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어깨에 얼굴을 박고 잠깐 낮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행복한 기분이 든다. 나는 평소 낮잠을 자지 않는데, 어쩌다 한 번 이렇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내가 엄청 사랑받고 있는 사람 같다. 그런 경우엔 항상 옆에서 남편도 같이 자고 있다. 그러니까 혼자 잠들어서 혼자 일어났을 땐 그렇게 행복한 기분이 들진 않는 것이다. 시간 허비한 거 같고, 잘 못 살고 있는 것 같고. 약간의 정신병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자고 일어나 집 앞 카페나 가볼까 하고 옷을 갈아입으며 거울을 보는데, 미간에 일자로 진하게 새겨진 자국이 있다. 살이 패인 것처럼 깊기도 하다. 안경을 벗지도 못하고 안경테에 눌린 채로 아프게 잘도 잤네 싶었다. 이런 자국은 잘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잠 잔 걸 선생님께 들켜 버리고 마는 고3 교실의 풍경이 떠올랐다.
책상 위에 교과서를 놓고 그위에 엎드려 자면 늘 얼굴 어딘가에 책에 눌린 자국이 남았다. 이마에도 가끔은 한쪽 볼에도 선명한 긴 선이 있다. 손으로 힘줘서 쓱쓱 밀어봐도 금방은 안 없어진다. 그럼 선생님이 긴 막대기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지나가며 나한테 말 안 하고 모두에게 말한다.
“야야, 지금 너네들이 잠잘 때야? 수능 얼마 남았다고 이래. 한 자라도 더 봐야 할 판에 잠이 와? 정신 똑바로 차려여! 졸린 사람 세수하고 와, 아님 뒤에서 서서 수업 들어.”
내가 중학교 3년 내내 좋아했던 영어 선생님은 학생이 수업시간에 졸면 깨우지 않고 깰 때까지 기다려 줬다. 그럼 모두가 다 같이 친구를 보며 얼른 일어나길 기다렸다.
친구의 고개가 허공에서, 위에서 아래로 뚝 떨어졌다 다시 천천히 올라가는 반복 운동을 한다. 그리고 오른쪽 입술 끝으로 천천히 침이 흘러나온다. 펼쳐 놓은 영어 교과서 12과 본문 위로 똑똑 떨어지다가 결국 침이 고여 물웅덩이, 아니 침 웅덩이가 생긴다. 그래도 상하 운동은 멈추지 않는다.
선생 한 명과 45명 한 반의 44명의 학생들이 웃음을 참아내며 숨죽여 친구를 지켜본다. 이상하게 쌔한 기운에 웅덩이를 파던 친구가 갑자기 눈을 뜨면 선생님은 멋있는 목소리로 “잘 잤어? 진순이?”라고 말한다. 아, 이러니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학, 그 엄청난 곳에만 가면 정말 다른 세상이 있을 것처럼 잠을 아껴가며 공부했던 우리들, 그리고 옆에서 기계처럼 목청 높여가며 잠을 못 자게 만들었던 선생님들. 훔쳐 자던 잠이 소중하고 달던 그날이 그립다. 38번 진순이도, 꽃미남 최부양 선생님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