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전쟁의 시대가 도래하는가(혹은 했는가?). 내전은 늘 존재했다. 하지만 국가간의 전쟁긴장감이 이렇게 까지 높아진 것은 냉전이후로 최대치에 다다른 것 처럼 보인다. 거기엔 일부러 냉전의 분위기를 만들어 자신의 정치적이익을 보려는 쪽도 있는 것 같다. 아프리카의 수 많은 나라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서 새 정부가 들어서는 일도 일어나며, 동남아시아에서도 사람들이 투쟁을 시작했다. 이제는 삼 년 차로 들어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내 눈을 의심케 했었다. 영국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 끝난 것은 20세기 초중반이다. 전쟁을 경험한 전쟁세대는 누구보다도 전쟁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전쟁세대는 또 다시 둘로 나뉘어 한 쪽은 전쟁을 억제하려는 쪽으로 움직였고, 또 다른 한쪽은 그 전쟁의 힘을 이용하여 냉전시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 태어났다. 어쩌면 그들은 그 참혹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전쟁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결재 싸인을 한 자신들보다 그들의 결정으로 인해 전장으로 끌려가고, 아무런 이해관계가 있지 않는 사람들이 죽는다. 그런 지도자를 거기에 앉힌 사람들의 잘못도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유럽은 러시아의 침공을 보고 군축을 멈추고 다시 국방력을 기르려 하고 있다. 탱크와 전투기를 구매하고 직업군인들을 뽑는다. 징집 광고는 군인의 일이 매우 '재밌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현대 사회, 특히 국가관의 관계 혹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이제 사상은 허울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는 '사상'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부추기고, 사실은 돈 때문인 이유들을 '사상'의 이유라고 포장하여 각을 세운다.
극우주의 혹은 파시즘주의는 상대를 배척한다. 미디어를 통해 그들은 사람들에게 외친다. 당신이 불행한 이유는 당신이나 나 때문이 아니라 이민자들 때문입니다. 많은 경제적인 문제는 사실 그들이 채택한 신자유주의의 무자비함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애써 무시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찍어준다. 하지만 결국엔 더 나쁜 상황이 다가오고, 사람들의 분노는 거리로 향하고 약자를 향한다.
폭력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미사일과 드론이 날아다니고, 이제는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무감각해진다. 전쟁은 전장에서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발생한다.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란 사람들이 오늘도 서로를 저격하고 고소하고 폭로를 잇는다. 거기에는 역시나 '사실'은 별로 중요치 않아 보인다.
이따금씩 꿈을 꾼다. 서울에서 나는 자동차를 타고 한강 변을 달리고 있다. 밤하늘에 갑자기 미사일이 떨어지고 아파트가 무너진다. 이전엔 그저 꿈이라고 치부했지만, 전쟁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손을 제때 쓰지 않으면 꿈이 현실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