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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불 Apr 28. 2021

있을 때 잘 살자

살아있을 때 잘 살자


세실리아 루이스의 그림책 '죽음의 춤'의 내용은 온통 어이없는 죽음들의 나열뿐이다. 대머리를 바위로 착각한 독수리가 던진 거북이의 등딱지 때문에 죽게 된 고대 그리스 비극의 아버지 아이스퀼로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다 죽은 스웨덴의 국왕 아돌프 프레드리크, 의료사고로 사망 진단을 받고 관에 들어갔다가 장례식 도중 깨어나 그 상황의 충격으로 사망한 파길류 무하메챠노프 등 하나 같이 너무나 갑작스럽고 황당해 비극적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여러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죽음을 몇 가지 꼽자면, 우선 '드라콘'의 죽음을 들 수 있겠다. 드라콘(기원전 7세기)은 아테나이 출신의 훌륭한 입법관으로, 시민들이 감사와 존경의 뜻으로 던진 옷 무더기에 깔려 숨졌다고 한다. 그의 죽음의 순간은 어땠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최고의 찬사 속에 깔려 죽은 그가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똑같이 괴로운 죽음일 뿐이었을까.


불법 투계 경기 중 자신의 수탉에 달았던 쇳조각에 찔려 사망한 호세 루이스 오초아(2011)의 죽음 역시 기억에 남는다. 인간과 (특히 고기나 유희 거리가 되고 마는) 동물 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자신이 목에 두른 기다란 스카프가 자동차 바퀴에 끼는 바람에 목뼈가 부러져 죽은 미국의 유명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1927) 죽음도 인상 깊다. 녀는 스카프를 목에 두르던 그날 아침, 자신이 바로  스스로 두른 스카프 때문에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을 것이다. 죽은 그녀를 다시 불러 그날로 되돌리면 그녀는 과연 스카프를 두르지 않았을까? 묻고 싶은 것은 많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들의 사연을 읽고 있자면 언제 어디서 갑작스레 종료될지도 모를 우리의 유한한 삶의 허무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바로 삶이란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더욱 순간순간 자신에게 진심을 다하며 후회 없이 살기에도 모자라다는 것. 그렇게 관점을 바꿔보자면 위의 어이없는 일화들은 오히려 끝이 있어서 더 소중한 순간순간에 대한 묵념이 되기도 한다.


또 하나 이 책의 진가는 바로 세실리아 루이스의 단순하고 투박한 질감의 그림들에서 찾을 수 있다. 죽음을 마치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몽글몽글하게 그린 그림들 덕분에 죽음에 너무 심각해지지 않고 객관적인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죽음들 중간중간, 내용이 이어지는 삽화가 등장한다. 죽음의 신과 그에게 쫓기는 짐승의 모습. 죽음의 신을 따돌렸다고 생각한 짐승이 한숨 돌려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는 사이 기습적으로 죽음의 신은 화살을 쏘고 짐승은 죽는다.  


내내 죽음을 이야기했던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묘한 생기를 주었다. '메멘토 모리' 정신이랄까. 어차피 아무도 모르게 다가오는 끝, 생의 종말, 죽음.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잘 살자. 있을 때 잘 살자. 살아있을 때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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