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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Aug 19. 2022

여행에서 돌아오면 가구 배치를 새로 한다

제주 마지막 날에는 호캉스를 했다. 혼자.


그냥 호텔에서 하룻밤 자는 게 뭐가 좋은 걸까? 라고 생각해왔지만 다들 호캉스 호캉스 하는 이유가 있겠지 싶기도 했고


살아오면서 스스로에게 이십만 원 이상의 돈을 쓰는 것에는 매우 인색했던지라, 다시 없을지 모를 긴 여행 마지막에 안하던 짓을 하고 싶었다.


5성급 호텔은 아녀서일까 호캉스는 딱히 감흥이 없었다. 디너 뷔페도 큰 돈 주고 먹었고 수영도 했고 반신욕도 해봤지만 그게 내게 주는 만족감은 그다지 안 컸다.


가장 좋았던 건 영화였다.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미친 연기 대결을 펼치는 <다우트>를 봤는데 본 적 없는 느낌의 영화라 시야 한 켠이 작게 트이는 듯 했다.


그걸 보는 장소가 한라산이 창 밖으로 펼쳐지는 호텔 방이라는 건 아무런 플러스가 안 됐다.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마당이 있었던 첫 번째, 두 번째 숙소였다면 나가서 하늘 보면서 여운을 만끽했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혼자여서 순간을 잘 즐기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수영장에 가서 혼자인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걸 알고선 거의 몸 한 번 담그고 바로 나왔으니까...


어쨌거나 -다소간의 비약이 있긴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좋아보이고 비싼 것으로 나를 감싸봤자 그다지 행복해지지 않을거라는 거.


일기에 쓰지는 못했지만 제주에 오고나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생을 좌우할만한 결정도 내렸다. 큰 변화가 눈 앞에 펼쳐질거란 생각만으로 마음이 떨리지만... 제주에서의 시간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키워줬다. 마음의 체력도 상당히 올라갔고. 그러니 새로운 길로 꿋꿋히 잘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제주의 마지막 밤을 보냈고


다소간 싱숭생숭 조금은 착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짐을 챙겨 호텔을 나와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탔다. 이동 사이사이에는 박상영의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었다. 정말 재미있었고 그 덕분인지 수내까지도 금방 도착한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해 나는 바로 짐을 풀고 정리했다. 빨래감을 세탁기에 쳐넣고 제주에서 산 책을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청소기를 돌리고 환기를 시키고... 그리고 가구배치를 새로 하기 시작했다.


TV나 넷플릭스를 보려고, 아니면 플스를 하려고 쇼파 앞에 두었던 모니터를 빼서 책상 위에 두었다. 하릴없이 쇼파에 누워 의미없는 화면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 싫어서였다. 숙소들에서는 TV가 없는 곳도 있었고 또 지원과 함께일 때는 서로 대화를 더 많이 했고 그리고 노력해서 책을 더 읽으려고 했으니까 그런 무의미한 시간이 없었다.


그걸 일상으로도 가져오고 싶었다. 그러려면 공간의 변화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힘이 빠지고 부정적인 기운을 이겨내기 어렵더라도 인간답게 나답게 허리를 펴고 앉아 글을 쓰던 책을 읽던 영화를 볼 수 있도록. 그렇게 내가 겪고 싶지 않은 기분을 쳐낼 수 있도록.


생각해보면 길던 짧던 여행을 다녀오면 꼭 공간에 변화를 줬던 것 같다. 여행의 공기를 그냥 흘려보내기 싫어서 말이다.




마지막 날 호텔에 가기 전에는 내도동 해변을 다시 찾았다. 아무도 없을거라 청승떨기 딱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호텔 방 뷰


호텔 - 아 무료로 패밀리룸으로 업그레이드 해주더라! 횡재


올라오는길 셀프 체크인 등록을 하는데 자세 낮춰서 카메라 보라길래 그렇게 했고... 저렇게 찍혔다. 이렇게 하는거 맞아?



가구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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