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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Sep 28. 2024

<만들어진 웃음 :-)>

초단편 소설 - 7


밀레니엄은 그야말로 공개코미디의 전성기였다. 방송사에서는 여러 프로그램을 송출했고, 수많은 코미디언들이 거기에 나왔다. 하지만 거기에 내 자리는 없었다. 나는 번번이 공채 시험에서 떨어졌고, 그래서 방송국 카메라 앞에 설 기회가 없었다. 대신 나는 도시에 있는 어느 나이트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했다. 나의 주 역할은 한물간 밴드가 공연을 하고 난 이후 역시 한물간 여배우나, 어느 연예인을 닮은 사람들이 나오기 전에 시간을 버는 용도였다. 사람들은 이미 술을 한 두 잔 마시고 취해 있을 경우가 많았고, 때문에 내 말에 웃는지 안 웃는지 구별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가끔은 내가 점차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어느 날엔 마이크가 그냥 꺼져서 사람들이 내 개그를 듣지 못했으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웃기지 않는 코미디언은 입구가 깨진 물병이나 시침이 움직이지 않는 시계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한 기업의 연구소에서 나에게 연락이 온 건 공개코미디에서 나온 많은 유행어들이 사람들의 입에 붙어서 길거리와 광고는 물론 어느 곳에서나 그 대사를 들을 수 있을 즈음이었다. 처음에 회사 이름을 듣고 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나는 그들이 나를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과 나 사이의 접점을 생각해 낼 순 없었다. 그들 역시 아직은 나에게 제안할 일이 확실히 말해줄 수 없다고 했고, 그저 회사에서 진행되는 연구개발 프로젝트 중 한 가지와 관련된 일이라고 했다. 그래도 보수도 괜찮은 편이었기에 나는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며칠 후 나는 오랜만에 아침에 집을 나섰다. 밤에 주로 일을 하다 보니 아침 시간에는 거의 누워있는 일이 많았다. 불 꺼진 네온사인 간판이 가득한 거리 사이를 지나 나는 버스를 탔고, 한 시간 반쯤을 간 뒤에 나는 연구소에 도착했다. 나는 출입증을 목에 걸고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잠시 후 나에게 연락을 한 사람을 만났고 이윽고 한 실험실로 들어갔다. 좀 더 나이가 많은, 연구의 책임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거기에 앉아있었고, 곧 나를 부른 이유를 말해주었다.


  저희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가 한 말이었다. 혹시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A.I.>라는 영화는 보셨나요? 거기에 나오는, 사람과 같은 성격을 지닌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가 부탁드릴 일은, 그 인공지능에 인간의 ‘유머’를 학습시키는 일입니다. 하필 왜 그들은 나를 골랐을까? 어쩌면 이런 일을 조용히 진행하려면 유명한 사람보단 나 같은 사람이 좋았을 지도 모르고, 또 인건비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밀 유지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들이 진행하는 과제에 대한 개략적인 것들을 파악한 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그곳으로 가서 인공지능에 유머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방식은 간단했다. 80년 대의 한 물간 유머 모음집부터 차근차근 읽어 나갔고, 이것이 왜 웃긴 것인지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초기에는 많은 생각이 필요 없는 1차원 적인 것들부터 시작했다. 말장난을 이용한 것과 똥오줌과 같은 생리현상에 대한 것들. 사실 유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웃기지도 않은 것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있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인공지능에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개발자의 말에 따랐다.


  연구소에서의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그 반대로 나는 재미를 잃어갔다. 진지한 태도로 연구원 앞에서 AI에게 유머를 설명하고 있다 보니 점점 유머 자체를 즐길 수 없게 되어 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는 내가 공연을 하는 곳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다른 동료와 유머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TV에 나오는 것들을 와도 점점 웃는 일이 줄어들었다.


  육 개월 간의 인공지능 학습이 끝났고, 개발자들은 결과에 만족스러워했다. 인공지능은 시시콜콜한 농담은 물론 약간의 ‘인간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말장난도 칠 정도였으니까. 그 사이 나는 그들이 말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A.I.>를 비디오로 빌려봤고, 내가 학습시킨 인공지능도 언젠가 인간의 몸을 가진다면 저런 모습일까 생각했다. 그 즈음 나는 코미디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했다. 연구소에서 받은 봉급도 적지 않아 굳이 박봉인 내 원래 직업에 점점 환멸을 느꼈고, 유머에도 흥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연구소에서 받은 돈에 은행에서 돈을 빌려 새로 치킨 집을 열었고, 매일 저녁 닭을 튀겼다. 장사는 생각보다 내 적성에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일요일 저녁에 배달 주문을 받으면서는, 내가 다다르지 못한 곳에서 사람들을 웃기는 공개 코미디 방송을 덤덤히 봤다. 가끔은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혹시 기사라도 나오지 않았을까 궁금해 검색을 해봤고, 그때마다 이제는 곧 사람이 하는 많은 일들을 인공지능이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심지어 더 잘할지도 모른다는, 기자들의 상상이 담긴 기사를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새로운 삶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고, 그렇게 삼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는 이제 나이트클럽에 왔던 사람들처럼, 시덥지 않은 유머에도 영혼 없는 웃음소리나 실없는 미소로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재료를 사러 시장을 돌던 도중, 최근에 새로 문을 연 코미디 클럽에 사람들이 몰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곳이라고, 사람들의 호평이 줄을 잇는다고 했다. 나는 오랜만에 옛 생각에 잠기며 가게가 쉬는 어느 월요일, 그곳으로 향했다. 술 한 잔을 시킨 뒤 이번엔 내가 늘 바라봤던 관객의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쇼가 시작되고 나는 무대 한가운데 서 있는 마이크로 서서히 다가오는 컴퓨터 한 대를 보았다. 그렇게 인공지능의 스탠드업 코미디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터뜨렸고, 나 역시 진심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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