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구덕 안에서 갓난 동생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고요히 숨을 고르는 아기의 얼굴은 세상 무엇보다 평온해 보였다. 작은 아기구덕을 흔들던 손이 그제야 멈추었고, 내 두 손과 발은 잠시나마 자유러워졌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해는 기울고 있었다.
나는 불안한 시선으로 마당 끄트머리를 자꾸 훔쳐보았다. 올레 끝에서 엄마가 나타나지 않을까, 그 기대 하나로 눈을 떼지 못했다. 마당 구석의 감나무 잎은 바람에 흔들리고, 수숫대를 깔아놓은 마당 위로 돌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잠시 아기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기를 잘 보라’던 엄마의 당부가 머릿속에서 맴돌았지만, 그보다 더 간절한 감정,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이 발걸음이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골목길 어귀마다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이제는 엄마가 보일까, 저만치 걸어올까. 아니면 아기를 두고 집에서 나온 일로 혼니 날까. 기대와 죄책감이 뒤섞인 마음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하지만 골목은 텅 비어 있었다.
조금 더 걸었다. 집들이 희미해지고 돌담만 이어지는 길로 접어들었을 때, 저 멀리 어른 한 사람이 보였다. 순간 엄마인가 싶어 눈이 커졌지만, 낯선 사람이었다. 안도와 실망이 동시에 밀려왔다.
밭 근처 돌담 모퉁이를 돌아서자, 멀찍이 엄마가 보였다. 허리를 굽혀 무너진 담을 고치고 계셨다. 어렸지만, 알고 있었다. 무너진 돌담을 쌓는 건, 엄마가 하루 일을 마무리할 때 늘 하던 의식 같은 행위였다. 그러니 엄마가 곧 집으로 돌아오리라는 걸, 나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곧 집으로 엄마가 돌아온다는 걸 알자 마음은 한결 놓였지만, 또 다른 불안이 뒤따랐다. 아기를 혼자 두고 이렇게 멀리까지 나왔다는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들키면 혼날 거라는 공포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집을 나설 때보다 훨씬 더 길고, 더 힘겹게 느껴졌다.
올레 입구에 가까워질 무렵,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던 걸까. 지금껏 쉬지 않고 달리며 흘린 땀이 등으로 흘러내리고, 어느새 차가워진 공기가 서늘하게 등을 흟었다.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서자 아기구덕은 뒤집혀 있고 아기는 그 속에 갇힌 채 서럽게 울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울음소리마저 쉬어 있었다. 구덕을 바로 세우고 아기를 눕히자마자 엄마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애타게 기다리던 엄마의 발걸음을, 그 순간만큼은 차라리 더디기를 바랐다. 단 한 걸음만이라도 천천히 내디뎌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엄마는 내게 시선 한 자락 내어주지 않은 채, 곧장 달려와 아기를 안아 젖을 물렸다. 곧 아기의 울음은 잦아들었고, 젖을 빠는 소리만이 고요한 마당을 채웠다. 그제야 엄마는 내 쪽을 돌아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밭에 갔다 올 동안 아기 잘 보고 있으라고 했는데, 그거 하나도 제대로 못 하고 뭐 했니?”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의 말은 겨울바람처럼 싸늘했고, 그 바람은 그대로 내 가슴속을 할퀴고 지나갔다. 엄마가 보고 싶고, 어리광 부리고 싶은 걸 꾹 참아가며 아기를 돌봤던 그 시간과 마음을 엄마는 알아주지 않았다. 나의 눈에는 그저, 자기 몫 하나 제대로 못 한 맏딸이 있을 뿐이었다.
서운함과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무엇보다 얄밉도록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빨고 있는 아기가 미웠다. 엄마의 품은 늘 그 아이 차지였다. 7살이었던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나도 아이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