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두부 Aug 11. 2022

책을 한 권도 못 판 서점지기

책을 한 권도 못 판 서점지기


는 나다.


이전 글에서 썼다시피 이번 여행의 첫 숙소는 어떤 독립서점의 옥탑방이었는데 이곳에서 운영하는 서점이 하나 더 있다. 이름은 <책은 선물>. 그리고 게스트 대상으로 <책은 선물>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서점지기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 일을 하기 싫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다 때려치고 어디 내려가서 서점이나 하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서점 일이 쉬워 보여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손님의 입장에서 서점에 갈 때마다 "서점은 정말이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차 있구나"라고 느꼈다. 책, 조용한 사람들, 은은한 향, 서로에 대한 배려와 예의... 그런 곳을 일터로 삼는다니 생각만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그런 내가 서점지기 프로그램을 발견했으니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안내된 시간에 맞춰 서점에 갔다. 서점은 기대보다도 예뻤고 아늑했다. 사장님이 앞으로 20분간 정말 많은 정보를 드릴 거니 잘 알아두라고 하셨다. 긴장이 됐다. 나는 카드 결제기도 써본 적이 없다. 혼자서 상점을 맡아본 적도 없다. 말더듬이 심해진 요즘이라서 실수하면 어쩌지 걱정이 됐다.


혼자 남게 되자마자 배가 아파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마음이 급했다. 그 사이에 서점을 찾은 손님이 있을까 봐서였다. 다행히 그 사이 서점을 찾은 사람은 없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사장님이 알려준 것들을 하나하나 되뇌었다. 굿즈를 챙겨줘야 하는 책이 따로 있었고, 어떤 수첩은 혼자 가격이 달랐고, 어떤 것들은 가격표가 표지가 아니라 속지에 있었고, 자칫하면 샘플과 상품을 혼동하기 쉬운 책들도 있었고.


카드 결제기도 직접 해보기 전에는 불안했다. 마침 <아무튼, 아침드라마>를 다 읽었기 때문에 여기서 책을 한 권 골라 샀다. 그렇게 결제 테스트도 한 번 해보고...(내가 내 카드를 넣고 결제를 실제로 해본 거다) 몇 번이나 배운 걸 중얼거린 끝에 '아, 이 정도면 할만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서점지기 업무를 시작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을 틀고... 그래도 긴장은 가시지 않았다. 서점 앞으로 사람이 지나가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작... 떨린다.


근무시간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였다.


2시가 되도록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아마 애매한 목요일이기 때문에...


2시 반.. 세시.. 세시 반


나는 아직도 내가 서점지기라는 것 자체에 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앉아있는 태도도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누군가 갑자기 들이닥쳤을 때 내 태도 때문에 이 서점에 일말의 안 좋은 감정이라도 갖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네시.. 네시 반이 되어도


단 한 명의 손님도 서점 문턱을 넘지 않았다.



긴장이 풀릴 때쯤 한 분이 들어오셨다. 나는 그분이 서점에 머문 몇 분 동안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첫 손님... 책을 결제하기 위해 들고 오시면 "재밌는 책 고르셨네요" 같은 한 마디라도 해야 할까. "카드세요 현금이세요"라고 내가 먼저 물어봐야 하나? 보통 상점 직원이 그렇게 하나? 책을 여러 권 들고 오시면 봉투에 담아드려야 하나? 그런 설명은 못 들었는데?


하지만 그는 몇 분 정도 서가 앞을 서성이더니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나가셨다. 마음에 드는 책이 없으셨나 보다.


그게 다였다. 다섯시, 다섯시 반..



다섯시 반 넘어가면서부터는 <손님 1, 매출 0>의 기록을 깨기 싫어 정말 손님이 안 왔으면 하고 생각하게 되더라. 그래야 이런 제목의 글도 쓸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정말로 안 왔다.



6시가 되어 사장님이 오셨고 나는 이런 하루였다고 얘기했다.


"이렇게 아무도 안 오는 날도 꽤 있나요? ㅎㅎ"

"아뇨.. 그런 날은 일 년에 한두 번이에요."

"그렇군요.."


그렇게 내 떨리던 첫 책방지기 체험이 끝났다.


상단의 바를 정자는 서점에 방문한 사람 (나+손님 한 명) 이고, 아래 목록은 구매 목록이다. 물론 내가 산 거다.




서점 지기의 이름을 명패에 적을 수 있는데... 끝날 때쯤 보니 정말로 쓸쓸하고 부끄러웠따.


아래는 서점 풍경들. 서점은 정말 예뻤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안함에 이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