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정리』를 읽고
현주언니.
다행히 세상이 끝나지 않아 오늘도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저 또한 미래에 속한 것이었던 언니의 편지가 현재가 되었을 때 마음이 무척 다급해집니다. 이제 남은 시간이 일주일 밖에 없다는 신호이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다행인 건 언니의 편지를 읽는 즐거움이 다급한 마음과 함께 공존해요. 편지를 읽고 난 후 일주일 동안은 머릿속으로 여러 번 혼자 편지를 썼다 지웠다 합니다. 얼른 글을 써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서요.
습했던 8월 마지막 주를 언니는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저는 유독 정신없는 한 주였습니다. 제 몸과 마음의 분주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영역은 바로 끼니입니다. 저의 끼니, 남편의 끼니, 아이의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요. 아마도 살림과 요리에는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 그렇겠지요.
제 딸의 애칭은 나무입니다. 태명은 아니고 그저 나무처럼 우직하고 든든하게 자랐으면 싶어서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바쁜 엄마, 아빠 덕에 나무는 친구들보다 이른 등원, 늦은 하원을 합니다. 차로 15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하원 차량을 타고 한 시간이나 돌아서 여섯 시경에 집 앞에 내립니다. 저는 오후 내내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다섯 시가 넘어가면 부랴부랴 집으로 가 나무를 맞이해요. 그리고 그때부터 제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집에 먹을 게 없는 날이 대다수라서요.
이번 주에는 부랴부랴 마트에 들러 닭다리를 산 후에 하원 버스에서 내리는 나무를 맞이했습니다. 집에 돌아왔지만 요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싱크대 상태가 심각하더군요. 정리를 먼저 시작했죠. 여섯 시 반이 넘어가자 마음이 급해 얼른 밥을 하고 찜닭 소스와 야채를 휘리릭 넣고 끓였습니다. 일곱 시 반이 다 되어가요. "나무야 먹자!" 외치고 맛을 보는데, 매워요. 제가 급한 마음에 확인도 안 하고 매운 소스를 넣은 거예요. 대체할 먹거리가 하나도 없는데 말이에요. 제가 느꼈을 절망, 언니는 혹시 아실까요? 놀라운 건 이번 한 주 동안 나무의 밥을 만들면서 두 번이나 매운 요리를 했다는 겁니다. 일곱 시 반이 넘어가면 아이는 배가 고파서 뭐라도 먹고 싶어 하는데 제 눈앞에는 매운 양념을 잔뜩 넣어 만든 요리만 있었던 한 주였어요. 과연 내가 엄마라고 불려도 되는 걸까 생각이 들 만큼 절망적인 한 주이기도 했고요.
가사 노동 중에서 저를 가장 절망에 빠트리는 영역은 놀랍게도 요리가 아니라 정리정돈입니다. 요리도 정말 못하는데 정리는 더 못해요. 온갖 그릇과 양념들이 가득한 싱크대, 세탁기에 들어가기 위해 쌓인 빨래더미, 세탁기에서 나온 옷더미, 점점 물때가 짙어지는 화장실, 통통해지는 쓰레기통, 버려도 버려도 샘 솟아나는 재활용, 여기저기 흩어진 장난감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수북하게 쌓여있는 생활용품들. 더 열거하지 않아도 아실 거라 생각해요. 매일 누군가는 쓸고 닦고 정리해야만 하는 것들이요.
원체 깔끔하고 부지런한 성격이 아닌 저에게 집안 정리는 끝나지 않는 숙제입니다. 정리에 관한 책을 찾아 읽어도 소용이 없어요. 사실 정리에 관한 책을 읽을 시간에 정리를 해야 하는데 저는 책을 찾아 읽고 있으니 이미 그른 걸 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정리』의 저자는 데이터 과학자예요. 데이터를 다루고 정리하는 사람이지요. 데이터를 정리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저자에게도 정리가 끝나지 않는 숙제이자 곱씹어야 하는 키워드인가 봐요. '정리'라는 단어로 책까지 쓴 걸 보면 말이에요. 프롤로그에서 본인이 ADHD인이라고 밝히지만, 아이가 둘이고 일을 하고 살림까지 한다는 저자의 설명을 읽고 나니 ADHD가 아니었다고 해도 정리가 쉽지 않은 환경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남아공에서 꽤나 큰 집에서 살았던 저자는 결혼을 하고 영국에 신혼집을 얻으면서 단칸방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거주 공간의 면적이 눈에 띄게 줄어든 거죠. 그리고 그 단칸방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더욱 심각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좁은 공간에 늘어나는 사람과 물건. 그리고 부족한 수납공간.
정리란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들을 치우고 모으고 버리고 규율을 정하여 질서를 만드는 행위다. 여기서 핵심은 뭔가 '치워야' 정리가 된다는 것. 그러려면 치운 것들을 받아줄 빈 공간이 넉넉해야 하는데 우리 집에는 치운 물건을 받아줄 빈 공간이 늘 부족했다.
…
수납장이 늘어날수록 물건들은 제자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움직일 공간은 더 줄어들었다. … 나의 추억이, 나의 흔적이 점점 늘어나면서 나를 압박해왔다. 나는 쉴 새 없이 빈 공간을 재면서 나를 압박해오는 것들을 억지로 수납장에 밀어 넣었다. … 당시 나에게 정리란 보기 좋게 질서를 만드는 의식이 아니었다. 숨 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분투였다. (P.64-65)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제 생활을 누군가 옮겨 놓은 것 같아 소름이 돋았습니다. 소박하게 두 명이 살기 여유로웠던 신혼집에서 두 번의 이사를 거치며 집의 크기가 많이 줄었어요. 큼직한 가구들을 버렸지만 자잘한 짐이 들어갈 수납공간이 늘 부족해 많은 물건이 바닥과 가구 위를 떠돕니다. 그래도 두 명이 살 때는 괜찮았어요.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집이 넓지 않아도 적당히 나만의 질서를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두 사람의 짐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짐이 들어오니 그때부터 걷잡을 수 없어지더라고요.
궁지에 몰린 제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나의 추억, 나의 흔적을 예쁘게 찍어 중고거래 어플에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퇴근 후 은은한 조명 아래 켜두었던 아로마 캔들이라던가, 덕질을 하며 모았던 굿즈라던가, 재밌게 읽었던 웹툰의 출간본 같은 것들이요. 아이의 짐이 늘어나면서 '엄마로서의 삶' 이전에 생긴 나의 흔적들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둘 수는 없었어요. 아기 물건 정리를 위한 빈 공간을 만들어야만 했거든요. 저자는 그래도 저보단 공간의 여유가 있었나 봐요. 집 밖으로 쫓아낸 게 아니라 수납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니 말이에요.
'정리란 숨 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분투였다'는 문장이 저에게는 현재입니다. 요즘 저의 정리는 숨 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분투에 가까워요. 정리할 여유를 주지 않는 분주한 일상과 여기저기 흩어진 물건들이 제 마음을 벼랑 끝까지 몰 때면, 저는 늦은 새벽에도 눈에 불을 켜고 중고거래 어플에 올릴 물건과 종량제봉투에 넣을 물건을 찾습니다. 그리곤 물건이 팔리거나 종량제봉투가 가득 차면 어렴풋한 희열을 느낍니다. 내가 오늘도 비워냈구나, 싶은 마음에서요.
현주언니.
제가 이번 한 주 내내 분주했던 진짜 이유는 숨 쉴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저렴하게 구매했던 나무의 장난감 정리함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모든 장난감이 매트 위를 떠돌았거든요. 주방에는 정리하겠다고 꺼내놓은 용기들이 몇 주 째 겹겹이 쌓여있었고요. 베란다에는 세탁기 돌릴 타이밍을 잡지 못해 쌓인 옷가지가 산을 이루고 있었어요. 그 모든 것들이 저를 압박하니 제가 정신이 없을 수밖에요.
이 책을 펼쳐서 읽기 전, 주중에 쓸모없는 장난감 정리함을 갖다 버리고 더 많이 수납할 수 있는 장을 샀어요. 작아져서 입지 못하는 나무의 옷과 신발을 물려주기 위해 한바탕 정리해서 싸두었고요. 바닥에 굴러다니는 장난감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으며 나무에게 "이건 이제 다른 동생한테 물려주는 게 어때?"라고 질문하기도 했어요. 물론 대다수 거절당했지만요. 책을 읽고 나니 온갖 물건들로 인해 궁지에 몰렸던 제가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숨 쉴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애를 썼더라고요. 아직까지도 궁지에 몰려있는 듯 하지만 말이에요.
누군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정리하고, 깔끔하고 각 잡힌 공간을 보며 만족감을 느끼겠지만, 저는 확실하게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궁지에 몰려 급급하게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해 허우적 대겠지요.
이 책의 초반부에 자리 잡은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어질러질 일도 없지만>이라는 꼭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저자의 친구가, 지인의 집을 방문했는데 주방이 너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대단하다고 비결이 무엇이냐 물으니 지인이 '주방을 안 쓰면 깔끔하게 유지하기 쉽다'라고 대답했답니다. 모델하우스 같은 집의 비결이 정말 모델하우스처럼 사용하지 않고 전시만 하는 것이란 말이잖아요. 이 말을 듣고 저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맞다.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어지를 사람이 없으니 깔끔함이 유지되겠구나. 하지만 나와 우리 가족이 이 공간에서 계속 존재하고 생활해야 하는 이상 청결도 10점 만점을 유지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완벽하게 셋팅해준다 해도 내가 뭔가를 하는 이상은 그 완벽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 그게 거슬린다면 그냥 숨만 쉬고 누워있어야 한다. 그래서 10점이 아닌 순간들을 바로잡아야 할 불완전한 상태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주기적으로 여러 모습을 띠는 나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 나는 박제가 아니고 아이들은 인형이 아니므로. 나와 가족이 존재하지 않아야 유지될 수 있는 깔끔함이라면 어쨌든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P.39-40)
정리왕, 정리전문가, 정리의 신인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간신히 발 디딜 곳을 확보하며 살아가는 저는 이 대목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를 압박하는 많은 물건들이 또 귀여운 흔적일 때도 많더라고요. 요즘 가위질에 푹 빠져있는 나무가 동그랗게 오려놓은 종이 달팽이 몇 십 마리라던가(하루에 몇 십 마리씩 오립니다. 진짜로요.), 무얼 신을지 고민하며 다 꺼내놓은 140-150mm의 앙증맞은 신발들이라던가, 한두 개씩만 꺼내먹고 여기저기 던져놓은 젤리 봉투들 말이에요. 저자의 문장처럼, 이 귀여운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아야 유지되는 깔끔함은 저에게 의미가 없는 깔끔함이었어요.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니 정리를 하는 저의 손과 발이 조금은 가벼워졌어요.
현주언니. 이번 편지는 꽤나 길었습니다.
편지를 주고받기에 앞서 정했던 독서 계획은 제 책장에 있는 책들을 꺼내 읽는 것이었어요. 사실 이 마저도 책장 정리를 위한 계획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10년 전이든 5년 전이든 1년 전이든 이 책을 사서 책장에 꽂은 사람이 바로 저인 거예요. 그러니 책장에서 고를 때부터 이미 그 주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거죠. 앞으로의 편지도 어쩐지 길 것 같아 미리 밑밥을 깔아봅니다.
오늘 언니는 부지런히 집안을 정리하며 어떤 귀여운 흔적을 발견하셨을까요? 제가 보는 것에 2배나 보고 계시겠지요? 대체로 숨 쉴 수 없이 몰아치지만 어쩔 수 없는 귀여움으로 인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삶인 듯해요. 남은 한 주, 언니의 육아 일상과 읽고 쓰는 일상이 여러 귀여움으로 인해 더 가볍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2025년 8월 30일,
지은 드림.
<우리를 지키는 편지> 매거진에는 매주 현주와 지은이 책을 읽고 서로에게 편지를 써 업로드합니다. 앞선 편지, 앞으로의 편지가 궁금하신 분은 매거진을 눌러보실 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