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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Aug 31. 2022

차별이 없어져야 낳는다

살아갈 권리, '낳을 결심'과 '키울 결심'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고래 다큐를 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쓰레기, 인간의 문명, 기후 위기가 어떻게 고래의 생존을 위협하고 파괴하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내가 먹고, 쓰고, 버리는 모든 것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게 되고, 이 신비롭고 경이로운 거대 동물에게 인간으로서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인간 개체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임박한 재앙의 시간을 바꿀 수 있을지 불투명하지만, 어쨌거나 인간이 많아지는 것은 지구에 바람직하지 않은 점은 분명하다. 


이래저래 나는 한국의 출생률 급감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당장 자신의 삶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다. 당장의 생존이 불안하고 위협받을 때 번식하여 새끼를 돌보는 것은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래도 OECD 등 비교적 잘 사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결심하는지 그건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한국이 당장 시도할 수 있는 유효한 출산율 제고 대책으로는 '비혼 출산(혼외자)의 법적 차별 금지'가 있다. 대부분의 OECD 회원국에선 비혼 출산이 출산율을 유지하는 핵심 요인이다."

"결혼 여부·가정 형태와 상관없이 임신·출산 혜택을 주는 프랑스는 2018년 기준 전체 출생아 대비 비혼 추산 비율이 60%에 육박했다. 같은 해 미국(39.6%), 스웨덴(54.5%) 등 다수의 고소득 국가에서도 비혼 출산 비율은 전체 출생아의 절반 수준을 차지했다. 금융·세제·복지 혜택을 '법률혼 가정'에만 집중하는 한국에선 비혼 출산 비율이 2.2%로 세계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 한국일보 기사, "선진국은 '여성 경제활동' 많을수록 출산율 높은데, 한국은 왜?"


이 기사에서 '비혼 출산에 대한 법적 차별 금지'를 출생률 증가의 핵심 열쇠로 언급한 것은 제대로 짚은 것이다. 이 기사에서는 '임신 및 출산의 혜택'에 국한하여 언급하였는데, 보다 정확하게 부연 설명하자면, 임신-출산-양육-교육으로 이어지는 총체적 권리 보장의 문제다. 국가가 임신, 출산, 보육, 양육, 교육과 관련하여 비혼의 성인에게 결혼 커플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가 여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차고 넘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 원래 시민 동반자 제도(PACS)는 다양한 가족 구성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기획이었으나, 제도 시행 후 나타난 의외의 결과들이 몇 가지 있다. 이성애 동거 커플의 제도 이용률이 높았다는 점, 합계출산율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오래전 OECD, Eurostat의 통계를 인용한 economist 기사에서 이러한 현상이 OECD 국가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다룬 바 있다. OECD  주요 국가에서 비혼 출산율의 증가(more babies, fewer brides), 비혼 출산 비중과 합계출산율의 상관관계가 두드러진 경향성을 보인다. (Economist 기사에서는 이를 unwedded bliss라고 표현했다) 물론 여기서 한국은 제외다. 


요약하면, 국가가 어떤 이유로든 가임기의 성인을 차별하지 않아야 합계 출생률이 높아진다. 이때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임신, 출산, 보육에 대한 동등한 권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동권, 거주권, 교육권, 문화권 전반에 걸쳐 비혼 성인과 결혼 성인을 차별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더 많이 낳는다. '낳을 권리'와 '살아갈 권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신이건, 비혼 커플이건, 결혼 커플이건, 누구든 '살아갈 권리'가 제도적, 문화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낳을 결심', '키울 결심'으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가 이 당연한 이치를 깨우치지 않으면 한국인은 멸종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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