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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Aug 23. 2022

'도움이 되는 말과 행동' 목록에 관한 단상

요즘 여러 가지 주제로 '도움이 되는 말과 행동' 류의 서적들이 나오고 있는데, 나는 그러한 목록이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그러한 지식에 대한 논쟁적 사고와 맥락적 이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정신과 의사 나종호의 브런치에서 "한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쓴 글"의 번역문을 읽었다. Shantelle Avery라는 이름의 필자는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자신이 "세상에 머무는 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들"을 나누고자 그 글을 썼다고 했다. (출처 댓글 링크) 


그 목록이 모든 사람에게 유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목록 중 어떤 것이 특정인에게 도움되었다고 해도 모든 사람에게 모든 상황에서 그런 것은 아니며, '세상에 머무르게 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할지라도 다른 측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본다. '우울증으로 고통받거나 자살 생각을 하는 주변 사람을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14개 항목 중에서 내가 '문제적'인 항목 또는 맥락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여긴 항목은 다음 두 개다. 


3. 사랑을 표현해주세요. 이건 정말 중요한 부분이에요. 당신은 "너를 사랑해"라는 단순한 문장이, 어떻게 저의 망가진 뇌에서 해석되는지 모르실 거예요. 그들은 저에게 이렇게 말해요. "나는 네가 필요해. 그리고 네가 계속 머물길 바래. 만약 네가 떠나면, 나는 너무나 상처를 받을 거야, 그러니까 부디 견뎌줘." 이 말들은 저에게 힘을 주고 제가 조금이라도 더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줘요.

13. 그들에게 그들이 사라지면 너무나 슬플 것이라고 말해주세요. 저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저에게는,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잠시나마 나 자신에서 벗어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사라지면 그들이 얼마나 상처받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줘요.


이 항목이 필자로 하여금 '세상에 머무르게 하는' 방식으로 작용했다면, 그것이 필자의 어떤 '필요'를 충족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동일한 맥락이나 상황에서 우울증을 겪거나 자살 생각을 하는 것도, 따라서 동일한 '필요'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상황, 맥락, 필요를 가진 사람에게 이 항목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문제적 지점은 사랑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방식이다. 


첫째, 말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그것을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 상대방의 '필요'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 둘째,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상황, 감정, 필요를 중심에 두고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죄의식, 미안함, 책임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러한 말하기 방식이 부당할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상대방을 '이 세상에 더 머무르게 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고통에 압도되어 더 이상 이 세상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에게 옳지 않은 방식으로 추가적 고통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 세상에 머무르기로 결정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필요에 의한 선택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핵심 동력이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 죄의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진정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그저 '사랑한다', '당신을 많이 아끼고 있다'라고 말하면 된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큰 고통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몫이지 우울증을 겪고 있거나 죽음을 생각하는 상대방이 감당해야 할 몫은 아니다. 나는 그것이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귀하게 여긴다면, 그 사람의 고통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나의 고통이 아니라.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죄의식을 자극하는 행동은 아주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자주 그런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것도 도덕의 이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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