라고, 고양이가 날 도와준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얘기할 수가 없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쁜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알릴 수가 없었다. 이건 아마 평생 알릴 수 없을 것 같다.





지금도 가끔 엄마는 그때 일을 얘기한다. 쟤가 왜 그렇게 꼬리를 키웠나 몰라, 하면서. 나때문에 괜히 가족들에게 야단을 맞는 고양이가 불쌍하고 미안해 간식을 사다 주었다. 캣타워도 볕이 더 잘드는 곳으로 옮겨주었다. 고맙다고, 네 덕분에 살았다고, 가끔 고양이를 보며 속삭인다.


다음주에는 신랑과 함께 본가에 내려간다. 우리집 고양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과 간식을 사서 내려갈 생각이다. 고마워, 00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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