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런치 #4] 페터 빅셀 산문집
나는 정말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우리는 때로 나와 비슷한 생각이나 고민을 가진 사람을 애써 찾아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뚜렷하게 해결되는 것은 없지만, 상대가 나와 같은 생각을 말할 때 일종의 해소감을 느끼기 때문인 듯하다. 마찬가지 이유로 이 책을 구매했다. 보통은 정보와 지식을 얻는 목적으로 책을 선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때로는 이번처럼 내 생각을 대변해 줄 듯한 책을 고르기도 한다. 나는 정말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에밀을 존경했다. 그는 내 눈에 진정한 어른이었다.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아는 사람. 그리고 시간이 많은,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 나는 에밀과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그에게서 뭘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무척 많이 배웠다는 것, 그리고 그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역에 있을 이유 없이, 그러니까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감탄하며 무언가 구경하거나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도 그저 거기서 서성이는 법을 배웠다. 그냥 여기 있기, 그냥 존재하기, 그냥 살아 있기. - P 25
'너무 바쁘다.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어른이 되어간다.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야만 할 것 같은 암묵적 구속에서 벗어나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려면, 그냥 여기 있기, 그냥 존재하기, 그냥 살아 있기를 의식적으로 실천해야 하지 않나 싶다.
아쉽게도,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라는 제목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책의 제목만 보고 책을 사면 늘 이런 일이 생긴다.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고 어른이 된 사람이 '시간'과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책일 거라 기대했지만, 알고 보니 이 책의 원제는 '존슨은 오늘 오지 않는다 Heute kommt Johnson nicht', 페터 빅셀의 칼럼들을 모은 산문집이었다.
산문집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듯하다. 저자는 주변의 소소한 일상사들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짧은 이야기들로 풀어냈다. 큰 감동이나 엄청난 교훈은 없다. 하지만, 평소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곰곰이 생각하게 하고, 또 소소하지만 깊게 공감하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부터 다 읽고, 이렇게 글을 쓰기까지 깨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북리뷰를 쓴답시고 산문집을 두고 주제를 요약하거나 책 내용을 두고 하나하나 생각을 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책을 책장에 다시 꽂아둔 후에도 가끔 읽어볼 수 있도록 공감됐던 글들을 정리해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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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그러니까 옛날이 지금보다 나은 이유는 지금보다 뭔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추억'이라는 것. - P 29
나는 글을 읽거나 쓰기 위해 기차를 탈 때가 많다. 조바심은 읽기와 쓰기의 적인데, 기차는 나를 인내심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러나 목적지가 정해져 있으면 기차에서 글을 쓰기가 불가능해진다. 이때의 기차는 나에게도 조바심치는 장소가 되고, 기다림 자체가 힘겨워진다.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상당히 정확하게 예고되는데도, 아니 사실은 그래서 더 끔찍하다. 예고는 기다림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예고는 기다림을 방해하니까.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 P 42
원래는 좋아했지만 살아가다가 잃어버리는 것이 많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게 없어진 지 이미 오래라는 것을 깨닫는다. - P 49
아니, 나는 무질서 속에서도 편안하지 않다. 내일이나 모레 또는 주말에 다시 한 번 청소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혹시 평생 잘못된 것을 추구한 건 아닐까? 정리하는 데 늘 실패한 게 아니라, 무질서를 만드는 데 실패한 게 아닐까? 편안하고 질서 있는 무질서. 정리는 약간 난폭하다. 던져 버리기, 이상 끝. - P 59
누군가 '당신을 텔레비전에서 봤어요'라고 말한다면, 이는 원래 '당신은 내 방에 있었어요'라는 뜻이다. - P 79
의미 있는 일만 해야 한다면 인생은 삭막해진다. 일기장에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었음'이라고 적은 그 오늘도 상황에 따라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었을 수도 있을 테니. - P 85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쓸 때 우리는 이야기도 다시 끌어온다. 이름은 무척 무겁다. 선과 악이, 이야기와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이름을 다시 끌어오는 일은 고역이다. 이름은 멀리서 온다. 드디어 도착한 이름은 살가운 환영을 받는다. - P 99
우리는 결국 대단찮은 청중일 것이다. 언제나 성급하게 이해하려고 하니까.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들을 수 있다. - P 104
모든 것에 대한 정보가 있는 곳에는 발견할 것들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그런 곳에는 오로지 배울 것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학습은 발견과는 다르다. 발견은 정복이지만, 학습은 그저 습득에 불과하다. 아이들은 학습하는 게 아니라 발견한다. 날마다 세상을, 그리고 소리와 낱말을, 언어와 연관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 P 113
인사를 받고 인사를 한다는 것은 우울한 날에 약간의 온기를 가져다주는 행위다. 자동차를 몰고 가는 사람은 이런 기회가 없다. 인사는 보행자의 특권이다. - P 125
모든 권력은 공포다. 권력은 자신이 퍼뜨리는 공포를 먹고 산다. 공포에 떠는 사람들은, 공포를 퍼뜨리고 안전을 약속하는 사람의 뒤를 좇는다. 불합리한 결합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기들 스스로 권력이 있다고 믿는다. 자기가 권력자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 P 154
효율은 결국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이 되므로. - P 164
자기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전문가. 이 분야는 나에게 강요됐고, 아마 내 옆의 사람들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규격 생산된 세계. - P 165
어쨌든 고향이란 뭔가 사적인 것이다. 태어날 때 당연하게 주어지는 국적은 고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곳에서 자라거나 눈을 뜬 곳이 고향이다. - P 186