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 외로운 밤의 꿈같은 한국인들

by 피츠로이 Fitzroy

도쿄 니시이케부쿠로의 반지하에 살 때의 일이다. 나는 서른 살이었고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것 같은 어리고 예쁜 동료들과 시부야에서 일했다. 멋지게 입고 나온 젊은이들이 가득한 시부야에서 일하는 자신이 가끔은 퍽 멋있게 느껴졌다.

내 주변엔 한국인이 극히 적었고, 영어를 잘하는 일본인이나 일본어를 잘하는 하프(혼혈)가 많았다. 나는 그들과 어울리며 이유 없이 자주 소심해졌는데, 말처럼 정말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가끔 내게 전화를 걸어 주었지만, 전파가 좋지 않아 자주 끊어지는 반지하의 내 방을 이해하지 못했다.
“넌 대체 도쿄까지 가서 어떤 집에서 사는데 전화가 끊겨.”
그러니까 냉동실 잔뜩 쟁여둔 싸구려 냉동식품과 허리를 펼 수 있는 높이가 안 나오는 이층 침대 같은 건 그들은 모르는 것이다.

내가 도쿄에서 가장 많은 한국인들과 어울린 것은 그날 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를 갑자기 불러낸 이는 유정이었다. 유정은 일본 대학을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으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었다. 유정과 만난 것은 고작 한 번 뿐이었는데,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었다. 그녀는 내가 대학생 시절 알고 지내던 남자 선배의 친구로, 그 선배가 잠깐 도쿄에 여행을 왔을 때 나와 유정을 함께 불러내 인사를 시켜줬었다.
“내가 한 살 많아, 동생 생겨서 좋네. 자주 보자.”
유정은 나에게 살갑게 굴었지만 나는 또 보고 싶을 만큼 그녀가 좋은 것 같진 않았다. 화장이 짙고 치마는 짧고 말이 거칠어서가 이유라면 이유였는데, 화장은 나도 진했고, 옷은 내가 더 요란하게 입고 다녔기에 그건 그녀를 좋아할 수 없는 정당한 이유가 되진 못했다.

독립된 방 안으로 안내받으니 넓은 사각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은 여자 셋에 남자 둘. 늦은 밤, 한 이자카야에 모인 이들은 모두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들이었다. 어두운 조명에 더해진 검은색 가죽 소파는 왠지 불량한 냄새가 났다. 그들은 앉은 것과 누운 것의 중간쯤 되는 자세로 노란 조명을 받은 누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뭔가 조직에 불려 온 느낌. 도쿄에 온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일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이렇게 한 자리에서 보는 것도 처음이라 호기심을 가지고 나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어어 왔네 왔어.”
유정이 반겨줬다. 왼쪽 아이라인이 번져 있었다. 반대편 여자들 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쪽은 은영이랑 희수. 너보다 더 어려.”
나는 어설프게 웃으며 인사했다. 은영은 내 인사에 담배 연기를 동그랗게 원형으로 (예쁘게) 만들어 공중에 뱉었다. 나는 환영식이라도 해주는 건가 놀라고 신기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버릇 같았다. 항상 담배 연기는 동그란 모양으로 나왔고 그 도넛 연기를 만들기 위해 입 속에 공기를 한 껏 집어넣어 볼을 빵빵하게 만든 후 입술을 최대한 오므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그들은 능숙한 말로 끊임없이 술과 안주를 주문했고 주문을 받아 적는 직원은 왜인지 끊임없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언니, 언니는 어디 살아요?”
인형같이 예쁘게 생긴 희수가 내게 물었다. TV에 나오던 한창 인기 있던 그룹 시크릿의 한선화와 똑같이 닮아서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었다.
“난 이케부쿠로 쪽...”
“어머 언니 나도 거기 살아앙.”
“아, 그래요?”
“00 쇼핑몰 3층에 있는 스타벅스, 나 거기 죽순이예요, 언니. 우리 거기서 한 번 봐요.”
애교가 넘쳐 흘렸다. 내 팔뚝을 살짝 잡으며 눈으로 한껏 웃는다.
옆에 앉은 덩치 큰 단발머리의 남자가 피식 웃었다.
“야, 스벅 죽순이가 뭐 자랑이냐?”
단발머리 옆에 앉은 이번엔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받아쳤다.
“왜그래애~ 우리 귀요미한테.”
빡빡한 학교 생활의 유일한 낙이 스벅 커피와 담배라고 말하며 희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이들의 정체가 점점 궁금해졌다.

은영과 희수는 이번에 다녀온 하와이 여행이 얼마나 좋았는지 이야기했고, 단발과 콧수염은 학교에 얼마나 이쁜 여자애들이 많은지 이야기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깝게 들으면서 먼 세상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꼈다. 모두가 피워대는 담배연기 때문에 뿌옇게 흐려진 공기 탓인 것도 같았다.
“와, 씨발 너네들이랑 노니까 만 엔은 돈도 아냐, 그냥 쓰네.”
콧수염이 지갑에서 만 엔짜리 한 장을 꺼내며 불평했다. 먹은 값을 치르려고 계산을 해보니 한 명당 만 엔씩 나온 것이다.
“너네는 돈을 참 잘 써.”
“오빠 우리 또 택시 탈 거야, 돈 더 있어야 해.”
희수가 콧수염에게 말했다.
나는 여기서 만 엔을 내면 이번 달 생활비는 얼마를 가지고 써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클럽 가자. 나 롯폰기에 좋은데 알아.”
유정이 큰 소리로 외쳤다.
“와아아, 언니 좋아요 너무 좋아요.”
눈을 반짝 거리며 대답한 건 희수였다. 좋은 건 나도 똑같았다. 도쿄에서 꼭 핫하다는 클럽을 한 번은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두 같이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나와 유정은 이자카야를 나오기 전 화장실에 들렀다. 내가 먼저 볼일을 보고 나와 손을 씻는데 아직 화장실 칸에서 나오지 못한 유정이 내게 말했다.
“있잖아, 쟤네들 저 여자애들 돈 벌어.”
“돈이요? 아, 공부하면서 알바하고 그래요?”
“내가 언제 은영이 진지하게 잡고 물어봤거든. 너 그거 하지, 하고 조용히 추궁하니까 그렇다는 거야. 몇 번 발뺌하더니 결국 이실직고 하더라고.”
뭘 한다는 거지. 뭘 한다는 걸까.
“그러니까 저렇게 맨날 돈 펑펑 쓰고 다니고, 이번에도 뭐야 그 하와이 여행 그것도 그 돈으로 다녀온 거야. 희수도 같이 하는 것 같아.”
“... 뭘 하는데요...”
“바보야, 남자랑 자주고 돈 받는 거지.”
큰 문제가 돼서 뉴스에도 나왔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한다는 고가의 알바.
“내가 그랬어, 너네 그렇게 살지 말라고.”
“네.....”
나는 점점 더 이 공간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택시 두 대를 잡아 롯폰기의 어느 클럽 앞에서 만나자 이야기하고 나눠서 탔다. 내가 도쿄에 와서 택시를 탄 건 일본에서 살아보겠다고 1년 치의 짐을 가지고 이케부쿠로 역에서 내렸던 어느 저녁이었다. 이케부쿠로역에서부터 내가 앞으로 살 집을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고, 짐은 많은데 비까지 내려줘서 어쩔 수 없이 검은색 택시를 잡았다. 첫날이니까 조금 사치하자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처음 타보는 롯폰기행 택시. 조금 흥분되고 조금 두려운 감정이 엎치락뒤치락 다녀갔다.

클럽 몇 군데를 돌아보며 고심하던 우리는 가장 특징도 없고 가장 무난한 곳으로 입장했다.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고, 오렌지색 마룻바닥이 땀과 열정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의 신발들로 더러워지고 있었다.
“언니 여기는 너무 물이 그런데. 딱 재미없을 거 같은데. 음악도 그렇고.”
유정의 선택에 희수가 삐죽거렸다.
“야, 어디나 똑같아 그냥 재밌게 놀면 돼지. 쭈욱 쭉 들어가, 들어가!”
유정이 말했다.
내가 한창 다녔던 홍대나 이태원 클럽에 비하면 시설도 음악도 분위기도 매우 형편없었다. 내가 이런 데를 오려고 롯폰기까지 클럽을 왔나 싶었다. 그런데 또 그 모든 조건과는 상관없이 내가 재밌게 놀면 그게 제일 좋은 곳이지. 희수의 말도 유정의 말도 둘 다 맞았다.
모두가 좋아할 만한 대중적이고 식상한 음악들이 줄지어 흘러나왔고 우린 거기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었다. 이제껏 먹은 술들이 내 뱃속에서 출렁거리며 곳곳에 술기운을 전달하고 있었다. 배가 따뜻하고 머리가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남자 둘과 여자 넷이 뭉쳐 모여서 춤을 추고 있으니 어떤 남자도 어떤 여자도 우리 근처로 다가오지 않았다. 재미가 없는 것 같은데 또 있는 것도 같았다. 생각이 없어도 먹다 보면 식욕이 생기듯 놀다 보면 또 흥이 난다.
그러다 갑자기 희수가 무리를 빠져나가 성큼 앞으로 걸어가더니 어떤 일본 남자의 두 팔을 끌어당겨 우리 쪽 무리로 끌고 들어왔다.
그리곤 일본어로 그에게 같이 춰요 우리, 라고 말하며 그의 손을 꼭 잡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나랑 유정은 순간 멈칫, 당황했고 무슨 일이냐는 눈빛을 말 대신 보냈다. 희수는 우리 쪽을 보며 한국말로 답했다.
“아아니, 이 사람이 아까서부터 계속 나만 빤히 쳐다보잖아아.”
아, 자기가 이쁜 걸 아는 사람의 당당함을 그때 나는 본 것 같았다.
끌려온 일본 남자는 그녀와 함께 부끄러운 듯 몸을 움직였지만, 매력적이거나 돋보이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 반대에 가까웠다.
“별론데?”
일본 남자가 떠나자 은영이 희수에 말했다.
“뭐 어때, 나쁘지 않은데.”
희수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웃었다. 아무에게나 쉽게 손을 내미는 그녀를 나무라고 싶었지만, 그게 또 왜 안 되는 건지 설명을 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쳤다, 우리 이제 가자.”
은영이 말하곤 밖으로 나가자 우리는 졸래졸래 그녀를 뒤따라 나갔다.
“놀만큼 놀았네, 집으로 가시죠 다들.”
유정이 큰 소리로 정리하듯 말하자 단발과 콧수염이 나섰다.
“아 뭐야 그냥 거는 거야? 그럴 거면 우리 왜 불렀어,”
“와 진짜 우리 이렇게 헤어지는 거야?”
택시에 앉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둘은 뭔가 더 있어야 한다는 듯 불만스러워했다.
“미친 새끼들. 뭘 기대한 거야 쟤네.”
멀어지는 택시를 보며 은영이 말했다. 은영의 마지막 한 모금의 담배연기는 도넛 한 쪽이 뭉개지고 말았다.
“재수 없어.”


곧 있으면 해가 뜰 것 같이 사방이 어슴푸레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너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여기서 가까워.”
유정이 묻자 나는 무슨 생각에선지 그러겠다 했다. 같이 사는 룸메가 깰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인 건가. 그것보다 여기서 자든 거기서 자든 불편한 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수와 은영은 또 다른 택시에 실려져 멀어져 가고 있었다.

유정의 집은 아담하고 이뻤다. 새벽녘의 깨끗하고 맑은 기운이 도는 좋은 동네였다. 나도 이런 동네에서 살고 싶었다. 내가 한국에서 오래도록 일본에서 지낼 집을 찾아보고 있을 땐 이런 동네는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내가 가진 돈 안에선 이런 동네는 자연스레 걸러졌다. 유정은 화장실에 들어가 오랜 시간 담배를 피우고 나왔다.
“언니 저 담배 한 개만 빌려주실래요?”
“니 담배 니가 왜 안 들고 다니냐.”
안 주는 말인 줄 알았더니 한 개비를 건넸다.
“화장실 가서 펴.”
나는 언니가 남기고 간 담배 냄새가 짙게 밴 아담한 화장실에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갑자기 담배가 너무 피고 싶어 졌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오늘 하루가 잘 정리되지 않을 것 같았다. 목구멍의 어딘가가 살짝살짝 요동치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행히 토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몇 시간 못 자고 일찍 눈을 뜬 우리는 같이 아침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숙취가 아직 몸의 어딘가에 조금 남아 있었다. 뭐든 다 있는, 그러니까 양식 중식 일식 모든 국적의 요리가 다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그녀는 팬케익을 주문했다. 그리곤 생맥주 두 잔을 큰 컵으로 주문했다.
“해장은 술로 해야지.”
나는 싫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아침 11시가 아직 못 된 시간이었다. 이 맥주를 마시면 집에 가서는 토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맥주가 배로 흘러 들어가는 길의 따꼼따꼼함을 오래 느끼며.

집에 가는 전철을 타면서 지난밤 내가 쓴 돈이 얼마쯤 인가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계산이 잘 안 되자 이번엔 어젯밤에 만난 한국 사람들의 얼굴을 한 명씩 떠올렸다. 어제 일인데도 1년 전 일처럼 희미하게 느껴졌다. 영어도 일본어도 쓰지 않아도 되는 편한 사람들. 그런데 그 편한 사람들 또한 나와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도 생각했다.
유정은 내 해장 맥주값을 계산해 주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희수는 어느 날 지금 00 쇼핑몰의 스타벅스에 있으니 나오라는 문자를 보냈지만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내가 도쿄에서 가장 많은 한국인들과 어울린 것은 그날 밤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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