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동네를 산책하다가 시각장애인 안내견 은퇴견을 키우는 견주를 만났다. '야외 배변하세요?', 무심코 이렇게 말을 걸었다가 시작된 대화가 길어져서 한동안 같이 걸으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단지 데리고 있는 개에 대해 궁금해서 몇 마디 물었을 뿐인데, 견주는 우리 동네에서 은퇴견을 키우는 분이 어디 어디 살고 있는지, 누가 퍼피워킹(태어난 지 6주가 지난 강아지를 일정 기간 가정에서 사회화시키는 자원활동)을 하는지, 하루에 몇 번 산책시키고, 아플 때 어떻게 돌보는지, 은퇴견을 키우거나 퍼피워킹하는 분들의 정기 모임과 가족 여행 갈 때 은퇴견을 서로 맡아주는 이야기, 은퇴견 키우면서 배운 지식 등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잠깐이었지만 참 기분 좋은 대화였다. 이 동네 이사 온 지 3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사느라, 동네 산책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오늘 천천히 돌아다녀 보니, 낮에 개를 산책시키는 분들이 많이 보였다. 대체로 여유로운 풍경이었다. 생활공동체로서 인간과 개를 다룬 영상 콘텐츠를 요즘 많이 봤다. 넷플릭스 다큐, BBC 다큐, 공중파 교양 다큐 등을 통해 어떻게 인간에 의해 '개'라는 동물종이 출현했는지 그 역사를 알게 됐고, 인간과 개가 생활공동체로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인간이 갖춰야 할 법, 제도, 문화에 대해 공부했다. 인간과 개의 사회적 공존을 위해 필요한 사회화 훈련, 흔히 그것을 개의 사회화 canine intervention이라고 부르지만 영상 콘텐츠를 보면 그것은 개를 책임지고 보살피는 보호자 인간의 사회화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의 <우리 개를 도와줘! (원제: Canine Intervention)>의 포맷은 이렇다. 견주는 훈련사에게 반려견의 문제점과 견주로서 본인이 필요로 하는 것/그 배경을 정확히 알려준다. 훈련사는 곧장 각 가정을 방문해 개의 문제점을 관찰해 진단하고 개와 보호자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으로 곧장 들어간다. 사회화는 개별 가정에서 이뤄지기도 하고, 훈련소에 일정기간 집중 사회화를 한 후 가정에 돌아와 보호자에게 적용하거나 개입하게 하는 훈련을 하는 등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반려견이 '문제견'이 된 배경은 반려견이 그 가정에 오기까지의 사정, 가족 보호자의 관계나 태도 등 매우 다양하다. 훈련사는 때로 보호자의 무지, 잘못된 태도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주고 변화의 방향과 기술을 제시한다. 보호자의 무지와 잘못된 양육 태도가 '문제견'의 배경이 된 경우라고 하더라도 시청자는 보호자를 비난하는 마음이 생기기보다는 보호자가 문제 지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달라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반면 이와 같이 문제견의 사회화라는 동일한 취지의 프로그램인 KBS의 <개는 훌륭하다>는 시청자로 하여금 '문제견을 만들어 낸 가족의 문제'에 몰입하게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거의 항상 문제적 보호자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나 비난이 시청자에게 하나의 정서적 긴장으로 형성된다. 문제는 이런 긴장이 프로그램에 구조적으로 내재되어 있어, 많은 회차에서 시청자가 견주에 대해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분노의 마음을 품게 된다는 점이다. 유튜브에서 회차별로 편집된 영상을 보면, 엄청난 공격성 댓글이 달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비난 댓글을 읽어보면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견주에 대한 대중적 혐오, 그리고 그러한 혐오/공격성 댓글을 감수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사연을 신청한 견주의 사정이 동시에 보인다.
KBS의 <개는 훌륭하다>는 예능 포맷의 프로그램이다. 예능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시청률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프로그램의 구성 방향 역시 시청률에 초점을 맞춰 구성된다. 80분이라는 매우 긴 시간 편성에서 상당 부분은 가족의 문제를 드러내거나, 진행자를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이렇게 어그로를 끌거나 쇼잉하는 장면의 비중이 높고, 훈련사는 중반부 이후에 개입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개는 훌륭하다>는 공영 방송으로서 몹시 부적절한 기획이라는 점을 짚고 싶다. 견주를 상당수 시청자의 분노의 대상으로 삼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고, 실제 그러한 일이 너무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Canine Intervention을 주제로 하는 영상 콘텐츠는 영상이 예능이 아니라 다큐의 포맷으로 다뤄지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내가 오늘 은퇴견의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웠던 것처럼, 교육적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이라면, 보고 나서 기분 좋은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한 학습은 '문제견'의 보호자 '문제 견주'에게 혐오에 가까운 분노와 멸시의 마음을 갖지 않고도 가능하며, 또 그래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인간이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개와 인간이 함께 살게 되면서 생긴 너무 많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정책과 제도로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도 있고, 개와 인간 모두 공존을 위해 필요한 사회화 기술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Canine Intervention과 관련된 더 다양한 다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KBS라면, 마땅히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개는 훌륭하다>라는 프로그램 제목에는 인간의 책임과 무지를 강조하는 코드가 전제되어 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개의 문제는 인류에게 개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며, 인간 사회의 시공간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경로와 양상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식이 견주 개인에게 향하는 시각은 단지 인간 혐오를 만들어낸다는 측면뿐만 아니라, '문제'를 개인화함으로써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몹시 부적절하다. 진단과 솔류션은 항상 하나의 통합된 변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KBS의 <개는 훌륭하다>는 극적인 연출로 개와 견주의 문제를 강조하고, 문제의 전후를 강조하는 메이크업 포맷에서 훈련사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고 스타성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유튜브 채널에 극적인 장면을 송출함으로써 악플과 클릭수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시청율을 올려 수익을 올리기 보다는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익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제작해 주길 바란다. 한국 사회가 그 정도 문화적 역량이 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