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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 BOM Feb 10. 2024

[난임] '아쉽게도, 임신이 아니십니다.'

아무렇지 않은듯, 그러나 아무렇지 않지는 않음을


두 번째 글을 꽤 오래간만에 남긴다. 작가가 되면 글을 잘 쓰진 못하더라도 소소한 나의 이야기를 편하게 나눠봐야지 했던 마음가짐과 달리 요새 심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전혀 없다보니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것 같다.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6개월간의 파견근무를 시작했다. 지난 5년 동안은 쉽게 접하지 못한 영역의 업무를 다시 하게 되면서 식사도 거른 채 하루 12시간 가량을 근무지에서 보내며 10년 전, 신입 시절마냥 일을 하고 있다. 쉬는 날은 긴장감을 잠시 내려놓은 채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느라 집은 거의 폭탄을 맞은 수준으로 엉망이고 기본적인 집안일도 퇴근한 남편이 도와주고 있다. 이렇게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는 와중에도 더 미룰 순 없다며 우리 부부는 인공수정 1차를 도전했고 그 결과는 제목처럼 실패였다.


인공수정 1차 시술을 받고 병원에서 남편의 손을 잡고 나오던 날, 임신이 되면 당장 파견 나와있는 부서에서 근무를 바꿔야 할텐데 언제 임신을 근무지에 알리는게 좋은지를 고민하기도 하고, 평소 생각해두었던 태명을 공유하기도 하며 벌써 임신을 한 것마냥 웃으면서 떠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로부터 정확히 2주 뒤, 임신이 아니라는 통화를 받을 땐 나홀로 집에 있었는데, 한 십여분 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며칠 전부터 다시 생리가 시작할 것 같은 조짐이 보였다고 말하지 않았냐며 역시나 아니라고 한다고 덤덤하게 말을 전했는데, 열심히 포장하여 덤덤하려했던 나의 말에 남편은 솔직하게 바로 아쉬움을 내비추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하려했으나 아무렇지 않지 않았던 나의 마음. 그리고 남편의 마음. 확률적으로 단 한 번에 성공하는게 쉽지 않은 일임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음에도 마치 한 번에 성공할 것이란 희망적인 믿음을 둘 다 알게 모르게 마음에 품고 있었던지라 헛헛했다. 그래도 그 날 퇴근후 얼굴을 마주했을 땐 인공수정 실패와 관련해서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시험관을 하기에는 파견 근무중이라 근무 조정이 쉽지 않고, 그렇다고 또 마냥 기다리기에는 지금까지의 기다림만으로 충분하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 고민하다 내린 결론, 2차 인공수정에 도전해보는 것을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은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한 번 더 바로 도전해보자고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2차 인공수정을 도전하려는 마음을 전하고자 들린 병원에서는 방문 첫 날 나를 위로했던 원장님께서 '그래, 좋아요. 또 한 번 문을 두드려봅시다.'라며 밝게 웃으면서 큰 목소리로 응해주셨다. 


"선생님은 몇 살이야? 어휴 그렇게 안 봤는데 나이가 있나보네. (젊게 봤으니) 나한테 한 턱 내야겠어. 아이는 있고? 에구 안 낳을 생각인건가? 그래도 하나는 낳아야지. (안 생겨서 아직 없다는 말에) 에구 맞아. 요샌 그런 경우도 많더라고. 빨리 낳아야 편할텐데." 파견 가 있는 근무지에서 마주하게 되는 환자, 보호자, 혹은 간병인들이 종종 인사치레로 요즘 내 최대 예민한 부분을 찌르는 말을 할 때면 그저 웃으면서 "그러게요, 이것도 타고난 복이라는데 언제 저한테 복이 찾아오려나요."라고 오히려 너스레를 떨며 대답한다. 이래서 명절날 가끔 보는 친척들이 무섭다는 말이 있나보다. 인사치레마냥 주고 받는 주제인 "취직은 언제하냐, 결혼은 언제하냐, 애는 언제 낳냐." 등의 말들이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관심의 표현일지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말일 테니. 다행히도 이번 명절에도 양가 부모님은 손주에 대한 얘기는 일절 언급하지 않으셨다. 결혼한 지 만 3년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이번 명절 만큼은 먼저 얘기를 꺼내시지 않을까 염려했던 부분이 있던지라 참 다행이면서, 계힉대로라면 이번 명절에 양가에 기쁜 소식을 전달해드리고 싶었는데라며 마음이 씁슬했던건 어쩔 수 없는 미련이자 욕심이다.


그래도 이런 우리 부부의 고군분투 상황을 누군가에게는 털어놓고 싶었던지라, 하나뿐이지만 그렇게 친한 편은 아닌 나의 친 여동생에게 인공수정 1차를 실패했고, 2차를 며칠 전에 했다며 소식을 전했다. 그런 동생에게서 '동생의 조카 기원 선물이랄까(하트)' 라는 카드와 함께 배란테스트기를 선물 받았다. 주변에서 효과가 좋아 한 번에 임신을 성공했다며 추천해준 배란테스트기란다. 서로 취향도, 성격도 정 반대인데다 결혼하고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거리까지 멀어져서 드문드문 연락을 주고받는게 전부인 동생에게서 이런 깜짝 선물을 받으니 마음이 뭔가 뭉클해졌다. (요새 나 많이 힘든가보다 :(.. )


아직 10일도 더 남은 기다림이 지나가야하지만, 결과가 어찌 되었든 무너지지 않으련다. 그러기위해 너무 앞서서 행복한 고민도 하지 않으려한다. 물론 결과에 따라 아무렇지 않을 순 없겠지만 나만 아무렇지 않은게 아닐테니 함께 토닥여주며 손잡고 또 나아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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