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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Jul 24. 2022

똥을 밟지 않는 법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 주말의 일기





매일 아침마다 그날의 온도를 시간별로 확인한다. 어차피 네덜란드에서 며칠 뒤의 일기예보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기 때문에 그저 몇 시간 정도의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얼마 전, 전 유럽에 heat wave가 불어닥쳐 40도 가까이 육박하더니 또 20도(여름 평균 온도임)까지 내려갔는데 오늘은 다시 해가 나고 덥다고 했다. 


하우스메이트와 주말마다 집 청소를 하기로 했고, 오늘은 내 차례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오전에 분갈이를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마켓(주말 장)에 가야 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장에 이제는 꼭 살 것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들른다. 제철인 과일이나 떨어진 야채, 계란과 치즈, 가끔은 튀긴 오징어나 홍합 같은 걸 사는 게 전부지만 오늘은 흙을 살 거야. 10L짜리 유니버설 흙.  


식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직 동물을 키울 수 있는 정도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식물을 키울 수 있을 정도의 안정이 내게 있다.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원래 집에 있던 식물에 내가 데려온 식물들을 더해 하나씩 둘씩 늘리다 보니 어느덧 스무 개 정도 되는 것 같다. 아침마다 녀석들 상태를 확인하고 흙이 마른 것 같으면 물을 듬뿍 준다. 초보 시절에는 매일매일 물을 주고 싶어서 애달파하는 집사였지만, 이제는 안다. 꽤 많은 식물들이 과습으로 죽는다는 것을. 어제 지나가던 길에 전시용 토분을 싸게 팔길래 두 개를 냉큼 집어 왔다. 이탈리아산 토분은 식물에게도 좋지만 영롱한 주황색이 진짜 예쁘다. 방에 둔 스킨답서스 화분은 코로나 시절 내 방에서 물과 빛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뿌리가 꽉 찬 것 같았다. 새 화분에 갈아줘야지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아침의 동선은 이러하다.

일어나자마자 정신을 차리고, 집 앞 마켓에 가서 꽃을 파는 부부에게 흙을 산다. 2.25유로, 가격은 예전에 봐 두었다. 현금이 없으니 카드로 계산이 되면 좋겠는데. 시장에서는 3유로 이하는 카드 계산을 잘 안 해주려는 경향이 있다. 이해는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현금 쓸 일이 많지 않아서 나 같은 사람은 카드 계산이 되는지를 꼭 물어야 한다. 그리고 오가는 길에 싱싱한 과일이 있다면 산다. 납작 복숭아나, 천도복숭아, 체리 정도가 요즘 많이 나오더라. 아니면 토마토, 오이 같은 채소도.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청소를 한다. 주말 아침이 시끄러울까 봐 어제 저녁에 청소기는 밀어두었다. 부엌 상판과 화장실 세면대를 닦을 예정이다. 매번 청소를 할 때마다 생각한다. 타인과 함께 사는 것의 갈등은 청소의 기준으로부터 시작하는 거 아닐까 하고. 도대체 3주에 한 번 하는 청소를 왜 제대로 하지 못하는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니까. 


청소를 마치고 나면, 방에 있던 화분들을 들고 테라스에 나간다. 분갈이할 녀석은 둘이지만, 하나씩 더 큰 화분에 옮기려고 하니 총 5개의 화분을 옮겨야 한다. 물꽂이 해두었던 몬스테라에게도 새 집을 주어야지. 흙을 사기로 한 건 적절한 선택이었다. 오늘의 BGM은 위켄드 모닝 인스트루멘탈 재즈. 땡볕에 쭈그리고 앉아서 크고 작은 화분 다섯 개를 옮겼다. 다들 뿌리가 화분에 꽉 차서 바닥에 태풍처럼 돌돌 말리는 중이었다. 뭐 이렇게 잘 자랐지. 그러니까 그렇게 물을 열심히 줘도 순식간에 말라버렸구나. 꺼낸 뿌리를 털어 정리하고, 새 화분 밑 배수구멍을 부서진 다른 토분 조각으로 막고, 배수층으로 하이드로볼을 조금 넣어준다. 그 위에 흙을 살짝 덮고 옮길 식물을 넣고 그 위에 영양 만점 새 흙을 조심스럽게 부어주면 끝. 가을이 오기 전에 분갈이를 해서 다행이다. 그러고 보면 벌써 7월 말. 금세 여름이 지나가버리고 말지 않을까. 막상 엄청 여름을 즐기는 것도 아니면서 왜 아쉬워하지. 해가 길면 하루가 길어서 시간이 늘어난 기분이라서 그런가.  

 

한 시간 가량 볕에 있었더니 어쩐지 얼굴이 뜨끈하게 익어버린 것 같다. 선크림을 깜빡 했었다. 옷에 흙을 탈탈 털고, 화분을 제자리로 옮기고, 부엌에 가서 싱크대의 물 빠짐을 다시 확인한다. 엊그제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서 약품으로 뚫었는데도 어쩐지 시원치가 않다. 요리조리 둘러봐도 딱히 다른 수는 없어 보이는데, 물을 쓸 때마다 꾸울럭- 꾸울럭- 내려가는 소리가 어쩐지 체할 것처럼 불편하다. 이걸로 안 뚫리면 환불해주겠다고 선전하는 강력 화학물 같은 것으로 뚫었는데도 이 정도라면 뭘 어째야 하는 걸까. 아니야, 일단 이 고민은 접고 점심을 먹자. 오후에 미팅이 있다. 어제 먹고 반쯤 남겨둔 두부-야채-미소-짜글이 비슷한 무엇을 데운다. 아침에 사 온 납작 복숭아 두 개와 방울토마토 몇 알을 급하게 입에 넣고, 샤-워. 클리어. 먼지를 뒤집어쓸만한 일들은 전부 해치웠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줌 미팅이다. 격주로 하는 미팅에서야 나는 한국인과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다. 목적을 가지고 만난 터라 스몰토크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도, 묘하게 안심이 되는 지점이랄까 그런 게 있다. 나는 이런 감각을 마주할 때 특히 더 주의하는데, 분위기에 못 이겨 긴장을 놓치면 내가 언제든 뿌엥- 하며 퇴행적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내가 자괴감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하지 않아야 할 말들을 털어놓고 나면 당시에는 시원한 것 같아도 뒤돌아서면 곧바로 후회하게 된다. 말을 줄여야 한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나는 늘 내가 좀 못미더워. 그래서 말 대신 자꾸 글을 쓴다. 0과 1로 이루어진 세상에서는 언제든 수정을 계속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우연찮게도 모두는 각자의 '똥을 밟지 않는 안내서' 라던가 '똥을 피할 수 있는 지도' 같은 것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거기 가면 똥이 있어요, 그러니까 주의하세요! 라던지, 내가 똥을 밟아 봤는데, 죽지는 않고요, 또 잘 살 수 있어요. 하는 말들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 이 인류애적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내 뒤에 혹시 따라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같은 자리의 똥은 밟지 않았으면 하는 이 선의들을. 똥은 역시 가능하면 안 밟는게 최고다. 그런데 또 세상엔 똥이 너무 많지. (물론 여기서 똥은 은유입니다*)



이제는 외로움이나 쓸쓸함 같은 기분보다 고립되었다는 감각이  강력하게 다가온다. 나는 많은 것들로부터 고립되었다고, 자주 느낀다. 그것은  선택으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책임 또한 내게 있지만 어떤 날엔 무한한 연결을 느끼고  안에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다. 한국말이 어눌해지는  같아서 초조해지는 날들 사이에서 결국에 '나는 틀리지 않았다'라고 명료하고 당당하게 말할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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