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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Aug 20. 2022

문제는 '부정 수급'이 아니다

- 서울시 조부모 돌봄 수당 정책의 문제

1. 10살 고양이와 10개월 고양이가 함께 살면 생기는 일


고양이 행동 전문 수의사 김명철의 유튜브 채널(미야옹철의 냥냥펀치)에서 이런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다.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보호자는 고양이들 사이가 왜 나쁜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본인도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고양이 전문가인 수의사는 문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문제는 둘 사이가 나빴던 것도, 서로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둘 간의 ‘나이 차이’가 문제였다고. 태어난 지 10개월 된 고양이가 10살 먹은 고양이와 함께 살면 당연히 생기는 문제라고 했다. 인간으로 치자면 70대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랑 놀아주고, 챙겨주고 돌봐주려면 당연히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는 것. 자주 놀아주고 보살펴 줘야 하는 혈기 왕성한 어린 고양이와 성인 고양이가 가족이 되려면 성인 고양이 나이가 적어도 7살 미만이어야 한다는 것. 인간으로 치자면 70대 할아버지인 10살 고양이는 늘 자신을 쫓아다니는 10개월 고양이 때문에 지치고 힘들어서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질병의 조짐까지 보였다.


2. 인간 노인이 인간 아이를 돌보면 생기는 일


인간도 고양이와 마찬가지다. 노인 인간과 아동 인간이 함께 살게 되면 생기는 다양한 문제 중 하나가 노인의 건강 악화다. 노인이 장시간 아이를 돌보면 몸과 마음이 그야말로 무너진다. 손자녀를 키우다가 디스크 통증으로 고통받고, 친구관계 등 사회생활의 단절로 인한 고립감과 우울감에 시달리는 노인들 사연은 한국 사회에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보통의 삶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노인 돌봄 제공자의 근골격계 질환, 정신 건강 악화만이 아니다. 노인의 삶 자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돌보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조건과 환경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2020년에 수행한 <서울시 여성노동자 실태조사>에서 맞벌이 유자녀 여성노동자 심층면접 조사에서 이런 노인들의 사연을 접했다. 감염병 확산 국면에서 공공 돌봄 체계가 작동하지 않아 돌봄은 다시 가족의 일이 됐다. 그리고 많은 노인들이 '돌봄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노인의 일상이 손자녀를 돌보는 일로 점철되면서 돌봄 제공자 노인은 이제 막 시작한 평생 해보고 싶었던 일을 포기했고, 친구들과 노는 일상이 불가능해졌고, 지방에 남편을 두고 주중에는 서울에서 손자녀를 돌보고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남편을 만나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맞벌이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자녀를 위해 자신의 부모(주로 여성 노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노부모와의 사이가 돈독해진 경우도 있었으나, 지방에 홀로 남겨진 늙은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인해 책임감, 불안감, 죄책감을 견디면서까지 늙은 어머니에 아이들을 맡길 수밖에 없고, 육아 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경우 육아로 인해 생기는 늙은 부모의 삶을 헤아리거나 챙길 여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취약한 공공 돌봄 체계가 감염병 국면에서 와해되면서, 연구자로서 내가 목격한 것은 유자녀 노동자와 그들의 노부모가 말 그대로 '돌봄 지옥'을 살아야 하는 현실이었다.


노인이 되면 책임과 의무에서 이제는 벗어나 자유롭고 한가하고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군가를 돌보더라도 누구나 자기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누군가를 돌보면 그 외의 인간다운 삶을 다 잃어야 하는가?


3. 문제의 핵심은 '부정 수급'이 아니다.


서울시 조부모 돌봄 수당 정책에 대한 언론 보도에서 주로 문제 삼는 지점은 '부정 수급' 이슈다. 이 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 고작 '부정 수급' 문제인가? 감염병 국면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돌봄의 재가족화'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지, 촉진해야 할 정책 방향이 아니다. 시대에 역행하는 서울시 조부모 돌봄 수당 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돌봄의 공공성 와해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설계되었다는 점, 노인기의 인간을 '돌봄의 궤도 caring trajectory'로 밀어 넣는 방식으로 돌봄 문제 해결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돌봄은 '가족의 일'이 아니라 '공적인 일'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그것이 지속 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창출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은 시대의 흐름도, 필요도 읽어내지 못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서울시 조부모 돌봄 수당 정책에 대해서 다 함께 그 근본적 문제를 짚어내야 한다. 서울시가 지금과 같이 여성 노인을 이렇게 '돌봄 기계'로 취급하는 이념과 정책을 펼치는 한, 돌봄 지옥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지속 가능한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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