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내가 유아숲체험원에 근무했을 때, 동료는 곤충에 아주 박식하고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동료가 전에 애벌레를 잡아다가 직접 키우고 우화 시켰다고 이야기하면서 또 그러고 싶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반감이 생겼다.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게 놔두지 않고 잡아다 좁은 공간에서 가두워둔다는 게,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애벌레를 집에 데려다가 키우는 것에 반대했다. 모든 것이 자기 욕심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애벌레를 키워보지 않았다.
숲체험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애벌레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의 애벌레를 보게 되는데, 곤충에 대해 박식한 동료를 통해 이 애벌레는 어떤 나비의 애벌레이고 어떤 나방의 애벌레이며 어떤 것은 박각시의 애벌레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다 보니, 나도 덩달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이 생겼다.
정말 신기한 모습의 애벌레도 있다. 몸을 'ㄹ' 자 모양으로 구부리고 을름 덩굴 줄기나 잎에 붙어있다. 으름나방애벌레다. 주변의 입을 다 먹어치웠다. 식성 좋은 애벌레, 오믈오믈하며 열심히 잎을 먹는 모습이 신기하고도 귀엽다. 한 참을 쳐다보기도 한다. '사람도 먹어야 살고, 애벌레도 먹어야 학고, 모두에게 먹는 건 중요한 생존의 문제지' 라고 혼자 중얼거리다가도 이 애벌레가 까마귀의 먹이가 되어 생이 끝나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누구도 알수 없는 일이다. 알에서 나비나 나방으로 살아남을 확률을 생각하며 ㄴ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한 삶이다.
예전에는 징그럽다고 생각했던 애벌레도 자주 보다 보니 귀엽다. 숲체험을 하는 아이들이 귀엽다며 쓰다듬어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도 점점 애벌레에게 관심이 생기고 산책할때마다 애벌레를 보려고 덩굴이며 풀숲을 눈여겨 살피게 된다. 애벌레를 발견할 때면 이 애벌레는 우화하면 어떤 나비가 될 것인지 궁금해졌다. 도감을 뒤져 애벌레와 나비의 짝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직접 애벌레를 키워 나비가 되는 모습을 보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았다.
초피나무 산초나무에서 자주 발견되는 애벌레가 있다. 제비나비, 호랑나비 애벌레다. 제비나비 애벌레는 색깔도 예쁘고 귀엽다. 하지만 머리는 뱀을 닮았다. 뱀 모양을 하고 천적이 속아 넘어가길 기대하는 모양이다.
제비나비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가 우화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산책하다가 초피나무에 있는 애벌레를 커다란 패트병에 넣어 집으로 데려왔다. 다음날부터 초피나무잎을 가져다주면서 매일 제비나비에게 기웃거리는 것이 내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애벌레는 참 잘 먹는다. 초피나무 잎을 싹 뜯어 먹고 잎줄기만 남겨놓은 걸 보면서 놀라곤 했다. 나는 변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었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는 그 순간,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어 매일 아침저녁으로 쳐다보았다.
어느 날 퇴근해서 돌아와 보니 애벌레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 번데기가 매달려 있었다. 꿈틀대기라도 하던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살짝 만져보니 번데기는 딱딱했다. 이제 번데기에서 나비가 나오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더 자주 살피고 관찰하게 되었다. 번데기에 무슨 기미라도 미리 보이는 건 아닐지 궁금해하면서 살피기도 했다. 하지만 번데기에서는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쳐다볼 때 나비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어 나올 때 날개가 다치지 않도록 번데기가 있는 나무의 키를 높여주었다. 걸리적 거리는 것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번데기가 있는 자리에 나비가 있었다. 실수로 나비가 있는 나뭇가지를 건드렸는데 가지를 따라 나비가 흔들리면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무런 생각없이 나비를 관찰하다 일어섰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비에게서 물이 떨어진 것은 나비의 날개가 아직도 마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비가 번데기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날개를 편지 얼마 안된 것이다.
계속 지켜보고 싶었지만 출근을 해야 해서 아쉬워하면서 나비만 남겨놓고 집을 나갔다. 저녁에 최근해서 돌아오자마자 베란다로 갔다. 나비는 창문 방충말에 붙어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작은 번데기에서 이렇게 커다란 나비가 나오다니 신기했다.
방충망까지 활짝 열었더니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멀리멀리 날아갔다. 푸른 하늘 아래서 날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나비의 날아가는 모습이 정말 자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식구가 멀리 떠나간 것처럼 허전했다.
알에서 나비가 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나비가 알을 낳으면 그 알이 나비가 되어 날아갈 확률은 1/100이라고 한다. 정말 어렵게 지켜낸 생명이다. 알 상태에서 먹히고 겨우 남아서 애벌레가 되어도 새에게 먹히고, 다른 곤충에게 기생당하기도 하고, 주변에는 애벌레를 노리는 다른 생명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잡아 먹히지 않고 나비가 되도록 지켜줬잖아. 라며 나비에게 내가 말하며, 데려다 키운 것에 대해 변명겸 위안을 삼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