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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Feb 28. 2022

가끔 모국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어떤 재외국민의 투표날




이른 대통령 사전 선거를 치렀다.

재외(해외) 선거는 본 선거보다 앞서 진행되는데, 미리 국외부재자임을 신고해야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대사관은 평일이라서인지 한가했다. 그런데 순간 내게 당혹스러웠던 점은 바로 대사관 내 선거 관련 종사자분들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한국말로 말을 건다는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대사관에 투표하러 방문하는 사람이야 당연히 한국인이겠지 싶으면서도, 어쩐지 영어나 더치가 들리지 않는 것이 낯설었다. 게다가 환대도 어색하긴 마찬가지. 모두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존댓말을 한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오시면 돼요, 하고. 여기는 네덜란드 내의 작은 한국이구나.


당연하게 받아온 타인을 향한 친절이 어쩌면 과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동안 이 무뚝뚝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살면서 하게 되었다. 손님은 왕이 아니라, 그냥 또 다른 사람이지. 친절하게 미소를 보여주는 건 좋은 일이지만, 떠받들어 모실 필요까지는 없다. 우리는 같은 사람일 뿐이니까. 일본처럼 무릎을 꿇거나 한국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처럼 물건과 조사까지 높여 부를 필요 없이. 어쩐지 너무 정중하게 느껴지는 친절이 어색해서 그분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저 열심히 고개를 숙였다. 예예, 안녕하세요오, 네.





선거는 간단했다.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을 하고 투표용지와 봉투를 건네받으면, 기표소에 들어가서 붉은 인주가 자동으로 나오는 도장을 원하는 후보 칸에 찍으면 된다. 후보가 14명이라 용지가 너무 길어서 봉투에 한 번에 들어가지 않으니 꼭 반 접어서 넣어달라고 했다. 기표소 안에서 투표용지 안에 적힌 이름과 숫자를 살펴본다. 내가 아는 건 기껏해야 상위 대여섯 명 정도. 도대체 나머지 군소후보들은 이 승산 없는 전쟁에 왜 기꺼이 참여하는지 아주 잠깐 궁금했지만, 내 소관은 아니니까. 오늘 나의 본분은 투표이고, 그건 이 중에 한 명을 선택하는 일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대게의 투표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 하게 되는 것 같고.

 

인주가 번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용지를 접어 주어진 붉은 기가 도는 봉투에 넣고 봉투 입구에 이미 붙여진 양면테이프의 매끈한 흰 면을 떼어낸다. 투명한 테이프를 밑으로 향해 봉투를 닫고, 괜히 손톱으로 죽 그어 접힌 부분을 선명하게 만든다. 검지 손가락의 끝으로 테이프로 밀봉된 봉투 뚜껑을 다시 한번 더 단단하게 문지른다. 떼어지지 말고, 무사히 선거 현장에 도착해서 소중한 한 표가 되렴.





나오는 길에 또 목에 선관위 표식을 찬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안녕히 가세요, 네네, 안녕히 계세요. 덩달아 고개를 숙이며, 높임말의 피곤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안녕'이라는 말에 필요한 뜻은 전부 들어있는데, 형용사를 만드는 조사를 더하고, 존댓말 형식의 어미를 덧붙인다. 모국어로서 당연하게 써오던 말들이지만, 외국인으로 한국어를 배운다면 존댓말의 존재가 너무 괴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평어는 존댓말로 변하면서 어미가 길어지고, 형식이 덧붙여지고, 형태가 변하잖아. 너무 비효율적이다. 이걸, 어떻게 다 배우나.


사실 이것은 그저 내가 최근에 더치(네덜란드어)를 배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느끼는 역지사지 적인 감각일지도 모른다. 영어도 완벽하지 않은데, 하는 마음으로 미루던 제2 외국어를 새로 배우면서 역시 언어는 생활이고 문화지 하는 생각을 더 깊이 하게 된다. 그동안 영어만으로도 충분히 생존이 가능해서 안주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는데, 이 정도의 작은 노력과 관심으로도 금방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조금 더 빨리 시작하는 것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들어서다. (물론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기초만 쉬운 거겠지만)


화장실 앞에 줄을 서 있던 여자가 문득 아무렇지 않게, 대사관 건물이 참 예쁘네요, 하고 말을 걸었을 때에도 나는 보이지 않게 흠칫 놀랐다. 놀랄 일이 아닌데도 자꾸 놀란다. 아, 예, 그쵸, 건물이 예쁘더라고요. 하는 답변의 앞에 미세한 잠깐의 머뭇거림이 있었다. 이 말이 지금 내 입에서, 뇌를 통해서 나오고 있는 말인가. 모국어가 입 밖으로 나오는 데 머뭇거리다니. 낯설게 느껴진다니. 언어는 역시 생활이구나. 집에서 아무리 한국 예능과 드라마와 영화를 섭렵한다 한 들, 직접 말을 할 일은 줄어들었으므로 내 모국어는 퇴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다른 외국어 능력이 나아진 것도 아니라는 점이 더 큰 문제이긴 하지만)





대사관에서 나와 근처의 정거장으로 걸어갔을 때, 검은 머리의 아시안 여자 셋이 거기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각자인 사람들은, 아마도 평일 대낮에 이렇게 모인 거라면 모두 한국인일 테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세 명의 사람이 모두 한국인이라고 해서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은 당연할 테지만, 그래도 이렇게 흔치 않은 한국 사람 셋이 모여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나라에 온 기분이 되었다. 개인의 일상적인 감각이라는 것은 사는 방식대로 바뀌어간다.


전국적 규모의 락다운이 해제된    , 부스터 샷까지 맞았지만 기차를 타는 일은 오랜만이었다. 핸드폰으로 내려받은  <김지은입니다> 읽다가 짧은 기차역  개를 지나쳐버리는 바람에 되돌아와야 하는 실수를 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절절한 바람에 제때 끊지 못해서. 이상하게 기차를 타는 일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버스나 트램을 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같다. 여행하는 느낌이 난달까. 그리고 꽤 시끄러운데도 뭐든 잘 읽히고 잘 쓰인다. 게다가 창밖의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보는 일은 나를 낯선 초현실의 감각으로 안내하기도 하고. 종일 이상한 나라를 떠돌아다닌 기분이네, 오늘 하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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