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악(惡)' 사이의 거리
HBO 아시아 대만 드라마 <아문여악적거리>
HBO 아시아 대만 드라마 <아문여악적거리>(2019)는 한 20대 청년이 극장에서 무차별 총기 난사를 하여 무려 9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크게 다친 사건이 발생하고 그로부터 2년 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이야기는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등장인물들 간의 대립적, 갈등적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조명하고 다시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로 돌아와 끝을 맺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드라마는 '피해자', '죄인', '병을 알아차리는 감각', '집단 따돌림', '모든 이에게는 병이 있다' 등 회차별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몇 가지 사회적 문제의식이 담긴 일종의 사회극이다. 즉, 드라마는 재난으로 인해 삶이 붕괴되거나 위태로워진 사람들을 따라가면서, 정신 질환에 대한 대만 사회의 무지, 가짜 뉴스-유튜버 1인 방송-조회수 경쟁과 댓글 등 온라인 '주목 경제' 플랫폼에서 형성되는 증오와 혐오 선동, 방송 뉴스 채널이 온라인 플랫폼과의 시청률 경쟁하면서 더욱 악화되는 사회분위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대만 사회의 차별과 배제 문제 등을 다룬다.
여러 등장인물 중 이야기의 역동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은 가해자의 국선 변호를 맡은 변호사 왕쉐(오강인), 총기 살해 사건에서 사망한 아동의 엄마이자 방송국 뉴스팀 데스크인 승차오안(가정문), 그리고 가해자의 여동생 리다신(처음보는 배우인데 imdb에는 Yuu Chen으로 소개되어 있음) 등 세명이다.
나는 총 10회의 드라마를 다 볼 때까지 끝까지 몇 가지 의심을 놓지 않았다. 가해자 국선 변호사의 정의 감각이 '나는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애 또는 자기도취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총기 살인 사건의 가해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이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힌다는 설정으로 인해 이 드라마가 어설프고 해로운 방식으로 '치유', '화해', '용서'라는 메시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 드라마에는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긴 하지만,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문제의 '개인적' 해결이 아닌 '사회적' 해결이다.
엄청난 재난을 겪거나, 전쟁과 다를 바 없는 삶을 통과해서 자기만의 삶을 탈환한 사람들의 생애사를 읽어보면, 그들의 삶에는 꼭 '보통의 천사들'이 있다. 따뜻한 눈빛이나 말을 건넨 사람, 한 순간 그 사람에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을 알아차린 사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조건 도움을 준 사람, 그 사람이 잘 되길 응원한 사람, 담담하게 그냥 자기 방식대로 지켜봐 준 사람 등. 사회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이 드라마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삶이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된 사람들의 곁에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지켜보는 사람들을 한두 명씩 꼭 배치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드라마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캐릭터 및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이다. 그중에서도 가해자의 국선 변호사는 내가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캐릭터다. 그는 이 사건의 가해자뿐만 아니라 공원에서 2명의 아동을 잔인하게 살해한 가해자 등의 변호를 맡고 있다. 그는 '천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의 변호를 맡았다는 이유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공격, 협박, 테러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그가 가해자를 돕는 이유는 단순히 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한 상황을 무릅쓰고 그가 해당 사건 가해자의 변호를 맡는 핵심적 이유는 이런 일이 발생한 배경 원인을 밝혀내려는 것이다. 사회가 가해자를 무조건 악마로 간주하여 사회에서 영구적으로 격리하게 되면, 문제의 원인은 봉인되고 그에 대한 '사회적' 해결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추구하는 사회 '정의'다. 그런 방식으로 정의로운 삶을 추구하면서, 그의 삶 역시 위기에 빠지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어떤 변화, 어떤 기적, 드라마는 그것을 사회 메시지의 형태로, 그것도 그 재난과 재난 이후에 이어지는 또 다른 재난으로 인해 삶이 무너진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드라마 제목 "我們與惡的距離"의 우리말 뜻풀이는 '우리와 악 사이의 거리'다. '악(惡)'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아야 '정의로운 사회'가 만들어진다. 드라마는 그 메시지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그것도 사람들이 '악(惡)'이라고 명명한 사건으로 인해 삶이 무너지고 파괴된 사람들의 치열한 생존을 통해서. 항상 누군가를 미워하고 혐오할 준비가 되어 있는, '치열한 응시'보다는 '안전한 무지'를 선택하는, 그렇게 '지옥을 만들면서 지옥을 버티는 한국인'에게 시사점이 큰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