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여 년간 일상에서 보고들은 '중년 조급증'에 관한 잡설. '중년 조급증'을 이렇게 정의해 봤다. '중년 조급증'이란 '중장년기에서 노년기에 빠지기 쉬운 정동적 상황으로서 조급함이 몸과 마음을 압도하는 지경'을 의미한다. 이 시기에 모든 이가 중년 조급증을 겪는 것은 아니며, 다만 이 증상에 노출되기 쉬운 상황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은퇴가 임박한 사람들, 자기가 원하는 것(그것이 무엇이건)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자기 의미를 찾지 못했다고 여기는 사람들, 기타 등등이라면 누구라도 '중년 조급증 스펙트럼'을 겪는다고 본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비록 '중년 조급증 스펙트럼'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으나 그동안 제한된 범위에서 내가 포착한 몇 가지 양상에 대해서는 말해 볼 수 있겠다. 그 패턴을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싶은 것 중심으로 기술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패턴 1. 악다구니형
직장에서 50대는 권한과 자원을 가장 많이 가진 이들이다. 그래서 얼핏 가장 너그러울 같은 이들이 중에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온갖 정치질을 일삼는 이들이 많다. 조직의 정당한 절차와 보상이 아니라 패거리 짜기, 중상모략, 아부 등을 통해서 말이다. 그 행태를 말하자면, 오랜 사회생활을 통해 얻은 정보와 기술을 동원하거나, 사납게 패악을 부리거나, 상상도 못 할/소름 끼치는/야비한 계책을 사용하는 등 한마디로 악다구니에 가깝다. 오랜 직장 생활을 한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이런 증상은 정년이 10년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무렵부터 발현되기 시작한다.
- 직장 생활을 하지 않기에 나는 이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또 한 가지, 내가 악다구니형 중년 조급증에 빠지지 않을 여기는 또 하나 이유는 게을러서다. 저렇게 살려면 부지런해야 하거든.
패턴 2. 블랙홀형
블랙홀형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동원하거나 도구화하는 사람이다. 자기 주위의 모든 것/사람을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기 때문에 블랙홀형이라고 지칭한다. 이런 사람 옆에 있으면 기가 빨린다. 이런 사람이 상당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그 사람으로부터 얻을 것이 있다면, 공생적 도구 관계가 형성된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경우가 있다. 몹쓸 자기 연민으로 가득한 리더, 사람을 혹하게 하는 데가 있는 리더, 또는 그 두 가지에 해당되는 리더다. 이런 사람이 제일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 주변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착취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 옆에 있으면서 이야기 들어주고 공감하면 그 사람의 '응석받이'가 된다. 영어권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감정적으로 착취당하는 사람을 그 사람의 발바닥을 닦아준다는 의미에서 '도어매트'라고 한다.
- 나의 경우는 오히려 블랙홀형 리더의 피학대자가 될 가능성을 조심해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공감형 인간에 가깝고, 그래서 감정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상대가 몹쓸 자기 연민에 절어있는 블랙홀형 인간인 데다 외모이건 인성이건 사람들 홀리는 데가 있어서 한동안 착취당한 경험이 있다. 내가 누굴 탓하겠어.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삼창 한다! 자나 깨나 블랙홀형 인간 조심!
패턴 3. 역사 조작형
역사 조작형은 과거 자신이 거둔 성과를 과장하거나, 자신의 행적을 미화하거나, 자신의 성과를 조작/날조/위조하거나, 나아가 자신이 한 일을 그 분야의 전부로 포장하는 양상, 그리하여 자신을 그 분야의 역사로 만드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어떤 분야에서 헌신해 왔거나, 뚜렷한 성과를 거둔 이들, 오랫동안 높은 지위에 따르는 특권을 누린 이들 중 이런 유형이 많다. 역사 조작형에는 자아비대증, 과대망상증도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유형은 스스로 조작한 자신의 역사를 진짜로 믿는다. 역사 조작형 인간은 명성이 예전만 못하거나, 지위를 상실하는 등 현실이 자아의 크기를 받쳐주지 못할 경우 우울해지기 쉽다. 이 순간은 자아가 비대함으로써 결핍된 인간성, 즉 성찰성을 갖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미리 자아를 줄이면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다.
- 나는 여기에 해당 안됨. 내가 뭐라도 이룬 게 있어야 말이지.
패턴 4. 자랑형
자랑형은 중년 조급증이 '내 인생이 괜찮았다'는 것을 끝없이 주위에 보여주는 유형이다. 자기 자랑이나 자기가 키운 사람들에 대한 자랑이 대표적이다. 자식이나 제자/직원 등의 학벌, 외모, 성과 등을 자랑하거나, 그들이 자기에게 얼마나 잘하는지를 자랑하는 경우가 가장 흔한 방식이다. 나는 이런 자랑을 듣고 있노라면 블랙홀형 조급증 인간을 만났을 때만큼이나 기가 빨린다. 중년 조급증이 폭망형 인간으로 진화되도록 하지 않으려면 자랑을 자제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나 자랑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나이 든다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 자식도, 제자도, 부하직원도 없으니 나는 자랑할 거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없는 자랑거리도 만들어내게 된다. 조심하자.
사족 1. 다큐멘터리 영화 <부활>을 보면서 내내 감독의 조급한 마음이 느껴졌다. 기회가 되면 구체적으로 써볼 생각.
사족 2. 이렇게 쓰고 보니, 나이 든다는 것이 참으로 두려워진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