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조아름 2019-2020 첫 번째
스무 살 때까지 내가 유일하게 화내고 싸우는 사람은 엄마였다.
나는 엄마 외의 다른 가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14살부터 친구들이 ‘너는 착하잖아.’라고 나를 정의해줘서 그에 맞춰 살았다. 착한 눈을 하고.
엄마가 떠난 스무 살의 봄이 지나자 투정을 부리고 짜증내고 ‘미안해’라는 한 마디를 듣고야 말겠다고 끈질기게 약을 올릴 상대가 내겐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 어처구니없게 당첨되는 사람이 나와 연애를 하겠다고 덤벼든 남자들이었다(물론 내가 먼저 덤빈 적도 있다).
그동안 못했던 걸 이번에 다 풀어 보겠어, 라는 생각으로 하는 건 아닌데, 자주 해보지도 못 한 ‘화내기’, ‘따지기’, ‘소리지르기’, ‘그러다 울기’가 어제도 한 사람처럼 어색하지 않게 흘러나왔다.
지금까지도 남은 가족에게, 오래된 친구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가진 게 적으니 그마저도 떠나갈까 봐 몸 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또 희생자는 우리 남편이다.
나는 남편과 싸우다 나를 발견한다. ‘화가 많은 사람’, ‘지적받는 것에 익숙지 않은 사람’, ‘타인의 실수에 대해 꼭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야 속이 풀리는 사람.’ 내가 이렇게까지 옹졸하고 별로였나 싶을 만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의 어두운 모습과 대면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화낼 수 있는 사람, 나의 기분을 어떠한 가공도 거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남편 하나라고 생각하니 살짝 서글픈 마음도 드는데, 한편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마음도 분명 발견할 수 있었다.
남편은 대체 무슨 존재인가 고민하게 된다. 나를 화나게 하려고 있는 존잰가, 나를 시험하나, 나의 검은 실체를 알려주려 온건가,
아니면,
나의 모든 투정과 짜증을 받아주러 온 천사인가, 너도 좀 숨 편히 쉬며 있어보라고, 그렇게 해서 본인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어필하는 존재인가.
남편과 싸우며 성장하고 있다. 나 화나게 만들어줘서 고맙게도 생각해야 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든 받아들여 보겠다. 남편과 격렬히 싸우고 나서 남편의 소중함을 깨닫는 아직도 배울게 많은 #37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