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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와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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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ey Nov 13. 2023

끼니독립만세!

아기의 끼니를 챙기다 발견한 죄책감


아기에게 밥태기가 왔다. 생후 6개월이 조금 안 되어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는 밥을 곧잘 받아먹었다. 쌀미음을 앉은자리에서 뚝딱 끝냈고 처음 고기를 넣어 죽을 주었을 때는 무려 100g이나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평소 고기를 좋아하는 아기의 아빠에게, 역시 너의 딸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유식에 관해서는 별 말썽이 없겠다고 방심하는 사이, 11개월에 접어든 아기는 입을 꾹 닫고 열지 않는 행위를 통해 먹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그 의사를 받아줄 수는 없었다. 입을 벌리지 않는 아기를 붙들고 좋아하는 고구마와 치즈로 회유를 하며, 매일 어떻게든 밥을 먹이고 있다.

이유식 만드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초기(6개월)에는 쌀을 곱게 갈거나 쌀가루를 구매해 냄비에 정성스레 끓여 미음을 만든다. 영양소를 고려하여 각종 야채를 때마다 주문하고, 찌고, 삶고, 갈아서 어떤 조합이 맛있을지 고민하며 또 냄비에 정성스레 죽을 끓인다. 중기(7-8개월)에 들어서면 감칠맛을 위해 육수를 추가한다. 나의 경우, 육아 인플루언서가 진행하는 공동구매를 통해 채수 티백을 저렴한 가격에 왕창 사두었고, 닭 육수는 고기를 삶을 겸 매번 직접 만들고 있다. 중기후반(9개월)을 지나서부터 이유식 후기(10개월~현재)에 이르면, 직접 먹겠다며 숟가락을 빼앗고 입을 꾹 다무시는 아기님 덕분에, 스스로 손에 쥐고 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 이유식까지 추가된다.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 매주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끓인다.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 이유식을 대령했는데 먹지 않겠다 버티면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아기라서 신진대사가 활발해 가뜩이나 땀을 많이 흘리는데, 돌 무렵이 되니 눈을 뜨고 있는 시간 내내 쉬지 않고 움직인다. 저렇게 땀을 내며 움직이는데 배가 안 고플까? 에이 배가 고프면 자기가 알아서 달라고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한번은 먹기 싫다는 아기를 정말 먹이지 않았더니 새벽에 배가 고프다고 울면서 깼다. 이제는 신생아가 아니기에 밤에 분유를 먹이면 안 되지만 배가 고프다고 우는 아기를 마냥 굶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 없이 분유를 먹였다. 오랜만에 새벽에 깨는 고통을 맛본 그 날 이후,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정한 양 이상의 밥은 꼭 먹이고 있다. ‘밥 먹이기 전쟁’을 아침, 점심, 저녁 무려 3차전으로 치르고 난 어느 날, 나의 전우는 조그만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커서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냐는 소리 하기만 해 봐. 어떻게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똥까지 닦았는지 상세히 다 말해주겠어.”     



통잠을 자지 못하는 신생아 시기에는 아기가 얼른 어른처럼 자주기를 바랐다면, 이제는 얼른 어른처럼 먹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아기는 지금 엄마, 아빠의 손을 빌려야만 자신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성장하고 성숙하면 아기는 자신의 손으로 밥을 먹을 것이고,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자신의 끼니를 알아서 해결하는 경지에 오를 것이다. '끼니독립'이라고나 할까? 아기가 자신의 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밥을 퍼서 한 끼를 완벽히 먹는 날을 꿈꾸며, 자연스레 나는 언제 '끼니독립'을 했나 생각해 본다. 맙소사. 아기의 끼니독립을 바라는 내가, 스스로는 아직도 끼니독립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 집에 살며 당연하게 주는 밥을 먹었다. 엄마가 끓여주신 찌개를, 아빠가 끓여주신 칼국수를 먹는 게 당연했다. 가끔 부모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미리 준비하고 가신 국을 데우고 밥을 퍼서 상을 차리면 되었다. 결혼 이후에는 당연하게 아침 식사는 굶었다. 공복에 출근해서 업무를 보다가 점심에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퇴근 후 저녁이 되어서 나의 건강과 삶의 질을 위해 직접 식재료를 다듬고 끓이고 볶으며 밥을 해 먹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침대 위에 널브러져 배달 앱을 켰다. 그렇게 저녁 식사까지 여러 식당 이모, 삼촌들의 손에 의존하며 살았으니 나는 진정 끼니 독립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었다.

아기를 돌보고 아기의 끼니를 챙기면서, 스스로 완전히 성장하고 성숙한 어른이라 착각에 빠졌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내 끼니 하나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 대전 어머니는 아들 내외가 제대로 못 먹을까 걱정되어 명절마다 고기며, 게장이며, 밑반찬들을 가득 싸주신다. 쌀이 떨어질까 싶어 쌀도 보내주시고, 지출을 줄이라며 선물로 들어온 식용유와 가공식품들도 챙겨주신다. 덕분에 분기별로 우리 집 냉장고가 가득 찬다. 집이 가까운 서울 엄마는 매주 하루씩 아기를 봐주러 오실 때마다 나물을 사 들고 와서 직접 무쳐놓고 가신다. 고구마며 파프리카며 신선하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농산물도 꼭 당신의 돈으로 사두고 가신다. 나는 아직도 양가 어머니의 손에서 나오는 음식들을 먹고 산다. 환갑이 넘은 두 어머니는 아직도 자신의 아이들을 먹이고 계신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 식욕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이고 그 욕구가 채워져야 제대로 삶을 꾸릴 수 있다. 그리고 먹기 위해서는 음식을 만드는 노동이 꼭 필요하다. 내 몸이 건강히 움직이고 내 삶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먹는 음식이니,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 그 노동을 감당하는 게 맞다. 내가 먹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일이니까. 농산물을 심고 기르고 수확하는 일은 전문적인 영역이라 여겨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식재료를 씻고 요리를 하는 정도의 노동은 청소년만큼만 자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일을 자연스레 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타인의 손에 의존해 끼니를 때우고 있으니 내 삶은 얼마나 미성숙한 삶인가. 거기에다 아기에게 “나는 너의 밥을 먹이는 게 힘이 들어. 그러니 얼른 커서 너 스스로 끼니를 챙기렴”과 같은 말들을 하고 있다니.

사실 아기를 돌보면서 여유가 없고 힘들 때 누군가의 손을 빌려 해결하는 한 끼는 그날의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시간은 여유롭고 에너지는 절약되고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그 도움이 반복되니 어느새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먹는 것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인데, 먹는 사람과 먹이는 사람이 따로 있었구나. 이쯤 되면 자연스레 “앞으로는 내가 내 끼니를 책임지겠어! 끼니독립을 이루겠어!”라고 말해야 하지만, 실천할 자신이 없다. 버거운 하루를 맞이하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고기 반찬과 엄마의 나물 반찬과 식당 이모, 삼촌들의 찜닭과 짜장면으로 눈앞의 위기를 넘길 것이다. 그렇게 나의 끼니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대신 나는 아기의 끼니를 맡을 것이다. 현실을 보니 끼니독립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5년 후, 10년 후면 독립을 이루었을까? 제발 그러기를 바라지만 여전히 자신은 없다. 아마 평생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나이가 든 대로 또 누군가의 손끝의 노동에 의존해 먹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하루빨리 독립을 이루어 내 끼니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그런 삶을 만세토록 유지하기를. 그런 마음을 담아 외쳐본다. “끼니독립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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