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를 읽고
현주언니.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언니와 아이들은 건강한지요? 나무가 끙끙 앓은 뒤 그다음 한 주는 제가 앓았답니다. 세균맨을 잘 퇴치하지 못했어요. 언니는 부디 온갖 세균맨과 싸워 이기시길 바라봅니다.
제가 아팠던 한 주 동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애는 자기가 아파도 푹 자고 푹 쉬고 엄마가 아파도 푹 자고 푹 쉬는데, 나는 애가 아파도 푹 못 자고 못 쉬고 내가 아파도 푹 못 자고 못 쉬는구나. 그래서 또 마음이 격렬히 요동치는 한 주를 보냈습니다. 똑 떨어져 한동안 먹지 않았던 영양제부터 다시 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건 건강과 체력뿐이니까요.
제가 아팠던 한 주간, 나무는 기특하게도 짧게는 몇십 분 길게는 한 시간까지 제가 잘 수 있도록 혼자 놀아주었습니다. 두통 때문에 힘들어서 "나무야, 엄마 머리가 너무 아파. 조금만 잘게."하고 쓰러져 잠들었는데, 깨어나보니 사부작거리며 혼자 놀고 있는 나무가 너무 대견했어요. 짧은 시간 그저 혼자 놀며 나에게 회복할 틈이라도 주면 대견한 게 바로 4세 아가네요. 그런데요, 언니. 제가 하필 아프고 난 후에 이 책을 읽어버렸어요.
『페퍼민트』의 주인공이 아픈 엄마를 간병하는 ‘시안’이거든요.
시안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프록시모 바이러스가 유행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해원의 가족이 그 바이러스를 국내로 들여온 첫 감염자였고, 그로 인해 시안의 가족들도 감염이 된 거예요. 그리고 그 바이러스로 인해 엄마는 침대에 누워 기계에 의지한 채 숨만 쉬는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겪었던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 2020년도가 떠오르는 배경이었어요. 사람들의 모든 비난을 받으며 힘들었던 첫 감염자들, 해원의 가족은 먼 곳으로 이사를 갑니다.(우리도 뉴스에서 적나라하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들의 동선을 보고 있었던 기억, 나시지요?)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시안은 여전히 아빠와 함께 엄마를 간병하며 살고 있고요. 서울로 돌아온 해원의 가족을 갑작스럽게 다시 만나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평소 청소년 소설, 영어덜트 소설을 좋아하는 저는 백온유 작가의 소설을 지금까지 총 세 권 읽었습니다. 『유원』, 『경우 없는 세계』, 『페퍼민트』 순으로요. 세 권 모두 정말 좋았어요. 아직 전 작품을 읽은 건 아니지만, 앞으로도 백온유 작가 소설은 믿고 보아도 되겠다 생각했답니다. 제가 읽은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무언가 무거운 것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청소년이었다는 거예요. 『유원』의 주인공인 유원은 화재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입니다. 나를 살린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과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짊어지고 있는 청소년이죠. 『경우 없는 세계』의 청소년들은 가출을 해야만 하는 환경을 짊어지고, 당장의 가난과 현실을 짊어지고 있어요. 『페퍼민트』의 시안은 간병인의 삶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고요.
사실 각각의 모양이 다를 뿐이지 모든 청소년,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은 무언가를 무겁게 짊어지고 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에서처럼,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가정은 또 저마다의 이유로 아이들의 어깨에 무거운 무언가를 올리고 있을 거예요. 사실은 행복과 불행에 상관없이, 모든 가정이 그럴지도 몰라요. 아이가 살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은 가까운 어른들이고, 내 아이에게 가장 가까운 어른은 나인데, 그럼 나는 내 아이의 어깨에 무엇을 올리고 있을까요? 자의든 타의든 말이에요.
청소년기 내내 엄마를 간병했던 시안은, 여느 청소년들이 평범하게 누리는 일상을 누리지 못해요. 그 사실을 해원을 보며 서서히 깨닫습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잖아요. 특히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어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사람은 더더욱이요. 온종일 누군가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하고요. 청소년이기에 해야만 한다고, 우리 모두가 당연히 생각하는 학업과 진로를 위한 걸음들도 내팽개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 생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시안은, 해원을 보며 자신이 정체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자신이 그저 엄마를 견디며 엄마 곁에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문득, 엄마도 엄마의 좁은 몸을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의 유일한 딸이라서 모든 마음을 다 받고 자랐다. 염려, 걱정, 사랑. 엄마를 사랑하면서 엄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을 낭비로 여긴다는 게 미안하다. 엄마는 나를 키우는 동안 자신의 삶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한 적 있을까.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칠 때, 기저귀를 갈 때, 우유를 먹일 때. p.98
엄마의 입장에서,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저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너무 찔렸어요. 제 아이가 만일 "엄마는 나를 키우는 동안 삶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라고 물었을 때, 명쾌하게 "아니!"하고 대답할 자신이, 저는 없거든요. 늘 마음 한 구석에는, 나도 이뤄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작은 외침이 메아리로 돌고 있으니까요. 사실 그 외침이 지금 언니와 제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는 어른이고, 아직까지는 큰 병이 없이 건강하고, 경제 활동을 하고 있고, 당연하게 굴러가는 일상이 있기에, 나의 작은 아이에게 '갑'의 위치에서 돌봄을 제공하고 있는 걸까요? 어떻게 한 번을, 내가 억울해하고 내가 힘들어하는 지점이 언젠가는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속이 쓰렸고, 마음이 무거웠어요. 병 그리고 아픔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오고야 마는 것이니까요.
"너무 슬퍼하지 마. 모두 결국에는 누군가를 간병하게 돼. 한평생 혼자 살지 않는 이상, 결국 누구 한 명은 우리 손으로 돌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도 누군가의 간병을 받게 될 거야. 사람은 다 늙고, 늙으면 아프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까. 너는 조금 일찍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해 봐."
나는 눈을 감고 상상해 보았다. 나의 오십 년 후를. 흰머리가 생기고 관절이 상하고 기억력이 감퇴할 것이다. 분명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게 될 것이다. 아니, 당장 며칠 후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해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p155
모두가 결국 누군가를 간병하게 된다면, 사실 제가 간병할 사람은 우리 부모님일 거예요. 그 지점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간병하고 계시거든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도 꽤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계셨고, 외할머니와 엄마가 간병의 많은 부분을 담당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슬프지만 간병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는 후련해 보였던 외할머니의 건강이 최근에 많이 안 좋아졌어요. 움직이는 게 힘들 정도로요. 병원에 입원했을 때나, 퇴원해서 집에 계실 때나 엄마와 삼촌들이 할머니를 돌보고 있습니다. 시간대를 나눠가면서요. 점심은 엄마가 차려드리고, 저녁은 막내 삼촌이 차려드리는 식으로요.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다 문득, 엄마 아빠가 제대로 된 보험을 들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생각보다 현실적인 사람이죠? 당장 두 분 중 한 분이 눕게 되면 그 간병은 고스란히 저희 사 남매의 몫이 될 테니까요. 저는 그중 첫째이고요. 앞선 메아리와 같은 메아리가 또 마음속에 돕니다. 나는 할 게 많은데, 나는 이룰 게 많은데, 나는 계획이 많은데, 내가 엄마를 아빠를 간병할 수 있을까? 경제 활동도 하고, 자신의 엄마도 돌보고, 나의 딸까지 돌봐주시면서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내가 힘들까 봐 집안일도 해주시는 엄마를 두고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기적이고 부끄러운데, 어쩔 수가 없어요. 이게 솔직한 지금의 제 모습이니까요. 엄마에게나 딸에게나 저는 정말 근거 없이 '갑'의 위치에서 돌봄을 제공하려고 하나 봐요. 받을 것은 쏙쏙 다 받으면서요.
우리는 재난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사실 그 누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병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그게 마지막 대화라는 걸 알았다면 엄마는 내게 무슨 말을 건넸을까? 엄마는, 우리는,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다. p.177
병원에 막 입원해서 엄마가 아직 의식이 있었을 때를 떠올리며, 시안은 말합니다.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다면 엄마와 자신은 사랑을 말했을 것이라고요. 어깨에 잔뜩 무거운 것을 짊어진 채 엄마를 보면서, 시안은 사랑을 말합니다. 같은 엄마의 입장에서 시안의 엄마를 생각하면 너무 슬퍼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옮은 바이러스로 인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건강과 의식을 잃고 오롯이 가족들에게 나의 몸과 삶을 의지하게 되었잖아요. 내 남편이, 내 딸이 나로 인해 이런 삶을 살고 있구나 하고 시안의 엄마는 다른 두 가족보다도 더 절절히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 거예요. 그마저도 표현할 길이 없으니 더 참담하고요.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걸 보면, 시안의 엄마는 시안을 넘치는 사랑으로 키워낸 멋진 엄마일 거라 상상해 봅니다.
현주언니.
지난 편지에서 참회하며 펑펑 울었다고 적고선, 저는 오늘도 나무에게 여러 번 소리를 질렀습니다. 밥을 바닥에 흩뿌렸다고, 장난을 치며 물을 뿌렸다고, 장난감을 바닥에 떨어뜨렸다고, 정말 여러 번이요. 그리고 자기 전에 나무를 끌어안고 사과를 했답니다. 오늘은 유독 소리를 더 많이 지른 것 같아서요. 혼날 때마다 언뜻 두려운 표정이 스쳐가는 나무의 얼굴이 너무 마음에 걸려서요. 오늘 하루, 나무를 사랑으로 키워내지 못한 것 같아서요.
언젠가 나무가 저에게 소리 지를 날이 오겠죠? 제가 나무처럼 밥을 흩뿌리고, 물을 엎고, 물건을 떨어뜨릴 순간이 반드시 올 테니까요. 모든 일에서 그렇듯, 돌봄에도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합니다. 지금 내가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고 해서, 영원한 제공자는 아니니까요. 언제든지 타인의 손에 나의 몸과 삶을 맡길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요. 재난을 준비할 시간이 없으니, 누구나 언제든 아플 수 있고 누구나 언제든 간병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백온유 작가 덕에, 두 어깨 무겁게 온갖 것을 짊어지고 있는 청소년들 덕에, 오늘도 내 곁에 있는 엄마와 딸 덕에 저는 꽤 오랜 기간 알고 있던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를 돌봄에 적용해 봅니다.
재난을 피할 수 없고, 준비할 시간이 없다고는 해도, 우선은 영양제를 사고 멈췄던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누구에게나 돌봄은 현실이니까요.
현주언니,
짬나는 틈틈이 언니와 제가 주고받은 편지들을 다시 읽어봅니다. 마음을 다잡았다가 넘어지고, 또 잡았다가 넘어지는 육아와 일상의 연속이에요.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또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워낼 수 있을 거예요. 그래야만 하고요. 저의 희망 사항을 되뇌며 이만 줄입니다. 이번 주도 부디 몸과 마음 평안하시길 바라요.
2025년 10월 11일
지은 드림.
<우리를 지키는 편지> 매거진에는 매주 현주와 지은이 책을 읽고 서로에게 편지를 써 업로드합니다. 앞선 편지, 앞으로의 편지가 궁금하신 분은 매거진을 눌러 읽으실 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