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워 보여도괜찮고 싶어
자주, 발을 구르면서 살았다. 마음도 같이 동동 굴렀다.
뭐랄까, 어디에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우스워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우스워지고 싶지 않았다.
거창하게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은 되지 못하더라도 우스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그것이 베이스 라인이라고 생각했다. 밑바닥 기준점. 적어도 이건 넘어야지 하는 마음.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건 최소한의 기준이 아니라 한껏 부풀려진 지향점이었다. 그 선을 넘지 못하면 나는 완벽하지 않은, 어딘가 부족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이 될 거야. 사람들에게 그런 취급을 받겠지. 하지만 그 '사람들'이라는 추상적인 존재는 누구인가. 누가 내게 말하고 누가 나를 평가하지? 내 옆의 친구? 동창? 나의 적? 예전 회사의 동료? 나를 싫어하는 사람? 나에게 관심이 없는 타인? 도대체 누구? 실체 하지 않는 허상 같으면서도 나의 마음을 한껏 쪼그라들게 만든 두루뭉술한 존재들.
<버드맨>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말처럼, 이 모든 기준은 그저 내 머릿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환영 인지도 모른다. 뭔가를 시작하거나 도전하려고 하면 늘 울리는 목소리.
'그거 별로야, 쓰레기 같은 데? 쓰레기 같은 걸 만드는 사람이야, 너?' 하고 비웃는 심판관의 웃음소리.
그러면 안 그래도 이 지구 상에 쓰레기가 넘쳐나는 데, 나 같은 게 뭐라고 또 쓰레기를 만들어 보태나 싶어 결국 그게 무엇이든 멈춰 서 버리게 되었다.
이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심판관의 존재를 나는 아주 오래도록 알아왔다. 그래도 매번 무릎을 꿇는다.
'이것도 쓰레기 같아? 그렇게 별로야? 역시 지금 나는 똥을 싸지르고 있는 건가 봐.'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수록, 나는 번번이 선을 긋지 못하고, 책을 펼치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한다.
그 모든 마음은 ‘우스워지지 않고 싶어서’ 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그 마음. 아무에게도 우스운 인간이고 싶지 않은 마음.
아, 그런데, 이제 좀 우스워지고 싶어졌다. 그럼 좀 어때, 싶은 마음이 종종 든다.
괜찮을 것 같다. 사실은 아무도 나를 바라보고 감시하고 평가하려고 기다리지 않는다. 각자의 삶을 살기에도 바쁘니까. 여기가 밑바닥이 아니라면 밑바닥에 한 번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손에 쥔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잃을 것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하는 인간의 상태가 너무 견딜 수 없이 지겹다.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나다운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이 누군가에게 우습다면 어쩔 수 없지. 그 마음이 오히려 용기이고 자존의 증거인 것이 아닐까. 눈을 질끈 감으면 나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용기가 필요해서, 문장을 남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