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대학 앞에서 어떤 남자가 지나가는 젊은 여성들에게 먹물을 뿌린 사건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뉴스에서 "먹물 테러"로 알려진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 혐오가 어떤 정동(affect)에 의해 형성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여성 대상 폭력과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어떤 이는 '뿌리는 행위'에 주목하여 '먹물 테러'를 '정액 테러'와 같은 맥락에서 발생한 것으로 읽었다. 무엇인가를 뿌리는 것은 수컷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먹물 테러와 정액 테러는 유사한 행위라는 것, 먹물 테러와 정액 테러에서 '남근'을 상징하는 액체를 뿌리는 행위는 접근 불가능한 여성을 욕 보이고 '남성의 소유물'로 삼기 위한 공격 수단이라는 것이다.
(해설: '정액 테러'는 여성이 자신을 거절할 때, 만나주지 않을 때, 그냥 못마땅할 때 등 다양한 이유로, 여성이 마시는 음료, 사용하는 책상이나 의자, 자동차 손잡이에, 심지어 여성의 집에 침입하여 자신의 정액을 뿌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발생한다. 정액 테러는 이와 같이 이유와 방식은 다양하지만, 남성이 여성을 협박하거나, 괴롭히거나, 굴복시키거나, 모욕을 주거나, 응징하고자 하는 공통된 목적을 가진 여성 대상 폭력 행위의 일종이다.)
그런데 나는 처음 이 사건을 접했을 때, 왜 하필 공격 수단이 '먹물'이었는지에 주목했다. '먹물'은 '잘난 여성'을 상징하며, 먹물을 뿌리는 행위는 다름 아닌 그 여성의 핵심 자원인 '먹물'로서 '저주'하는 행위로 읽혔다. 너 예쁘지?, 너 좋은 대학 다니지?, 그래서 좋은 남자 만나서 잘 먹고 잘 살 것 같지? 네가 가진 재주로 너는 망하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되게 해 줄게, 이런 식의 저주. 그러한 해석은 그동안 내가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생겨난, 즉각적 반응이다. 마치 도로를 운전하다가 갑자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처럼, 나의 해석은 내가 살아온 삶에서 생겨난 관점, 지식을 반영하는, 세상에 대한 감각적 인식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노희경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성, 전교 1등 여성 청소년의 캐릭터와 서사 구성 방식에서, 곧바로 '먹물 테러' 사건이 연상되었다. 먹물 테러 및 정액 테러의 범인과 노희경은 같은 관점을 공유한다. 어떤 이유로든 잘난 여자, 그래서 남성의 통제 영역 밖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여자, 더 큰 세상에서 스스로 주인이 되는 인생을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분노가 그것이다.
노희경 드라마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은, 그 여성이 가진 바로 그 자원, 즉 젊음과 미모 때문에 기구한 삶을 살도록 조건화되어 있다. 노희경의 여성 혐오 문법은,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은/않을 것 같은 남자들을 순정적, 헌신적 인물로 그려내어 그들에게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하는 한편, 외모든 학력이든 가진 것이 많은 여성에게 자승자박의 불행 굴레를 씌우고, 도덕적으로 동일시할 수 없는 캐릭터로 설정한다는 점이다. 한편, 서울대 의대 진학을 꿈꾸는 넘사벽 전교 1등 여성 청소년에게는 임신 6개월이라는 '철퇴'를 내린다. 피임을 했음에도 임신이 되었고, 무려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설정은, 임신을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자리'에 묶어둘 운명의 카드로 사용한다.
10대 여성 청소년의 임신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노희경의 여성 혐오 문법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오랜 습관을 다시 노스탤지어처럼 각성시켜 자극한다. 노희경은 혼외 임신 여성에 대한 도덕적 비난과 모성 찬양의 신화라는 오래된 익숙한 수법을 사용한다. 함께 성관계를 한 남성 청소년의 존재를 비가시화하고, 임신한 여성 청소년에게 '죄의식'을 강요하여 고립시키고 그리하여 임신 중단의 선택을 철회하고 임신을 유지하도록 몰아가는 과정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묘사한다.
제주도를 벗어나 더 큰 세상에서 자기 만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청소년, 그것을 목표로 모든 것을 바쳤고 이제 목표 지점을 목전에 둔 청소년, 공부만이 자신의 삶에서 자율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었던 청소년, 이 여성 청소년이 꿈꾸는 모든 것을 무화하고, 이 여성 청소년이 '여자의 자리'로 회귀하게 되는 사회적 강제를 '선택'으로 포장하고, 미화하는 서사. 이 드라마가 여성 청소년의 임신이라는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서 '먹물 테러'가 연상된 것은, 이 드라마가 여성들의 오랜 역사적 투쟁 끝에 임신 중지 합헌 결정을 겨우 얻어낸 시점에서 방영되고 있다는 점과 관련 있다.
이 드라마에서 노희경은 그동안 써왔던 여성 혐오 카드가 먹히지 않는 인물에게, '임신'이라는 신체적 상황을 불가항력적 운명으로 강제한다. 임신한 10대 여성을 두고 벌어지는 모든 폭력적 상황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포장하고 모성 신화를 뿌리는 설정, 그것은 여성을 가부장제 사회에서 '제자리'에 묶어두기 위한 지향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먹물 테러'의 다른 버전이다.
"나는 예쁜 여자들이 망가지는 게 좋다."
디지털 성범죄 주동자 중 한 명이 N번방의 '회원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출처: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활동가의 강연) 노희경은 그동안 자신은 성차별을 겪어보지 않았으며, 요즘은 20~30대 젊은 남성에게 공감이 간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드라마는 비록 인류애와 노스탤지어의 정서를 내세우고 있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는 것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포장한다는 점에서 가학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의도와 정서적 측면에서 여성과 청소년에 대한 성적 학대를 가학적 즐거움으로 삼아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인 N번방 성범죄자, 자신과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저주의 먹물을 뿌린 먹물 테러범과 닮아있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 드라마의 지독한 여성 혐오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내가 이 드라마와 관련하여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드라마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노희경이 더 이상 사회적 해악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시청률로 승승장구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것은 그를 멈추게 하는 몇 가지 방식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