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프랑스어 발음으로는 르 쁘띠 프행스. 이제 3학기로 들어선 석사과정 겨울학기는 이전의 1, 2학기보다 수업을 덜 들어도 됐고, 그래서 나는 제3 외국어를 배워볼까 하면서 외국어 기초반들이 무엇이 있나 살펴봤다. 스페인어도 배우고 싶었고 중국어에도 눈길이 갔지만 최종 후보로 올라간 건 프랑스어와 일본어였다. 일본어의 경우는, 우선적으로 첫 직장에서 가장 가깝게 지냈던 분이 일본인이었고 베를린에서도 독일어를 배우면서 친해진 친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아무래도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가깝다 보니 다음에 있을 일본여행에선 일본어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꾸준히 잘 배운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본감독의 영화도 조금은 더 친숙하게 볼 수 있을지 않을 까라는 마음도 있었다.
프랑스어의 경우에도 비슷했다. 지금은 비록 연락이 끊겼지만, 역시나 베를린에서 단 한 번의 수업만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친해져서 가끔 메일을 주고받았던 프랑스인 아저씨와 나중에 간단한 인사정돈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있었고, 1학기 때부터 꾸준히 수업을 듣고 있는, 역시나 앞의 아저씨와 같은 지방(알자스 - 독일과 프랑스의 경계인 곳이고, 영어보다 독일어를 외국어로 많이 배우는 곳) 출신인 교수님과 가볍게 몇 마디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딴에는, 프랑스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들어서 아직 가보지 못한 프랑스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간단한 회화정도는 알고 가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알게 모르게 나와 프랑스의 연관점도 많은 것 같다.
예를 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소립자 Les particules élémentaires>인데, 이는 프랑스의 작가 ‘미셀 우엘벡’이 썼다. 베를린에서 접했었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는 프랑스에서 만든 Cider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어릴 적 별명이 ‘어린 왕자’에서 따온 ‘오동왕자’라는 게 가장 크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나는 지금과 같은 곱슬머리에 숫기도 있지 않고 말수도 적었다. 그러나 지금과는 달리 말랐었고, 그래서 머리 색깔을 제외하고는 책 [어린왕자]에 나오는 그와 비슷한 이미지였다. 지금은 어리지도 않고 왕자도 아니게 됐지만,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나를 왕자님이라고 하면서 키워주셨겠지.
사진의 어린왕자 문구는 저번달 초 포르투로 여행을 갔을 때 렐루서점에서 찍은 사진이다. 렐루서점은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를 집필한 것으로 유명해졌지만, 이전에는 [어린왕자]의 초판본이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내가 렐루서점에서 산 건, 서점 에디션으로 좀 더 표지가 장식된 카프카의 [변신] 독일어판이었다. 조앤 K 롤링에 대하여 좀 더 이야기를 하자면, 그녀는 처음에 자신이 해리포터를 렐루서점에서 집필했다고 말했지만 나중의 인터뷰에선 말을 바꿨다고 한다. 여러 가지 설들이 있지만, 내가 당시 가이드에게 들었던 설명은, 그녀가 포르투갈 사람이었던 이혼한 남편에게 위자료를 덜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포르투 사람이었고, 그녀는 결혼 뒤 삼 년 정도 여기에 머물렀다. 남편은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롤링은 이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이후 그녀는 [해리포터]로 성공한다. 하지만 남편 쪽에서 [해리포터]로 성공한 그녀에게서 돈을 빼앗기 위해 ‘포르투’에 와서 ‘해리포터’를 집필한 것이 자신과의 결혼 때문이라는 것을 주장했다고.
요새는 부쩍 ‘가족’이란 단어와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어쩌면 집에서 떨어져서 나와 산 게 길어지고, 타국에서까지 와서 살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취업 후에 처음으로 독립을 나와 혼자 살고, 전셋집까지 구해서 살 땐 그 자유로움이 좋았다. 물론 나의 경우엔 같이 삶을 살아갈, 여생을 같이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 기본적 입장이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베를린에서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정말로 ‘혼자’사는 경험을 하면서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이 아침에 일어나 오후까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회생활’을 한 뒤의 편안함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출산율이 사회 이슈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지는 오래됐지만, 아직까지 큰 담론으로는 키워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출산율에 나 역시 일조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느낌이 오묘하다. 결국은 선택은 개인이 하지만,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사회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론적인 입장으로 개인들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 없다. 인구가 곧 국력이다, 라던지 우리나라는 인적자원이 가장 중요해요,라는 호소는 지금의 세대에게 먹히지 않는다. 어쩌면 아직까지도 그런 것들이 먹힌다고 생각하고 국가가 해왔던 행동들이 사람들에겐 폭력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이유를 다 제하더라도 나는 요새 아이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어린 날 아이였고, 보살핌을 받고 커왔다. 그 세월 속에 쌓인 기억들과 다른 사람들, 특히 가족과의 관계는 너무나 중요했다.
얼마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만 유독 인생의 첫 번째 가치를 ‘돈’으로 택했다는 것이 떠오른다.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족’을 골랐다. 그건 어쩌면, 인류가 지탱해 온 원초적 단위와 힘이 ‘가족’이라는 것부터 나온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아직 이기적이다. 내가 나 자신을 1순위로 여기지 않을 준비가 되었을 때, 나는 그때 ‘가족’을 이룰 수 있을 것 같고, 아마도 그래야만 나를 닮은 다른 공주나 왕자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어 발음으로는 르 쁘띠 프랑세즈. 어린공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