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토닥토닥, 칭찬해주기
농사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웠던 부모님은 일본 도쿄 근처 공장으로 일을 나갔다. 그때 나는 한국에 남아 있었다. 스무 살이 막 지난 언니이자, 사실상 부모였다.
동생을 돌보는 일은 누구의 지시도 아니었고, 선택도 아니었다. 부모가 없는 집에서 언니인 내가 해야 할 몫이라 여겨졌다. ‘희생’이 아니라,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집에는 동생 네 명과 내가 함께 살고 있었다. 여섯 자매였지만 바로 아래 동생은 일본에서 공부 중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도시락 다섯 개를 쌌다. 집에서 먹는 반찬을 준비하는 것보다 도시락 반찬을 준비하는 일이 더 신경이 쓰였다. 국물이 흐르지 않아야 했고, 냄새가 나서도 안 됐다. 동생들이 점심시간에 창피하거나 눈치 보지 않도록. 내 아침은 누구보다 분주했다. 책임이 하루를 깨우던 시절이었다.
동생 한 명이 졸업한 후 도시락이 세 개로 줄었을 때, 어깨가 가볍게 느껴졌다. 세 개와 다섯 개의 차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삶이 조금은 덜 무거워졌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고3 동생의 진학 상담을 하기 위해 학교에 찾아간 적도 있었다. 스무 살 막 넘은 언니가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부모를 대신해 상담을 한다는 사실이 낯설고 긴장됐다. 그때 선생님은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까. 너무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되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교무실 문을 나서면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는 집안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빨래를 하고, 방을 쓸고 닦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집에 들어온 동생이 “집에 일찍 오고 싶어져”라고 말하면, 그 한마디가 하루의 보상처럼 느껴졌다.
몇 번 심리상담을 하던 도중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조용히 내 얘기를 듣던 상담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희생을 하신 거네요.”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희생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냥 언니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럴 만한 환경이었고, 누군가 해야 했기에 한 일일뿐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지는 않아요. 제 형님은 동생을 보살피기는커녕 동생들의 돈을 뺏어가 마음대로 쓰기도 했어요.”
선생님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말이 참 낯설게 들렸다. 나는 내가 해온 일을 한 번도 특별하다고 여겨본 적이 없었다. 누구나 비슷한 상황이면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단호히 말했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충분히 칭찬받아야 할 일이에요.”
그 말을 듣는데 마음 한편에 단단히 굳어 있던 무언가가 스르르 풀렸다. 나는 오랫동안, 내 삶을 스스로 깎아내리며 살아왔던 것 같다. 감당해온 무게를 ‘별거 아니었다’고 넘겨버리며. 내 안에 숨어 있던 스무 살의 언니를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수고했어. 고마워.”
그건 내가 누구보다 사랑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지금에서야 그 마음을 인정해 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