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가 쪽 친척들은 만나기도 자주 만나는데 싸우기도 잘 싸웠다. 사이가 좋을 땐 엄청 좋은데 한 번 싸움을 시작하면 무섭게 했다.
나는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지만 싸움이 벌어지는 그 현장에 같이 있는 경우는 적었고, 싸움이 끝나고 난 장소의 풍경이나 사람들을 몰골을 보며 이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싸울 수 있나 매번 놀라곤 했다.
엄마에겐 위로 오빠가 두 명 아래로 여동생이 세 명 있었는데, 엄마의 바로 아래 동생과 주로 싸움을 일으켰다. 그런데 엄마의 형제자매 중 제일 친하게 지내는 이도 그 동생이었다. 내가 대전이모 라고도 하고 현혜이모 라고도 부르는 사람. 우리 가족이 집도 절도 없을 때 방 한편을 내주며 재워줬던 사람. 시골에서 다방도 하고 시장에서 반찬가게도 했던 사람.
내가 모르는 싸움도 많겠지만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싸움은 두 번 정도이다.
중학교 때 살던 연무동 집은 천장이 고풍스러운 나무재로 마감되어 있었다. 천장에 그렇게 신경을 쓸 일이 있으면 화장실이나 좀 더 잘 만들지. 나는 화장실 문을 열 때마다 소름 끼치게 차가운 타일의 기운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옆 마당에 있는 앵두나무에 앵두가 열리는 계절이면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행복을 느끼고, 넓은 거실에 누워 오디오에 CD를 넣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을 들으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묘한 흥분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거실에 누워 나무 천장에 매달려 쉼 없이 돌아가는 날개 다섯 개의 연녹색 실링팬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날들이 많았던 것이다. 중학교 2학년 시절에.
어느 날 나갔다 집에 돌아오니 식탁 위가 요란했다. 밥을 먹다 그 위에서 씨름이라도 한 건지 밥과 반찬이 그릇이 아니라 바닥에 뒹굴어 다녔고 엄마가 시집오면서 해왔다는 파란 꽃무늬가 새겨진 식기와 접시들이 무참히 깨져 있었다.
그런 광경을 우뚝 선 채로 응시하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싸한 느낌에 위를 올려다보니, 거실 나무 천장 한가운데가 길게 구멍이나 뻥 뚫려 있었다. 살짝 보이는 구멍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깊은 어둠만 있었다.
현혜 이모네 식구들이 집에 와서 같이 밥을 먹다 다툼이 일어났고, 누군가가 먹던 상을 엎자, 누군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칼을 천장으로 집어던진 것이다. 그 칼이 나무 천장에 꽂히면서 구멍을 냈고 누군가는 의자를 밟고 올라가 꽂힌 그 칼을 빼냈을 것을 생각하니 이빨이 덜덜 떨렸다. 칼을 던진 사람은 내 멋대로 이모부라는 결론을 냈고 그 이후로 나는 이모부 앞에 서면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구멍 뚫린 천장의 깊은 존재감이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아무도 그 구멍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 구멍을 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살던 화서동의 빌라는 도무지 팔리지가 않아 우리가 다시 들어가 살았다. 아빠가 화장실도 안 보고 1분 만에 덜컥 매매 계약서에 사인했다는 집이다. 나는 그 집에서 설악산 밑의 기념품점에서 사 온 40cm 길이의 굵은 연필로 사랑의 매를 맞았다. 엄마는 사랑의 매 보다 매일 쓰는 빗자루가 편했는지 빗자루를 들고 나를 잡으러 쫓아다녔다.
한 여름, 검은색 쌀통에서 버튼을 두 번 눌러 쌀을 받아 내면 하얀 쌀벌레가 서너 마리 꿈틀 거리는 걸 보았고, 독서실에서 돌아온 새벽, 어두운 거실에 불을 켜면 샤샤샥하고 숨어 들어가는 바퀴벌레들의 이동이 끝날 때까지 두 눈을 질끈 감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현혜 이모는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살았고, 이모와 엄마가 우리 집과 이모집 사이 중간쯤 되는 장소에서 바닥에 뒹굴며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나는 집 안에 (숨어) 있었다. 나는 엄마 아빠의 말싸움도 못 말리는 새가슴이었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정신이 반쯤 나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가 갑자기 집안으로 들어와 딸년이 나와서 말리지도 않는다고 나를 노려보더니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며 말했다.
다 죽었어, 다 죽여 버릴 거야.
엄마 머리는 잡아 뜯겨서 머리카락이 마구잡이로 엉켜있었는데 정수리 가운데가 동그랗게 뭉텅이로 빠져 있었다.
왜 그러냐 정신 차려, 그만해.
아빠가 침착하게 엄마를 말렸지만 엄마는 흥분을 넘어서 얼이 빠져 보였다.
내버려 두자, 저러다 말겠지, 하며 아빠도 포기한 듯 터덜터덜 엄마 뒤를 쫓아 나갔다.
시간이 흘러 다시 들어온 엄마는 팔 곳곳에 생채기가 난 상태로 눈썹 위의 작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스윽 닦아내고 있었다.
와아 이 사람들 나이 먹고 어떻게 이렇게 싸우지 나는 내가 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신발 한 짝만을 오른손에 들고 시꺼메진 맨발로 들어왔다.
그렇게 죽을 듯이 싸우던 그들은 어느새 또 화해를 해서 김치통을 들고 왔다 갔다 하고, 밥을 두 시간에 걸쳐 먹으며 아빠와 이모부 흉을 봤다. 언제 싸웠냐는 듯 키득거렸다. 나는 어른들이란 역시나 (그리고 매우) 이상한 존재라 확신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마지막까지 나를 딱하게 여기며 챙겨준 건 현혜이모다. 나는 몇 년 전 아빠와 밥을 먹다가 놀라운 사실을 들었다. 현혜이모가 엄마의 친동생이 아니라는 이야기. 먼 친척의 다른 집 자식을 데려다 키웠다는 사실.
나도 이모도 예전처럼 서로를 자주 생각하진 않지만 지금은 적어도 이모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