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사라지니 편안하고 고요했지만 역동적이지 않더라
어느덧 햇수로 2년을 가득 채운 디자이너가 되었다. 디자인으로 밥벌이할 수 있을까?라는 2년 전의 불안에서 잠깐 벗어나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혼자 살면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적당히 저축도 할 수 있는 월급을 받아보고 나니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던 이전보다는 확실히 지금의 나는 안정적이고 고요하다. 만들어냈구나. 디자인으로 밥벌이를 지속할 수 있는 삶. 일단은 나를 칭찬해주자.
앞으로의 2년, 5년, 10년도 이런 삶을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다시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잠깐' 불안감을 외면하고 있다는 표현도 그래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불안을 잠깐 외면하며 살아보니 고요함은 있었지만 반대로 역동적이지는 못했다.
자정을 넘어 퇴근하는 날이 많았던 지난 4월, 몸과 마음의 부침이 있었지만 이전보다 더 큰 작업을 완성해냈고 제품을 쓰는 고객들로부터 훨씬 좋아졌다 라는 코멘트가 돌아왔다. 그래서 뿌듯했다. 이건 플러스알파의 노력이었고 당장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한 상태여서 그런지 불안감을 느낄 새가 없었다.
반대로 지난 3개월은 워라밸을 잘 지켜가며 살았다. 다음번 해내야 할 전속력 달리기를 위해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는 생각으로. 나쁘지 않은데 어딘가 공허했고 나중을 생각하면 다시 불안감이 올라왔다. 그런 상태로 3개월이 지났다. 일에 적당한 힘을 쓰고 삶과 일의 경계를 분리시켜보았더니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더라. 그리고 이건 지속 가능한 삶의 형태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5년 전, 한 달을 온전히 쉬겠다고 떠난 포르투 여행에서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우울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그곳에서도 작은 성취를 만들기 위해 매일 일기 쓰기를 시작했고, 그 이후로 여행이 더 행복해지기 시작했던 것처럼. 성취하기, 나아가는 삶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분리할 수 없는 키워드임에 틀림없다.
언제 쓰일지 모를 것들이지만 부지런히 공부하며 쌓아놨던 것들이 다 일하는 체력으로 남아있더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먼 옛날 고등학생 시절 단어장이 손 때로 까매지도록 영어 공부했던 것부터, 밤 새 코딩 연습하고 프로토타이핑 모작하던 것. 외주 뛰면서 밤새 피그마와 씨름하며 배운 것들을 알게 모르게 지금 일하면서 다 꺼내 쓰고 있더라는 것. 다음 3년을 위해 밑천 바닥나기 전에 부지런히 읽고 쓰자. 디자인 오래 하려면 계속 공부해야 한다는 걸 더욱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 불씨를 다시 키워보자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남기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