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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와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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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ey Oct 31. 2023

이름 짓는 마음


신혼 때 시아버지가 쓰시던 차를 물려받았다. 2002년식 구형 산타페였다. 구형이면 어때, 차만 있으면 되지. 뚜벅이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전임으로 일을 시작할 예정이었던 우리는 그저 공짜로 차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아직은 돈벌이가 변변찮은 학생이라 강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었던 생활에, 차는 거대하고 새로운 구성원이었다. 첫 차가 생긴 기념으로 이름을 지어주는 게 어떻겠냐고 내가 제안했다. 남편도 동의했다. 차를 찬찬히 둘러보다가 번호판에 있는 ‘두’라는 글자가 보였다. 저거다. 몸체에 ‘두’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이유로, 구형 산타페는 ‘두두’라는 이름을 얻었다.

두 팔 벌려 열렬히 환영했던 것에 반해, 두두 때문에 꽤 애를 먹었다. 복잡한 종로길을 지나다가 중앙차선 한복판에서 갑자기 서버린 적도 있었고, 틈만 나면 기어 소리가 이상해져 주행하는 내내 애를 태우기도 했다. LPG를 주식으로 삼는 두두는 특히 추위에 취약했다. 촌각을 다투는 새벽 출근 시간에 얼어붙어 시동이 켜지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카카오 바이크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출근했던 기억도 있다. 남편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탔다는 두두는 우리에게 온 이후 때마다 카센터에 들러 부품을 교체하며 한 달, 두 달 연명했다. 그렇게 3년을 함께하다가 결국 시동이 멈췄다.

폐차를 결정하고 담당자가 수거하러 오기를 기다리면서 남편은 두두의 마지막 모습을 세심하게 사진으로 남겼다. 앞, 뒤, 양옆을 찍어 ‘두두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설명과 함께 나에게 전송했다. 신혼의 시작을 함께한, 우리의 지문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두두를 보내면서 둘 다 울컥은 아니지만 울렁 정도는 했던 듯하다.

두두를 보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새로운 차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어떤 것이 좋을까, 뚜껑이 열리는 차로 할까, 뒷좌석에도 온열 시트가 있는 게 좋겠다,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다 마침내 새로운 차가 왔다. 이번에도 자연스레 차의 번호판을 확인했다. 번호판 글자는 ‘주’였다. 두두 때의 작명법을 사용하면 자연스레 ‘주주’가 되는데, 이 이름은 너무 유치하게 느껴졌다. 자꾸만 머릿속에 시크릿쥬쥬가 떠올랐다. 주가 들어간 단어들을 여럿 생각해 보다가 결국 이름을 ‘우주’로 정했다. 남편과 나는 이름을 짓고 매우 만족스러웠다. 하얀 몸체에 까만 뚜껑이 열리는 차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우리는 작명 센스가 탁월하다고 서로를 칭찬했다. 그렇게 지난 2021년부터 우주와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2022년, 우리에게 아기가 찾아왔다. 계획은 있었으나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아기로 인해 놀라움 반 기쁨 반을 느끼는 것도 잠시, 고민에 빠졌다. 태명을 무엇으로 지어야 하지? 앞서 두 번의 이름 짓는 행위를 통해 만족감을 느꼈기에 자신이 있었다. 둘이서 머리를 맞대면 금방 지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 이름을 짓는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과거의 이력과는 반대로, 며칠이 지나도록 짓지 못했다.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태명을 어떻게 지었는지도 찾아보았다. 마음에 드는 태명이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아기에 대해 생각했다. 이 아기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는지, 이 아이와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결론이 나왔다.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면 세 명이 모두 친구처럼 지내고 싶었다. 부모로서의 위계가 아닌 책임감에서 나오는 거리만을 두고 싶었다. 친구처럼 즐겁게, 재밌게 살아보자. 그래서 아기는 ‘친구’가 되었다. 친구는 배 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임신 사실을 알리면 주변 사람들은 “태명이 뭐예요?”하고 물었다. ‘친구’라고 답할 때마다 칭찬이 따랐다. 너무 예쁜 태명이네요, 어머 태명이 너무 신기해요, 처음 들어봐요,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고민한 보람이 있군. 남편과 내가 함께 지은 세 번째 이름도 성공적이었다.

배 속의 아기는 점점 커졌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퇴근을 하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친구를 실물로 만날 날이 가까워지자 또다시 숙제가 생겼다. 아기의 진짜 이름을 지어야 했다. 태명은 구두로 불리고 마는 이름이었지만 진짜 이름은 출생신고를 한 이후 평생 아기가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름이었다. 세 번의 이름 짓는 행위를 성공적으로 해낸 우리는 자신만만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는지 각자 생각하고 서로 묻고 답하다가 답이 나왔다. 지혜로울 지(智) 벗 우(友). 엄마 아빠에게, 친구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지혜로운 친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기는 지우가 되었다.



우리가 지은 네 개의 이름 중 가장 깊고 많은 마음이 들어간 이름은 단연 지우이다. 두두와 우주의 이름을 지을 때는 마음은 고사하고 별다른 생각도 없었다. 그저 지칭하기 쉽게 지은 이름일 뿐이었다. 차는 우리 생활에 필요한 구성원이긴 했지만 무생물이었고 말 그대로 가족, 식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름을 짓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차와 함께한다는 소속감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두가 고장이 날 때마다 부분 부분 수리하며 들었던 돈을 모두 합치면 훨씬 상태 좋은 경차 한 대는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효율적인 지출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오래된 2002년식 산타페는 두두라는 이름을 가진, 좋은 파트너였다. 그래서 두두가 폐차장으로 갈 때 조금이나마 복잡한 심경을 느낀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무생물에 붙인 이름도 이런데, 마음을 가득 담아 지은 이름은 오죽할까.

지우와 함께 지낸 지 벌써 만 10개월 차에 들어섰다. 지우야, 지우야, 부르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제 지우는 조금씩 호명 반응을 한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름을 부르면 가끔 돌아본다. 10개월 동안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 지우는 그만큼 우리의 속을 까맣게 태웠다. 100일이 갓 지나 요로감염에 걸려 열이 39도 이상 오르기도 했고, 매트 밖으로 떨어져 쿵 소리를 내며 머리가 바닥에 부딪힌 적도 여러 번이 있었다. 시기에 맞게 예방접종을 하고 나면 열이 오를지도 몰라서 여러 번 이마에 손을 얻어보곤 했다. 질식사 위험이 있는 신생아 시기가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기가 엎드려서 자거나 이불속에 싸여서 자고 있으면 코에 가만히 손을 대보기도 한다.

차고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던 오래된 2002년식 산타페가 우리에게 와서 헤어지기 아쉬운 ‘두두’가 된 것처럼, 이름 짓는 행위를 통해 그 대상은 이름 짓는 이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이름을 짓는 행위에는 대상에 대한 책임이 포함된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직접 이름을 지은 두두에게 할 수 있는 책임을 끝까지 다했다. 이에 더해, 이름 짓는 행위에 ‘이름 짓는 마음’까지 깃든다면 그 대상은 단순히 책임져야 하는 대상이 아닌 감정을 소비하고 나누는 대상이다. 기쁘고, 슬프고, 놀랍고, 불안하고, 행복하고, 사랑을 느끼는 온갖 종류의 감정이 그로 인해 휘몰아친다. 우리에게 ‘지우’가 그렇듯 말이다. 남편과 나,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이 가득 깃든 ‘지우’라는 이름을 가진 아기는 자연스레 우리가 소비하고 나누는 감정을 자양분 삼아 더욱 단단하게 자라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이름 짓는 마음은 이름을 짓는 이와 이름을 가진 이를 연결해 주는, 생각보다 더 값진 마음이다. 우리가 직접 이름을 지어 지금 함께 생활하고 있는 우주와 (구) 친구 (현) 지우에게 앞으로도 책임과 감정을 다 하며 잘 지내보아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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