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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최 Oct 19. 2018

[서평]  "당신이 옳다"

'정혜신의 적정심리학'을 읽고


적정기술, 그리고 적정심리학.

이 책에 대한 이해가 빨랐던 것은 저 두 단어의 공통점 때문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영어 교과서에 나온 ‘적정기술’에 대해 프로젝트 수업을 매년 해왔다. 적정기술 프로젝트의 핵심은 공감이다. 잘 알지 못하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필요에 공감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적정기술이다. 물을 길러 다니느라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소녀들에게 큐드럼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먼저 소녀들의 상황과 마음에 공감해야 한다. 그래야 필요를 이해하고 가장 알맞은 기술을 개발해 도움을 줄 수 있다. 내 영어 수업시간에 미래 과학자들은 적정기술 관련 영어지문을 읽고 이해하고 전공지식을 살려 기존의 개발된 적정기술을 개선해 수업시간에 영어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하는 수행평가를 준비하면서 공감을 배웠다. 나는 내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배운 그 공감을 품고 앞으로 세상에 필요한 적정기술을 더 많이 만들어 주길 기도했다.     


사실 내가 쌍용자동차 해고자에 대한 일을 알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세월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세상일에는 별 관심없이 오로지 내 자신의 대학원 공부와 결혼,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에 집중했다. 굳이 쌍용자동차 노동자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회의 불의나 소외된 이웃들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사는 것이 전쟁 같았다고, 내 코가 석자였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외부에 대한 공감을 스스로 차단해 버린 것은 아닌 가 싶다. 그렇게 살다 세월호 침몰을 TV에서 보았고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집에 있는 내 아이들과 세월호 학생들이 오버랩되었다. 배와 함께 가라앉은 교사들이 바로 내 모습 같았다. 이후 나는 몇 년간 수학여행 배 안에 갇혀 아이들과 함께 가라앉는 꿈을 꾸었다. 나는 꿈에서, 현실에서 결코 잊지 않겠다고 내 방식으로 그이들을 추모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제 오늘 사무실에 밤늦게 남아 정혜신 선생님의 여러 에피소드를 읽으며 울컥울컥 했다. 첫 번째는 ‘존재증명’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당신이 옳다” 이 말만큼 살면서 듣고 싶은 말은 없었다. 나는 열심히,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는데 “당신이 옳지 않아.”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화가 났다. 그래서 미안하다거나 사과하는 말 대신 내가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온 힘 다해 싸웠던 것 같다. 대학공부를 하는 것보다 빨리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오는 자식을 원하는 부모님에게, 자기 자식들보다 내가 더 잘 되지 않길 바라는 것 같았던 친척들에게 내가 옳다고 증명하려고 혼자 열심히 싸웠다. 나는 그렇게 “경계 세우기”를 하고 있었던 같다.


두 번째 울컥하게 했던 말은 ‘다정한 전사’였다. 나의 다정한 전사는 남편이었고 시부모님이었다. 나의 상황을  공감해 주었고 더 이상 혼자 싸울 필요가 없다고 손을 잡아주었다. 내가 힘든 순간에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 공감을 배웠고 지금도 배워나가고 있다. 물론 쉽지 않다. 난 아직 내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하고 상대방의 공감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만나서 이야기가 깊어지면 젊은 시절 가족들의 무례함과 폭언으로 인해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에피소드를 늘어놓는 지인이 있었다. 그분의 스토리는 여러해 들었지만 지금도 그 얘기를 할 때는 젊은 시절의 서운함과 분노가 고스란히 되살아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보니 그분은 아무도 자신의 얘기에 공감해주지 않아서 계속 힘듦을 표현하셨던 것 같다. 내가 좀 더 공감을 배우고 나면 “지금 마음은 좀 어떠세요? 도대체 그때 얼마나 힘들었던 거예요?”라고 손잡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300페이지가 넘는 적정심리학을 만 이틀 만에 읽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혜신샘의 구구절절이 내 살아온 삶의 궤적에 대한 위로와 격려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누군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잘 살아왔다고, 네가 선택한 그 길이 옳았다고 눈 뜨끈하게 다독여주는 속삭임이고 손길이다. 그리고 나도 세상에서 공감의 전사로 심리적 CPR을 수행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희망의 전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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