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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Nov 23. 2022

'회복'에 관하여

최현희, <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

"살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큰 문제가 닥쳐올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 문제를 감당하거나 그러지 못하거나 하는 두 가지뿐이다. 그 문제가 없던 시기로 되감을 수는 없다. 어떻게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이 책은 그 지난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 8쪽


초등학교 교사 최현희 선생님은 2017년 <닷 페이스> 영상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를 통해서 학교에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주장한 후 '극우'/'남초' 언론-커뮤니티가 주도한 '민원 폭력'과 '고발 테러'를 겪었다. 저자는 이 책 <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 - 마중물 샘의 회복 일지>에서 그 폭력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평범한 페미니스트 교사인 한 개인이 자신에게 가해진 엄청난 사회적 재난을 통과해 이전과는 다른 삶의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기록한 일종의 '재난 이후(post-disaster)' 오디세이 서사다. 저자는 그 오디세이를 '회복'이라고 명명한다. 즉, '회복'이란 이전 단계로의 리셋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재난-이후'의 삶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매우 공감되는 지점, 놀라우리만치 유사한 경험이 많았다. 예를 들면, 공격과 테러를 주도한 타인들이 아니라 '동료'라고 여겼던 학교 안의 교사 사회에서 일들이 어떻게 '상처' 또는 '불행'으로 경험되었는지 기술한 부분, 그런 일들을 겪고 나서 냉소적인 마음이 자아의 일부가 된 이야기, 주변 사람들과 돌봄을 주고받으면서 삶을 지속할 힘을 얻은 이야기, 일상에서 '괜찮지 않은 괜찮음'을 새롭게 발견하는 이야기 등....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첫 번째 감정은 고마움이다. 2019년 고위직 승진을 앞둔 경찰청 간부 대상 강의에서 피교육생으로부터 집단적 폭력을 겪은 이로서, 사회적 폭력을 겪은 이들이 어떻게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일종의 지도를 갖게 되어서, 저자에게 재난 이후 곁에서 또는 멀리서 다정함을 보여준 동료들이 있었다는 것, 그 사실을 확인하고 그것에 무게를 둘 수 있어서, 그래서 고마웠다. 이 가혹한 세상에 그런 이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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