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그 이상의 의미
얼마 전, 친구와 '덕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앨범을 구매한 일이 떠올랐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윤하의 팬이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내가 구매했던 앨범 중 제일 비싼 앨범이 있었는데, 나의 용돈을 8달 모아야 살 수 있는 그런 가격이었다. 얼마 안 되는 용돈을 꼬박꼬박 모아 나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소비'를 해내고선 기쁨에 몸부림쳤었더랬다. 그 기억이 문득 떠올라 오랫동안 서랍 속에 잠들어있던 CD를 꺼내어 CD플레이어에 재생시켰다. 그 당시 윤하는 일본에서 더 활동을 많이 했었기에 앨범은 전곡이 일본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랫동안 듣지 않았던 노래였기에 기억이 날까 싶었는데 완벽하진 않지만 얼추 따라 부르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노래를 듣는 동안 중고등학생 시절 윤하의 노래를 들으며 느꼈던 기분과 감정들이 다시 되살아났다.
추억은 기억과는 달라서 그때 일뿐만이 아니라 그때 느꼈던 감정과 기분마저 떠오른다. 힘이 들고 지칠 때마다 여행을 갔던 기억이나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그런 것들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좋은 것들을 찾으니까. 우리는 맛있는 음식에서만 힘을 얻는 게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힘을 얻는다.
추억을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물론 추억은 단순히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봄 햇살에 만개한 벚꽃처럼 화사한 기억들도 있고 가을비를 맞고 떨어지는 낙엽처럼 쓸쓸한 기억 또한 있다. 어느 추억을 떠올리냐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확실한 건 우리는 추억 그 자체에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한 가지 감정이 아닌, 그렇다고 뭐라고 정확하게 얘기할 수는 없는 복잡 애매한 감정들을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추억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뭐라 말할 수도 없고 단정 지을 수도 없지만 수많은 감정들이 가슴을 일렁이게 하니까, 그래서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니까 말이다.
추억은 때론 과거가 아닌 일상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SNS에서도 추억을 찾을 수 있다. SNS는 사실 반응이 극명하게 나뉜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누가누가 잘났냐를 겨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허영과 거짓이 가득한 공간'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난 이들과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여행을 다녀온 일이나 즐거웠던 일이 있으면 게시글을 올리곤 한다. 나에겐 즐거운 일도 있고 힘든 일 또한 존재한다. 그럼에도 즐거웠던 일을 많이 올리는 것은 그것이 지금을 버티게 해주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씩 지칠 때마다 내가 했던 일들을 보며 '좀만 더 버티면 다시 즐거운 일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지친 지금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인 셈이다.
추억이 좋은 건 무엇으로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향기에 의해 누군가와의 추억이 떠오를 수도 있고 어떠한 맛이나 촉감으로도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추억은 매개체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추억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추억은 애틋하다
우리는 추억을 특별한 기억이라고 여긴다. 그것은 외워야 하는 암기가 아닌 나의 무의식이 가지고 싶어 하는 기억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가 추억을 떠올리며 아릿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다 그러한 탓이다. 아주 지극히 평범한 오늘이지만 어쩌면 나는 시간이 지나 오늘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내가 했었던 일보다 지금 느낀 기분과 생각이 더 먼저 와 닿을 것이다. 추억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마주 보게 해준다. 그리곤 지금의 나에게 기분은 좀 어떠냐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추억에게 씩 웃어 보이곤 조금 나아졌다며 멋쩍은 미소를 보인다. 오늘도 나는 추억 덕분에 기분이 좀 더 새로워졌다. 가끔은 추억이 나를 울적하게 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기분을 리프레쉬하게 해주는 날도 있기에 나는 추억과 멀어질 수 없다.
만일 추억이 내게로 다가온다면 두 팔 벌려 안아주자.
그것이 어떠한 추억이던 당신의 가슴은 일렁일 것이며 새로움으로 반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