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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Aug 20. 2022

개가 우리를 사람답게 한다

템플 그랜딘, 캐서린 존슨, <동물과의 대화>

"지금 나는 동물들이 보다 스트레스 적은 삶을 살다가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길 바라기에 이 글을 쓴다. 또한 동물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의미 있는 있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동물들에게 빚지며 살고 있다." p.465


<동물과의 대화>는 "시골에서 유기견과 함께 사는" 수의사 손서영의 추천 도서 목록에서 알게 된 책이다. 책의 공동 저자인 템플 그랜딘은 '자폐인 동물학자'로 널리 알려진 이로서, 미국에서 보편화된 가축 시설 설계자이기도 하다.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며칠에 걸쳐 조금씩 나눠서 읽었는데, 몹시 흥미롭고 독창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사람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학자이며, 가축 도살 시설 설계자이며, 동물 복지에 관심이 있는 논-비건 동물학자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동물이 세상을 인식하고 감각하는 방식이 자폐 인간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언급한다. 저자는 '정서적으로 상처받은 십대' 시절 '정서적으로 상처받은 동물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동물의 관점과 자신의 관점이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동물의 관점에서 자신의 관점을 발견하면서 자신의 복지를 개선하는 방법을 상상하고 실현할 수 있게 되었고, 동물학자가 되어 동물의 인지 및 감각 체계를 연구했다. 저자의 삶을 집대성한 이 책의 원 제목은 Animals in Translation, 즉 동물의 인식 체계를 번역하여 소개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동물과 자폐인의 인식 체계는 알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 책은 마치 근대 지식에서 거대한 무지로 남아있던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관문을 열어젖힌 것 같다.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지점은 동물의 감정, 특히 공격성이 생존 이슈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점, 동물의 사고와 감정이 동물의 뇌구조(전두엽)의 형태 및 기능에 어떻게 영향받는지 설명하는 내용, 동물의 사회화에서 공포와 불안감 이슈를 설명하는 내용 등이다. 동물 행동을 평소에 잘 몰랐던 생물학적 지식과 막연히 인간의 영역이라고만 여겼던 감정과 사회화 이슈와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어서 참 재미있게 읽었다.  


얼마 전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유튜브 채널(최재천의 아마존)에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해설한 에피소드를 보았다. 그 에피소드에서 최재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장애'를 갖고 있으며, 고래는 장애가 있는 동족을 보살피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비록 인간이 유전적으로는 장애를 가진 동족을 공격하는 침팬지와 가깝지만, 사고와 의지 면에서는 고래처럼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저자는 동물을 이해하게 되면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동물과의 대화>는 두고두고 곱씹어 볼만한 내용으로 가득한 책이다. 최재천 교수의 최근 에피소드와 함께 추천함.


 < 추가 0823 >


이 글에 대해 페이스북 친구 Seunghee Hong님께서 페이스북에 댓글을 남겨주셔서 가져왔다. Seunghee Hong님의 댓글 의견과 나의 답글을 추가한다. 페친께서 남겨주신 의견을 읽고, 내가 논-비건이라서 텍스트에서 간과한 지점, 정동적 인식론이 독해 방식에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책 리뷰와 Seunghee Hong님의 의견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이 책을 더 풍부하게 소개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1. Seunghee Hong님의 댓글 의견


선생님 안녕하세요. 페이스북과 브런치에 정성껏 써주시는 글들 늘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비건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동물의 습성을 연구한 템플 그랜딘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템플 그랜딘이 설계한 동물 도살 시설은 소의 습성을 고려해 도살장에 일렬로 들어가는 방식이라 소가 다른 방향으로 틀거나 돌아설 수가 없습니다. 템플 그랜딘은 소의 두려움을 줄이는 방식이라 설명하지만 소의 입장에서는 예정된 죽음 앞으로 ‘제 발로’ 걸어갈 수 밖에 없도록 잔인한 설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결과 단시간에, 작업자가 저항하는 소에 폭력을 가해야 하는 부담을 줄여 많은 소를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 방식이 갖추어짐으로써 도살장에서의 ‘대량학살’이 가능하도록 기여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봤을 때 그가 동물에 공감하여 설계한 기술이 결과적으로 더 많은 동물을 죽이고 싶어하는 식육산업계의 이익에 복무하게 되었다는 진실이 잔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2. Seunghee Hong님 의견에 대한 나의 답글


저도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동물 복지에 관심 있는 가축 도살장 설계자, 이 모순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동물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이들,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이들, 이런 이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고요. 이 책을 추천한 손서영 수의사는 이 책을 어떤 지점에서 추천했는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댓글을 읽고 나니, 도살장 설계에 관한 부분은 비록 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놓쳐서는 안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사려깊게 상세히 남겨주신 의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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